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문이 상호 제한없이 융·복합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관건

시작단계 성패 가늠하긴 어렵지만 지속적으로 전략 개발
특정분야 전문가 키우는 맞춤형 융복합과정 안정적 착륙

※글 싣는 순서
<상> 융·복합 시대, 대학의 현주소는

<하> 학문 융·복합 성패, 전략이 관건

▲ 한국외대는 2013년 ‘외교사관학교’ 성격의 LD(Language&Diplomacy)학부를 개설, 언어와 외교 분야의 융·복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송보배 기자] 시작단계에 불과한 학문 융·복합은 아직 성패를 가늠하기 어렵다. 융·복합의 성공 여부를 입증해 줄 대학의 신설학과 인재들은 아직 사회에 안착하지 않은 단계다. 그런 이유로 쏟아지는 대학의 융·복합 학과와 커리큘럼 중 어떤 시도를 성공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도 안개 속에 있다. 융·복합은 대학에 있어 가이드라인이 없는 새로운 도전이다. 하지만 대학들은 시행착오의 위험에도 불구, 지속적으로 융·복합을 모색하고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인철 한국외대 총장은 “미래의 대학은 인접학문은 물론 전혀 다른 학문과 융·복합이 필수가 될 것”이라며 “인문학과 사회과학, IT, BT 등 상호 간 융·복합이 제한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구 중앙대 총장도 지난 17일 본지 개최 UCN(대학경쟁력네트워크) PRESIDENT SUMMIT 컨퍼런스에서 “시대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학문체제가 나타나고 있다”며 “미래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융·복합이다. 융·복합 기조 하에 새로운 학문체제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선제적으로 융·복합을 도입한 대학들 중 비전과 전략 면에서 눈이 띄는 사례들이 있다. 이들 대학들은 구조조정에 따른 졸속 개편이 아니라 중장기적 비전에 따른 전략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계 없이 연구하자” 벽 없애는 대학들 = 대학들은 앞 다퉈 학문 간, 대학 간 경계를 허물고 있다.

고려대는 지난 201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와 함께 국내 최초로 학연교수제를 시행, 대학과 연구기관의 담을 허물었다. 학연교수제란 대학에서는 교수로, 연구소에서는 연구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이중소속제로 상호 인력 교류형태의 학연협력이다. 미국시카고대학의 경우 아르곤국립연구소와 공동임용제(Joint-Appointment)를 시행하며 이 같은 학연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고려대 KU-KIST융합대학원은 이 같은 학연교수제를 도입하고 전공 구분 없이 융·복합 과학기술분야 교육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나노과학(Nanoscience)과 바이오·의과학(Biotechnology-Medical Science) 기술을 이용해 다양한 분야에 접목하고 있다.

이철호 고려대 교수(KU-KIST융합대학원)는 “우리 대학원에서는 연구소 교수들도 전임교수와 같이 수업을 하고 있다”며 “기관과 융합도 진행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KIST 소속 교수님들도 공동지도교수를 맡고 있다. 학생들과 협동연구도 활발하다”고 말했다.

‘융·복합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는 디지스트(DGIST)는 국내 최초로 무학과 단일학부 체제를 도입해 전공의 벽을 없앤 케이스다.

최경호 디지스트(DGIST) 융복합대학장은 “메르스나 지구온난화와 같은 현대사회의 당면 문제들은 기존처럼 한 전공을 통해 풀 수 없는 문제”라며 “사회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21세기의 대학에서는 융·복합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이에 대한 산업체의 요구도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 말했다.

특히 이 대학이 자체개발한 전자교재(e-book)는 눈여겨 볼만하다. 해당 전자교재는 위키피디아와 같이 집단지성을 활용한 사례로, 교수진은 물론 학생들도 교재의 내용과 구성에 참여한다. 이 대학은 전자교재에 대해 이달 특허를 획득하기도 했다. 전자교재 도입으로 보다 적시성 교육에 가까워졌다는 설명이다.

최경호 학장은 “이공계의 학문들은 빠르게 진화하는데 기존 서책들은 이공계 학문의 변화 속도를 담아내지 못했다”며 “빠르게 변하는 새로운 지식들을 교재에 바로 담을 수 있도록 교재를 살아있는 생물처럼 만들어보자는 것이 전자교재에 담긴 발상”이라 말했다.

‘맞춤형 교육’ 포커스 맞춘 융·복합 학과도 = 서울 주요 사립대를 중심으로 ‘어떤 학생을 양성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목적을 설정하고 이에 대한 ‘맞춤형 교육’에 집중한 융·복합 과정이 정착되고 있다.

한국외대는 2013년 ‘외교사관학교’ 성격의 LD(Language&Diplomacy)학부, 지난해 ‘통상사관학교’ 성격의 LT(Language&Trade)학부를 개설했다.

김인철 한국외대 총장은 “종합대학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리대학의 강점 분야인 언어·문학·지역학에만 안주할 수 없다. 어문학과 일반 학문 영역을 각각 세로축과 가로축에 놓고 학문적 짝짓기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LD학부와 LT학부는 견고한 언어교육을 기반으로 각각 외교와 통상의 전문교육을 도입한 예다.

이상환 LD학부장은 “전문적인 언어교육을 시행하는 한편 국제법·정치 등 융합과목을 도입해 학생들이 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국립외교원 등 견학교육과 전·현 대사들의 현장 교육 등 외교 분야에 맞는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학부장은 “사회 바라는 건 특정한 어젠다를 폭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전문가”라며 “진정한 융·복합 교육이 성공하려면 학생들이 입학했을 때 ‘무엇이 되고 싶냐’를 묻고 이에 해당하는 분야 학문을 뽑아서 맞춤식 커리큘럼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양대의 정책과학대학 역시 학생 진로에 대한 분명한 비전하에 융·복합 교육을 도입한 경우다. 국가 공공부문 파워엘리트 양성을 목표로 옥스퍼드대학의 PPE과정에 법학을 접목시킨 형태의 융·복합과정을 시행한다.

이호용 정책과학대학 정책학과장은 “현대사회에서 공공센터 지도자가 되려면 법, 경제, 정치, 행정, 철학 이런 학문분야가 필요하다. 우리 학과는 이를 고르게 교육한다”고 말했다.

대학 현장에서 융·복합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융·복합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라 입을 모았다.

이철호 교수는 “융합 잘 하려면 에티튜드(attitude)가 중요하다. 그게 안 되니 융·복합적 사고를 하도록 교육을 하는 것”이라며 “융·복합이란 무조건 섞는 것이 아니고 전공 수업 통해서 깊이 있는 교육을 하고 다른 전공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쌓아 T자형 사고가 가능토록 하는 것”이라 말했다.

융·복합 교육이 새로 출현한 형태인 만큼 학생의 수용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이호용 학과장은 “융·복합 교육을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건 사실”이라며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밀착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학교에서 ‘연구실 문턱이 가장 낮은 학과’로 언급될 정도로 학생들과 많은 교류를 한다”고 말했다.

최경호 학장은 “입시설명회를 할 때도 항상 학교가 가진 비전과 철학을 설명하고 이 때문에 우리 대학이 무학과 단일전공을 시행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최근 우리대학의 학생만족도가 높게 나왔다. 여기에는 우리대학의 철학에 대한 학생들의 공감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학생 스스로가 공감을 통해 선택을 하고 그러한 선택에 만족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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