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본지 논설위원/ 충남대 교수)

여성 차별 정도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stereotypes)과 실행(practices)을 통해 알 수 있다. 고정관념은 여성 정체성에 대한 인식과 의식이며, 이를 기초로 하는 행위는 실행을 의미한다. 여성 차별은 이 둘이 어떤 형태로 형성되어 있는지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상호보완 관계에 있다. 즉, 상호작용하면서 여성 차별적인 인식이나 의식은 점차 줄어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재생산을 통해 극심한 형태로 증가하기도 한다. 한국은 과잉 학력 사회가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성과 도덕성을 가진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사회로 발전하고 있으므로, 여성 차별이 사라지고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성 차별이 심화하고 있으며,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대학을 포함한 교육 사회가 이를 주도해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돈 크라이 마마’와 ‘한공주’라는 영화에서도 이러한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돈 크라이 마마’에서 한 여학생은 자신이 호감을 느낀 남학생의 이끌림에 스스로 찾아간 건물 옥상에서 무참히 성폭행을 당한다. 가해자는 미성년이라는 조건과 여학생이 스스로 찾아 왔다는 점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리가 되고 경찰 조사로부터 풀려난다. 여학생만의 희생으로 종료되는 것만 같던 상황은 더 악화된다. 성폭행 장면을 녹화한 가해자들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여학생을 다시 유인하여 '성폭행 파티'를 한다. 결국, 여학생은 생일 케이크에 ‘돈 크라이 마마’라는 글을 남기고 자살한다. 이후 여학생의 엄마는 경찰과 사회에게 더는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스스로 처벌을 감행한다. 이 사회에서 여성의 고통을 치유해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 사회에서 성폭행의 출현은 모두 여성의 책임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 같다. 조심하지 않았거나 당해도 어쩔 수 없는 그런 상황, 그리고 그에 대한 인정은 결국 성차별의 실행으로 이어진다. 결국, 여성 차별을 재생산하며 그 정도를 확대하고 있다.

2004년 밀양에서 집단 성폭행이 발생했다. 학교 회장까지 연루되고 지역에 거주하는 지주, 고위직 공무원 등의 자식들이 포함된 100여 명이 1년 이상 성폭행을 했는데, 그에 대한 처벌은 비교적 가벼웠다. '한공주'는 이를 토대로 만든 영화다. 한공주는 집단 성폭행당한 후 서둘러 전학 온 학교에서 한동안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존재가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게 되고 피해자 부모들이 찾아오게 되면서 한공주를 둘러싼 성폭행 사건이 학교와 주변에 알려지게 된다. 이에 대한 부담으로 임시 거처로 머물던 곳 주인도 한공주를 쫓아낸다. 거리로 나서는 한공주는 피해를 받은 내가 잘못한 것과 도망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이 사회에 묻는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실행은 2차, 3차 그리고 더 큰 피해를 가져오고 결국 여성 차별을 심화하는 방향으로 재생산한다.

성폭행이 빈번히 발생하는 것은 한국 사회 구성원이 가진 여성 차별적인 고정관념에서 나타난다. 조사와 처벌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2차, 3차 등 추가 희생들은 바로 이러한 고정관념들의 실행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결국 여성 차별적인 고정관념은 더욱 심화해 재생산된다. 영화에서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학교는 성폭행과 같은 사건들에 대해서 매우 미온적으로 접근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인 여학생에게 많은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대학 사회는 더 심해 보인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이 빈번히 나타나고, 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상식을 넘어선 성역처럼 여겨질 정도로 피해자에게만 책임을 묻고, 가해자에게는 너그럽다.

최근 한 국회의원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성폭행과 관련된 사건의 상황 전개는 한국 교육 사회, 특히 대학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한 권력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대학 사회가 여성 차별에 대한 고정관념과 실행을 반복하며 부끄러움 없이 자행하는 거대한 재생산자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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