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인(본지 논설위원/춘천교대 교수)

2015년 8월 17일 부산대 고현철 교수가 총장 직선제와 대학 민주화를 염원하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몸을 던졌다.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온한 삶에 젖어 살던 교수 사회에서 일어나리라 상상도 못한 사건이었다. 그만큼 충격도 파장도 크다. 그는 교수라는 직위를 누리며 ‘갑’으로 살던 이들에게 대학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하고 권력에 굴종적인가를 자신의 희생을 통해 보여주었다. 교수라는 직위에 안주하기보다는 지식인으로서 절망적 현실에 맞서고자 했던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한다.

한 지식인을 죽음으로 내몬 오늘의 현실을 접하면서 프랑스 지식인 쥘리앙 방다(Julien Benda)의 ‘지식인의 배반’(1927년 출간)을 탄생시킨 프랑스 사회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사회가 썩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좌․우 지식인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우파는 4000만 국민이 개개인으로 뿔뿔이 흩어지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사회가 오직 개인주의만을 추구하여 무질서가 난무하는 데도 자유를 신봉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고 우려했다. 공산주의의 승리를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질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천주교 지식인들은 온 사회가 금전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소명 의식과 책임감이 사라져가고 있으며, 금전에 대한 저항이 무력해졌다고 걱정했다. 민주주의가 부패하고 있는데, 그 책임은 목적만 이루면 무슨 수단이든지 상관없다는 기업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거대 금융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부 고위직과 유착하고 국민들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에 그물망을 쳐 놓았으며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의 지원까지 받아내고 있다고 개탄했다. 마치 2015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보는 듯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이런 프랑스 사회에서 쥘리앙 방다는 좌든 우든 지식인들이 현실과 이익, 물질 앞에서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되며, 그렇게 된다면 세상이 혼탁해지니 결국 배반이라고 일갈했다. 권력과 자본이 굳건히 결탁하면서 민주주의가 차츰 부패하는 현실에 저항하지 않고 영합하는 지식인들을 비판했다. 그는 지식인의 저항과 배반을 가늠하는 척도로 좌나 우,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아닌 , 정의와 자유를 요체로 하는 민주주의를 내세웠다.

고현철 교수는 1980년대 민주화의 경험을 자양분 삼아 지식인으로 성장한 전형적인 민주화 세대였다. 그래서 오직 하나의 국론과 질서를 강요하는 권력에 의해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오늘의 현실에 좌절했을 것이고, 그 현실에 무기력한 또래 지식인들에게는 더욱 절망했을 것이다. 민주화 세대 교수들이 망각하고 있는, 어쩌면 망각하고픈 기억을 들춰보자. 1980년대 대학가에는 사회 민주화와 함께 대학 민주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대학 시절 그들은 ‘어용교수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의회나 행정부로 진출한 교수의 연구실을 폐쇄하곤 했다. 학생들의 거센 대학 민주화 요구에 서울대 교수 중에 전두환 정부에 참여한 후 대학으로 복귀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조선대에서는 어용무능교수로 지목된 30여명의 교수가 쫓겨나기도 했다. 그렇게 대학 민주화를 위해 싸운 민주화 세대 교수들이 지금은 대학에서 보직을 맡는 등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국가와 시장 권력에 굴종하며 대학의 자율화와 민주화를 거스르는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오늘 학생으로부터 어용교수라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훗날 역사가들이 2015년을 사는 교수와 그의 스승이던 1980년대 교수의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다르게 평가할까. 민주화 세대 지식인의 죽음은 ‘죽음을 넘어 시대를 넘어’ 사회와 대학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업보’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일깨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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