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형’ 인재에 불리··· 여론은 "개선하자"

대입과 교육에 미치는 서울대 영향 커 공익적 책무가 ‘발목’
KAIST는 괴짜 천재 구애에 적극적…서울대 인재상 고민필요

[한국대학신문 이우희 기자]서울대가 입학을 원하는 한 천재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현행 입시제도로는 서울대가 이 학생을 놓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한 분야에서 특출한 괴짜형 천재에게 학교생활기록부를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는 서울대 수시모집은 넘기 힘든 벽이다. 수능 100%인 정시모집 역시 과학영재학교에 재학중인 이 학생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서울대는 어떻게든 천재를 잡고 싶지만 대표적 국립대로서 공교육 중심 입시제도를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도 외면하기 힘든 상황이다. 여론은 이 학생이 원하는대로 서울대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맞다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천재를 데려갈 것인가, 책무성을 지킬 것인가. 서울대의 딜레마다.

■ 세계 석권한 천재중의 천재 = 10일 서울대 공대 문병로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한 일간지 기고에서 “세계정보올림피아드(IOI)에서 단독 1등을 차지한 천재가 서울대에 오고 싶어하지만 현행 입시제도에서는 탈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과학영재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주인공 A군은 지난 8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국제정보올림피아드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에 대해 문 교수는 “총 참가자 327명 가운데 27명이 금메달을 받는데, 이들 중 1~3등은 특별상을 받는다. 거기서 우리나라 학생이 희귀한 600점 만점 단독 1등을 차지한 것”이라며 “이 학생은 현장에서 MIT교수에게 입학권유를 받았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올림피아드 출전에는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주인공은 올림피아드뿐 아니라 각종 프로그래밍 대회에도 한국대표로 참가해 금메달을 휩쓸었다고 한다. 현재 교육부는 대학 입시에서 교내 활동 외 스펙은 일절 자기소개서에 기재할 수 없다. 올림피아드를 포함 각종 경시대회가 사교육을 남발, 공교육을 왜곡하고 명문대 특기자전형을 노린 ‘스펙’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따른 조치다. A군의 열정이 순수한 몰입과 천재성의 발로였더라도 서울대가 해당학생만을 예외로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상황인 것이다.

■ 학생부종합전형은 입학사정관전형이 아니다 = 문 교수의 지적대로 이 학생이 서울대에 지원할 경우 합격이 쉽지 않다.

A군이 지원 가능한 전형은 학생부종합전형인 수시모집 ‘일반전형’이 사실상 유일하다. 과학영재학교는 수능 공부를 따로 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정시모집은 수능성적이 절대적이다. 수시 지역균형선발전형 역시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설정돼 있기 때문에 수능에 응시해야한 지원이 가능하다.

서울대 수시 일반전형은 1단계 서류전형과 2단계 면접 및 구술고사로 진행된다. 1단계에서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추천서 등을 종합평가하는데 학생부를 중요하게 본다. 대회 출전 탓에 상대적으로 내신관리에 소홀했던 것으로 알려진 A군은 학생부 평가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올림피아드 실적을 부각시키면 좋겠지만 어학점수와 경시대회 입상 등은 서류에 일체 기재할 수 없다. 1단계 통과조차 불투명한 것이다.

서울대 입학처 관계자는 “엄밀히 말해 학생부종합전형은 과거 입학사정관제와는 다르다. 입학사정관제는 괴짜를 선발할 수 있었지만, 학생부종합전형은 불가능에 가깝다. 학생부를 비중있게 반영해야하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 천재는 어디로 가야하나 = 그렇다고 문 교수의 지적처럼 서울대에서 불합격한 천재들이 모두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아니다. KAIST와 포스텍처럼 연구역량 면에서 서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과학특성화대학이 있고,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처럼 특성화가 잘 돼 천재들이 몰리는 일반대학도 존재한다. 서울대가 아니면 천재들이 갈 곳이 없다는 시각은 서울대의 오만이거나 서울대가 아니면 안된다는 '서울대 제일주의'일 수 있다.

KAIST의 경우 괴짜형 천재를 선발해 키우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 제도적으로도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기관이기 때문에 교육부의 입시통제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KAIST 이승섭 입학처장은 “흔히 아인슈타인이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으면 대학에 못 들어갔을것이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수학이랑 물리는 잘했지만 화학과 생물은 낙제였기 때문”이라며 ”KAIST는 어느 특정한 분야에서 뛰어난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등 하는 학생 대신 2등 하는 학생을 뽑을 수도 있다. 잘하는 학생과 잘 할 학생이 있다면 후자를 뽑자는 것이 KAIST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 서울대의 '맏형' 딜레마 = 그러나 아직까지 일류대학에 중복 합격하는 과학영재들조차 서울대 선호현상이 강력한 것이 사실이다. 일반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일부 의대 치대 한의대 계열과 특성화학과를 제외하고 서울대는 거의 모든 수험생이 가장 선호하는 대학이다.

서울대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원하는대로 하기엔 서울대가 전체 대학입시와 중등교육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다.

한 고교 진학부장은 “서울대가 하면 나머지가 따라간다. 때문에 정부가 입시정책을 바꿀 때 제일 먼저 서울대에 협조를 구한다. 정부가 줄세우기식 수능 중심 입시를 개혁하고 미국식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할때도 서울대가 제일 앞장섰다”면서 “서울대가 이제와서 사실상의 특목고 전형인 ‘특기자전형’을 부활시킨다면 다른 대학들도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선발자율권을 행사할 것이냐 정부의 공교육 정상화정책을 따를 것이냐 이를 두고 서울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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