“‘개척하는 지성’ 양성… 21세기 교육 모델 수립할 것”

▲ 고려대는 출석부, 시험감독, 상대평가 등을 없애겠다는 염재호 총장의 공약에 따른 ‘3무(無) 정책’을 가을학기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고려대 캠퍼스.

[한국대학신문 송보배 기자] 지난 3월부터 출범한 염재호 총장호가 강력한 개혁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고려대는 출석부, 시험감독, 상대평가 등을 없애겠다는 염재호 총장의 공약에 따른 ‘3무(無) 정책’을 가을학기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또한 학과 중심의 학사행정지원체계를 국내 대학 최초로 도입, 이달부터 추진하고 있다. 학사행정지원체계 개편의 지향 방향은 크게 현장 중심, 적시성을 향하고 있다. 단과대학 단위로 운영되던 학사행정서비스를 교수, 학생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적시에 제공할 수 있게 한다는 게 골자다.

학생 밀착형 서비스 전환… 신속성 기대 = 고려대는 단과대학별 학사지원부로 대표되는 학사행정지원체계를 과감히 탈피, 새로운 형태의 대학행정시스템 운용을 시작한다고 최근 밝혔다. 캠퍼스별 학사지원본부가 해당 캠퍼스 내의 다양한 행정수요를 총괄하는 사령탑이 되고, 각 학과별로 사무실을 두어 학생밀착형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단과대학 학사지원부가 소속 학과의 사무를 관리, 통제하는 종전의 방식은 사라진다.

고려대 기획팀 김동조 차장은 “현재 거의 대부분의 대학들이 채택하고 있는 단과대별 학사지원부 체계는 전산자동화가 학사업무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이전인 1980년대에 구축된 시스템이다”며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더욱 효율적인 학사지원행정체계로 학생들을 도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사행정지원체계 개편으로 인해 학과-단과대학-본부의 3단계 행정체제가 학과-본부 2단계로 압축된다. 학사 관련 정책집행관리 권한 대부분이 행정 일선으로 이양된다. 단과대학과 학과들이 학사업무 수행에 필요한 의사결정과 처리권한을 갖게 됨에 따라 본부와의 협의와 허가에 따르는 시간을 대폭 단축시킬 수 있을 전망이다.

김 차장은 “개편 이후 학과에서 결정한 의견을 캠퍼스 안 학사지원본부에서 바로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한 업무처리가 기대된다”며 “슬림화된 본부는 본연의 기능인 기획, 조정, 평가에 집중할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같은 학사행정시스템 개편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의견을 표했다. 영국 세계인명센터의 ‘세계적인 교육자 100인’에 이름을 올린 이현청 한양대 석좌교수는 “고려대의 시도는 자율성과 다양성을 담보한다는 점에서 21세기형 미래 대학으로 가는 첫 발걸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단 학과별로 이 체계가 경직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학과별 조율체계는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자칫 학과이기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또 학문간 상호교류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학과 간 협력체계가 필수라는 조언이다.

고려대는 기존 단과대학이 아닌 캠퍼스 단위로 관리체계를 구축, 대학 전체 발전의 관점에서 이를 조율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 인문사회계/자연계 2곳에 들어서는 학사지원본부는 해당캠퍼스 소속 단과대학 공통 업무인 △교무 △학사 △총무 △시설 관련 정책들을 집행하고 관리하는 기능을 맡는다.

“학사지원본부 등장… 서비스 높일 것” = 한편 대학본부와 행정일선을 효과적으로 연계할 학사지원본부의 등장은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다. 인문사회계/자연계 2곳에 들어서는 학사지원본부는 해당캠퍼스 소속 단과대학 공통 업무인 △교무 △학사 △총무 △시설 관련 정책들을 집행하고 관리하는 기능을 맡는다.

학사지원본부는 각 단과대별 행정의 칸막이를 넘어 학생, 교수들이 최적의 학습과 연구, 교육활동을 진행할 수 있도록 공간과 인력을 통합관리할 예정이다.

고려대는 “한 예로 학회나 연구 활동 등을 위해 교내 강당 건물을 이용하려는 교수, 학생들은 타 단과대 건물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으나, 앞으로는 소속에 관계없이 학사지원본부를 통해 타 단과대 건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며 “기존 행사용 공간도 연구와 교육을 위해 더욱 폭넓게 개방돼 공간 활용의 효율성이 극대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개척하는 지성 양성하자”… 3무(無) 정책 시행 = 출석부, 시험감독, 상대평가 등을 없애는 고려대의 ‘3무(無) 정책’도 대학가 이목을 끈다. 대학이 취업기관이 됐다는 비판과 탄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시대 지성’이라는 대학의 본질을 지향하는 개혁 움직임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다.

염재호 총장은 “대학에서 초중고교처럼 학생을 다루는 것은 맞지 않다”며 “기존의 시험감독, 출석부, 상대평가를 반드시 강제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고려대는 지난 1학기에 교수와 학생들의 의견을 청취한 뒤 3무정책 시행안을 확정해 2015학년도 1학기와 여름학기에 우선 시범적으로 무감독 시험을 시행했고,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3무(無) 정책’ 시행에 들어간다.

무감독 시험은 학생 스스로 양심을 지키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교수와 학생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는 데 의미를 둔다. 학생들은 스스로 양심에 따라 시험에 응하겠다는 ‘명예서약’을 하도록 해 학생들이 시험지에 스스로 서명을 하고 시험에 응한다.

이 같은 무감독시험은 미국 하버드, 스탠퍼드, 프린스턴 대학 등에서 ‘아너코드(Honor Code)’를 통해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동대, 광운대 등이 도입하고 있으며, 서울대 자연대학도 내년 경 도입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대학가에서 무감독 시험은 사실 양가감정이 공존한다. 학생 존중 차원에서 도입했으나 일부 학생의 부정행위 등 우려도 낳고 있다. 실제 성균관대 등은 도입했다가 1년 만에 철회한 사례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대의 무감독시험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1학기와 여름학기에 시범적으로 시행된 무감독 시험의 취지에 동조하는 교수들을 중심으로 2학기 시행도 준비 중이다. 110개 강좌가 무감독시험으로 치러질 예정이며, 출석확인 자율화(무출석부) 강좌는 209개에 달한다. 무감독시험과 출석확인 자율화 도입 강좌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는 “출석확인 자율화의 의의는 교수와 학생 모두가 수동적인 출석 문화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좋은 강의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며 “학생들은 본인 책임 하에 출석을 하고 교수들은 그만큼의 시간을 강의로 채워 시간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절대평가는 보다 신중히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희망하는 학과들로부터 신청을 받아 학과장들과의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 전공 교과목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또한 각 강의마다 명확한 성적평가의 기준을 설정하고 권고해 성적 왜곡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 고려대는 단과대학별 학사지원부로 대표되는 학사행정지원체계를 탈피, 이달부터 학과 중심의 대학행정시스템 운용을 시작했다.

유연학기제 도입 융통성 높여 = 3무정책 외에도 고려대는 오는 가을학기부터 ‘유연학기제’를 도입할 계획에 있다. 유연학기제는 기존의 봄, 가을학기의 수업이 16주에 마무리되는 것과는 달리 몰입형 수업 등을 통해 짧게는 8주까지도 수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 또한 여름과 겨울에 2주씩 진행됐던 계절수업도 길게는 4주까지 운영한다.

고려대는 “현재 여름과 겨울에 시행되는 계절수업에는 대부분 교양과목들로 채워져 전공과목이 개설되지 않는 것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많았는데 이제는 계절수업에서도 전공과목을 개설할 예정”이라 밝혔다. 또한 “유연학기제를 통해 필요에 따라 학생들은 자기 발전 계획을 실행할 수 있고 교수들은 강의 후 남은 시간들을 장시간이 소요되는 연구 등에 활용할 수 있어서 ‘2개 학기제’에 비해 훨씬 더 효율적인 시간활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3무(無) 정책'과 유연학기제는 모든 수업에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교수의 자율과 재량에 따라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그간 경쟁을 강조, 짧은 시간 높은 교육성과를 보여 왔다. 그러나 지난 6월 열린 세계교육포럼에서는 미래 교육의 화두로 세계시민교육(Global Citizenchip Education)이 강조됐으며, 5.31교육개혁 이후의 논의되고 있는 여러 교육개혁안에서도 협력 기반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대의 개혁 시도는 성패 여부를 떠나 고등교육에 있어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된다.

고려대는 “3無와 유연학기제 등 고려대가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는 새로운 시도들은 21세기 대학(大學)이 우리 사회에 보여줘야 할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긍정적인 자극”이라 자평했다. 신현석 기획예산처장은 “개척하는 지성을 키우기 위한 고려대의 움직임이 한국 대학사회의 미래를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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