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억눌린 문화에 이공계 기피, 과제중심 지원, 시기와 분열까지

[한국대학신문 이우희 기자] 올해 노벨상 시상식도 '남의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6일 현재 생리의학상과 물리학상이 발표됐고 7일에는 화학상이 결정된다. 평화상과 경제학상을 제외한 노벨상 핵심 과학분야가 하나만 남았지만 혹시나 했던 낭보는 없었다. 올해는 톰슨로이터가 예상한 후보명단에도 한국인 과학자는 오르지 못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연구개발(R&D) 예산규모 OECD 1위, 전체 R&D 예산규모 세계 6위라는 숫자가 무색하다. 일본은 20세기 이후 세계에서 3번째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세계적인 기초과학 강국이고, 중국도 이번에 토종과학자가 처음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일까.

▲ <사진=노벨위원회 홈페이지 캡쳐>

■ 호기심이 억눌린 문화 = "한국인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지난해 아론 시카노버 서울대 초빙석좌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과학분야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딱 잘라 한마디로 대답했다. 그는 “오늘 한국 초청으로 기자회견에 참석해 한 시간 동안이나 앉아 있었다. 그런데도 10여명의 한국 기자들은 단 하나의 질문도 하지 않더라. 결국 질문한 사람은 사회자였다. 호기심을 갖고 권위에 도전하는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일갈했다.

질문을 하지 않는 학생들은 대학이나 대학원에 들어가서도 교수의 권위에 감히 도전하지 못한다. 시카노버 교수는 이스라엘 학생들은 자신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질문을 던지고 함께 토론하는 데 익숙하다고 전했자. 반면, 이공계 연구자들의 커뮤니티인 포스텍 생물학연구정보센터 '브릭'(BRIC) 한 회원은 "제가 있는 학교도 세칭 명문대라고 불리지만 학생들은 지극히 수동적"이라며 "외우는 것은 잘 하고, 남이 써놓은 논문은 잘 이해하지만, 그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 기대했다가는 연구실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고 푸념했다.

■결국은 대학의 성과 = 최근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는 이른바 '비 명문대'에서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오무라 사토시 교수는 1958년 지방대학인 야마나시대 자연과학과를 졸업하고 야간고 교사를 지내다가 현재 기타사토(北里)대에 몸담고 있다.

지난해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개발한 공로로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한 나카무라 슈지 교수는 스스로를“지방에서 태어나 지방대학을 졸업하고, 지방기업에 취직해 내가 하고 싶은 연구에 몰두했더니 노벨상을 받게 됐다”고 소개한다. 그는 일본에서도 낙후된 지역인 시코쿠의 에히메현 출신으로 도쿠시마대학을 다닌 졸업 후 도쿠시마현에 있는 중소기업에 취직해 LED제품화에 성공했다.

정민근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최근 미래부 국정감사에서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에 근접한 연구자의 규모를 20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는데, 일본은 나고야대 한 곳의 노벨상 근접 연구자 규모가 그 정도다"고 말해 일본대학의 저력을 소개하기도 했다.

실제 지방대학인 나고야대는 졸업생 3명, 교수 3명 등 총 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2000년 이후 노벨상을 수상한 13명 중 절반 가까이가 이 대학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고야대의 학생 수는 대학원생을 포함해 1만6000명에 불과하다. 재학생의 80%가 나고야시가 있는 아이치현 등 주변 4개 현 출신이다. 최근 학령인구 감소를 전가의 보도 삼아 지방대학의 정원을 우선적으로 감축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꿈 같은 이야기다.

■사람중심 연구지원 '절실' = 노벨상 수상은 오랜 기간 한 분야를 연구하는 기초과학 연구자들이 주로 수상하지만 우리나라 연구지원 제도는 장기 연구를 가로막는다는 불만이 높다. 한국은 대학과 연구소에 연구비를 지원할때 사업을 공모해 우수한 '과제'에 연구비를 지원한다. 사업마다 다르지만 보통 2~3년, 길어야 5년간 연구비가 지원된다. 이후에는 같은 분야를 더 연구하고 싶으면 연구비 지원을 포기해야 한다. 연구비를 지원받으려면 기존 과제와는 다른 새로운 '과제'를 제안해야 한다.

안화용 연구재단 기초연구총괄실장도 "휴보로 재난 로봇 경진대회 1위를 차지한 KAIST 오준호 교수는 적은 연구비라도 열정 있는 교수들에게 꾸준히 10년 이상만 지원한다면, 놀랄만한 성과가 쏟아져 나올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막대한 연구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래도록 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질투와 시기···분열된 과학계 = 사람중심 연구지원의 또다른 이름은 결국 '선택과 집중'일 수밖에 없다. 국가적으로 존경받는 업적을 쌓은 과학자라도 특급대우는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강하다.

한 과학계 원로는 "과거 정부가 윤한식 박사의 아라미드 펄프 관련 연구 성과를 높이 사서 월 200만원의 연금을 만들었지만, 이를 시기한 다른 과학자들의 투서로 없던일이 됐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실제 청와대 투서가 가장 많은 분야가 과학계라는 말이 있을만큼 우리나라 과학계는 투서천국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정부 연구지원 사업 선정이나 출연연 기관장 공모철만 되면 갖가지 투서가 난무해 과학계가 몸살을 앓는다. 특유의 아니면 말고 식 투서문화로 인해 과학계 기관장들은 공격적인 투자와 연구에 매진하기 보다는 보신주의 경영을 하는 경향이 만연하다.

한 원로 과학자는 "과학자를 평가하는 것은 결국 동료 과학자다. 과학정책을 세우는 것도 과학자들이 논의해서 제안하면 정부는 이를 시행하는 것뿐"이라며 "과학자들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스타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문화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공계 교수일수록 자녀는 의대를 권한다" = 이공계열 기피도 여전하다. 최고의 수재들이 여전히 과학계보다 의사와 치과의사, 한의사에 몰리는 것이다. 부모가 과학자일수록 자녀들에게 의대를 권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공계열 영재들의 의대 선호는 고등학교때부터 시작된다. 서울지역 과학고와 영재학교의 의학계열 진학비율은 20%를 넘나든다. 서울에 위치한 프리미엄에 전국단위 입시가 가능해 최고의 영재가 몰리는 서울과학고는 2012학년도 21.43%(21명), 2013학년도 22.50%(27명), 2014학년도 14.75%(18명), 2015학년도 19.38%(25명)가 의학계열로 진학했다. 게다가 의학계열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각 과학고, 영재학교 안에서도 정상권인 경우가 보통이다. 연간 수백억원에 달하는 세금으로 가르친 상당수 영재들이 의사나 치과의사가 되는 것이다.

정부가 홍보하는 국제 수학과학올림피아드 실적도 실상은 이공계 기피를 상징하는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다. 지난 2008~2011년 4년 간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천문, 정보 등 국제올림피아드에서 수상한 대학진학자 3명 중 1명이 의대에 진학했다. 전체 수상자 162명 가운데 대학진학자는 118명이며 이 중 35명(29.7%)이 의학계열로 간 것이다. 특히, 노벨상 수상 분야와 정확히 겹치는 화학과 물리, 생물 국제올림피아드 수상자들은 각각 70.0%(14명), 59.1%(13명), 55.6%(10명)가 의학계열로 진학했다.

이러한 현실은 대학 연구실까지 어지럽힌다. 한 서울대 자연대 교수는 "의전원에 진학하려는 학생들로 진지하게 연구하고자하는 학생들이 비주류가 되어 버린다"고 고백했다.

■국민 조바심에 보여주기 정책 난무 = 하지만 우리 과학기술의 짧은 역사에 비춰 국민들이 노벨상에 너무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은 국정감사에서 "과학기술은 오랜시간 투자가 필요하며, 메이지유신 이후 120여년 간 지속적으로 기초과학에 투자해온 일본에 비하면 우리의 연구개발 투자 역사는 사실 매우 짧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은 노벨상 수상이 시작된 1901년부터 후보자가 있었으며, 48년을 기다린 끝에 1949년 첫 과학분야 노벨상수상자(유카와 히데키, 노벨물리학상)가 나왔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81년 동안 꾸준히 기초과학에 정진한 결과 1949년에야 비로소 노벨상이 나온 셈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처음 후보자가 나왔으니, 일본의 속도에 비유하자면 최소 48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다.

국민들의 조바심에 보여주기 정책이 난무하는 것도 문제다. 서울대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7명의 노벨상 수상자급 해외 석학을 초빙했다. 토마스 서전트 경제학부 석좌교수와 찰스 리 의과학과 초빙석좌교수, 필립 김 물리천문학부 초빙석좌교수, 아론 시카노버 의과학과 초빙석좌교수 등이 그들이다. 이들 7명을 위해 서울대가 연간 3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국고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보여주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수 1인당 소요경비가 최소 2억에서 최대 15억에 이르지만 이들 가운데 학부와 대학원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사람은 토마스 서전트 교수와 찰스 리 교수 두 명 뿐이다. 국내 체류기간도 보통 세 달이 넘지 않는다.

강의를 맡기로 계약까지 하고도 초빙이 무산된 경우도 있다. 2011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다니엘 셰흐트만 이스라엘 테크니온공대 교수는 지난해 초 물리천문학부 석좌교수로 부임할 예정이었지만 돌연 귀국했다. 갑작스럽게 이스라엘 대통령에 출마하게 된 탓이었지만, 서울대의 해외석학 초빙사업을 바라보는 여론은 한층 악화됐다. 차라리 사업비를 국내 교수들에게 투자하라는 학내 목소리도 커졌다.

최근 미래부는 과학계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람중심 연구지원과 한우물파기 연구 장려 등을 포함한 '정부 R&D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16년부터 전체적인 기초연구 지원 틀이 과제중심에서 사람중심으로 전환된다. 개인연구자 지원정책의 경우 자연과학, 생명과학, 의약학, 공학, ICT·융합 등 5개 분야로 나누어 분야별 지원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한우물 파기 연구는 적극 장려돼 앞으로는 동일한 연구주제라도 계속 지원이 가능해진다. 또 2000만~5000만원의 소액연구비를 10~20년 이상 꾸준히 지원하는 생애 전주기적 연구지원 방안도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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