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이자도 못 받는 기부…모금액 40억 넘는데 실체 없어

은행권, 직원 기부 강제 논란…은행들 실적경쟁 번질까 불안
금감원 “강제 가입논란 조사 계획 없다”

[한국대학신문 손현경 기자]  청년 일자리 재원 조성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제안하면서 출시된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청년희망펀드)’에 민간 투자가 줄을 잇고 있지만 ‘실체 없는 강제 투자’라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국무회의에서 청년 일자리 펀드 조성 방안 마련을 지시한 후 일시금 2000만원을 청년희망펀드에 기부하고 연봉의 20%(약 320만원)를 매달 납입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정부관료와 재계, 민간의 투자가 줄을 잇고 있다.

1일 정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청년희망펀드’ 모금액은 약 40억 원이 넘는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실체 없는 펀드에 ‘너도나도’ 눈치 투자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름은 ‘펀드’인데 투자한 사람은 원금과 운용수익을 돌려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희대 경제학과의 한 교수는 “정작 희망펀드는 실체조차 없다”며 “이름은 펀드이지만  내용은 ‘기부금’인 셈이다. 돈을 운영할 주체도 운영방식도 정하지 않고 돈부터 걷고 있다”고 비판했다.

펀드는 펀드 가입자가 맡긴 돈을 자산운용사가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해 성과를 고객에게 돌려주는 상품이다. 운용결과에 따라 가입자는 수익을 얻거나 손해를 입을 수 있다. 이와 달리 청년희망펀드는 수익금을 돌려주지 않는다. 이름만 펀드일 뿐 사실상 ‘기부’인 것이다.

명지대 경제학과의 한 교수 역시 “청년희망펀드는 공익펀드이기 때문에 원금과 운용수익을 돌려주는 구조가 아니다. 그만큼 운용수익 극대화 유인이 약하다. 원금 손실을 내지 않으려면 민간 운용이 불가피하겠지만 책임 소재 불분명과 유인 부족으로 희망펀드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야당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청년희망펀드는 취업대란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기부 동원 이벤트”라며 “청년희망펀드가 뚜렷한 목적도 없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졸속으로 시작된 이벤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은행권에선 직원들에게 펀드 기부를 사실상 강제했다 철회한 해프닝도 벌어졌다.

공익신탁을 취급하는 5개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지난달 21일부터 가입신청을 받은 KEB하나은행은 같은 날 임직원에게 가입을 독려하는 단체메일을 보내고 일부 지점에선 1인당 1계좌 의무가입을 사실상 할당하기도 했다. 이후 ‘기부를 강요한다’는 논란이 일자 KEB하나은행은 다시 이메일을 보내 ‘의무’가 아니라 ‘자발’ 가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수탁은행들은 단순 접수창구의 역할을 넘어 행여 정부 눈치를 보는 실적경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금융산업노동조합은 “청년희망펀드가 은행원들의 실적 압박으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첫날부터 가입 규모를 공개하며 흥행을 홍보하던 은행들은 돌연 개별 모집실적 공개를 중단하고 은행권 전체 실적만 통합 공시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청년희망펀드 강제가입 논란과 관련해 조사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시중은행이 임직원들에게 청년희망펀드 가입을 강요했다는 논란에 대해 조사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은행법과 내부통제기준 등 제도적으로 임직원을 보호할 수 있도록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은행법에는 공정한 금융거래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사항을 불공정영업행위로 명시해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불공정영업행위는 은행과 고객 간 해당되는 사항으로 이번 경우처럼 은행과 임직원 사이 영업과 관련한 조항은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내부통제기준 등 제도를 강화해 금융 노동자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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