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종(전 주필/문학평론가, 전 덕성여대·경희대 교수)

전쟁에는 인간의 양심이 진정으로 찬미해 줄 수 있는 승리의 깃발은 없다. 하나를 잃고 천배 만배를 얻은 승이라 해도 잃어버린 소중한 모숨 하나에 대한 보상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대학신문이 그런 승자의 깃발이 휘날리던 시기에 태어났다. 6-10 민주항쟁으로 군사독재정권을 대학의 젊은이들이 무너뜨리고 6-29 선언으로 새로운 역사의 마당을 열어나가기 시작한 것이 1987년이며 한국대학신문은 그 이듬 해 그 열기 속에서 태어났고 그것은 그런 전쟁의 깃발이 휘날리던 흥분 속에서 창간 제1호를 맞았다. 전두환은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한 대학생을 희생의 제단에 올려 놓은 댓가로 얻어진 것이며 대학신문은 이런 슬픔의 깃발 아래서 태어난 것이다.

5-16으로부터 시작된 군사정권이 마침내 그 태생적 속성을 버리지 못하고 폭주를 거듭하다가 미친 자의 광주 대량 학살로 이어지고 용공을 조작하며 박종철군을 고문 학살 은폐하던 야만의 극치는 대학생들의 바른 지성과 분노와 정의와 용기에 의해서 겨우 제동이 걸렸었다.

그런 의미에서 1987년의 6-10 항쟁은 우리의 참으로 빛나는 역사이고 세계적으로도 대학 역사의 금자탑이며 한국대학신문은 그 정의와 분노와 참된 지성이 지글지글 끓어 오르는 지열을 받으며 고고하게 태어나서 어언 27년이 되었다.

그런데 군사독재가 무너지고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며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리고 있었다 해도 모든 전쟁 터가 그렇듯이 대학도 어느 의미에서는 너무도 황량한 벌판이요 이정표가 없는 어둠을 달리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분단 후 나라는 섰지만 언론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되고 대학의 목소리가 짓눌려 있던 오랜 세월동안 우리 대학은 자신들의 자화상을 바로 볼 수 있는 거울이 없었다. 교내 신문만으로는 누구도 한국 전체 속의 나를 확인할 수 없다. 또 세계라는 거울 속에서 자신을 확일할 방법도 없었다.

이 시기에 한국 속의 나를 보고 세계 속의 나를 보고 과거와 미래 속에서 자신을 비춰 볼 수 있는 나를 만들어 준 것이 한국대학신문이다. 모든 대학 정보가 이 자리에 모이며 취합 분석을 거치고 이 땅에서 처음으로 대학 데이터베이스의 금자탑이 만들어 진 것이다. 식민 통치의 열악한 환경에서 부터 성장해 온 한국대학의 고난의 역사를 기술하기 시작한 것도 그런 노력의 하나다.

‘푸른 하늘 은하수의 하얀 쪽배’는 돛대도 없고 삿대도 없이 잘만 흘러 가더라고 노래했었지만 등대도 나침반도 없이 망망대해 캄캄한 밤바다를 달리는 것은 너무도 무모하다. 이에 한국대학신문이 나침반이 되고 등대가 되고 레이더가 되고 온 나라와 온 세계의 캄캄한 바다에 눈과 귀를 달아 주고 입도 달아 준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대학이 곧 국력이라는 확신에 도달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제작이 취재와 운영의 모든 면에서 아무리 어려워도 이것이 지니는 절실한 사회적 역사적 가치를 국가와 국민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동참해 주지 않으면 이것은 결코 살아 남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난관을 극복하여 오늘에 이른 자화상을 스스로 바라보면 이에 직접 참여 해온 관계자들은 뜨거운 감회를 잊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가치를 이해해 주고 격려해준 많은 관계자들의 적극적이며 더 뜨거운 관심이 없었다면 오늘의 27주년은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이런 관계가 천년 만년 후에는 어떤 꽃동산으로 나타날지 보고싶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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