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수(본지 논설위원/성신여대 교수)

최근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대통령도 청년희망펀드를 제안하고 많은 사람들이 가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청년희망펀드로 무엇을 어떻게 해서 청년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인지 아직은 모호하다. 청년을 지원한다면 현재 청년이 처해 있는 상황부터 조사를 하고, 문제점과 원인을 분석하며, 문제점을 해결할 정책을 결정하고, 그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순서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돈은 얼마를 모금할 것인지조차 정하지 않은 채 막연히 모금을 하고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청년을 위한 대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청년희망펀드의 유일한 의의는 청년 문제에 관하여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정도가 아닐까 한다. 기부에 의존하는 이러한 펀드는 지속가능성이 매우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원하는 정책도 아니다. 청년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구성원들로서 필요한 제도적 보장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주체이지 동정과 자비심에 의존한 시혜를 받을 대상이 아니다.

빈부 격차가 적고 대부분의 부모가 자녀 교육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회에서는 교육 문제를 각 가정에 맡겨놓고 정부는 약간의 도움만 주는 정책을 취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실정과 같이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수많은 청년의 부모들이 실직한 상황에서도 그러한 정책을 고수한다면 국가의 미래가 암울할 수밖에 없다.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능력 있는 청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고, 졸업하고 나서는 빚을 갚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어떻게 나라의 미래가 밝을 수가 있겠는가. 청년들이 경쟁력을 갖춘 당당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각 가정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할 당연한 의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그러한 사회적 의무를 외면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청년들은 독립하여 혼자 살아갈 기반을 마련하는 것에도 오랜 세월을 보내야 한다. 그 결과는 결혼의 포기와 출산율 저하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나라는 저출산에 의해 머지않아 소멸될 수밖에 없다. 노인들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로부터 기초노령연금을 지급받고 있다. 그런데 청년들에 대해서는 생활보조비나 학업보조비를 지급하면 안 되는 것인가. 자신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는 청년들에게 생활보조비를 지급하는 것은 노인들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는 것보다 훨씬 정당성이 있는 제도다.

최근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청년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청년희망펀드를 만들고 기회균등에 관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성남시에서는 청년에게 1년에 100만원을 지급하는 청년배당도 실시한다고 하니 약간의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계획조차 모호한 청년희망펀드나 특정 지방자치단체에서만 시행하는 청년배당으로는 청년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청년들이 안심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으려면 생계 걱정을 줄여 주어야 한다. 기왕에 청년희망펀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으니 논의를 확대하여 청년층 전체에게 생계비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물론 이러한 제도의 시행을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이 필요할 것이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제도의 시행을 포기하여서는 안 된다. 각 가정이 청년층을 위해 개별적으로 금전을 지출하고 있다면 그것을 모아서 국가가 공평하게 청년층에게 배분하는 것이 사회 정의에 부합하고 빈부 격차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의 힘은 어려울 때 더욱 발휘될 수 있다. 각자 당장의 상황이 어렵더라도 고통을 분담하여 청년들이 사회에서 힘찬 첫걸음을 뗄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