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세대 은퇴 시작…한국어교사 과정 등 '인기'

미래에는 '은퇴' 자체가 사라지고 평생학습시대 올 것

[한국대학신문 이우희·이재익·천주연 기자] #대구 지역 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다 교감까지 지내고 은퇴한 장덕철(62) 씨는 현재 대구사이버대 한국어다문화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는 “정년퇴직을 하고 돈벌이를 하기보다는 그 동안의 교직 경험을 살려 사회에 봉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차에 다문화 가정을 위한 한국어교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대학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4년제 학위를 다시 취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은퇴 이후에 대비해 유용한 자격증이나 교육과정을 이수하려는 목적이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교육부가 주도해 대학 정원 감축에 나서는 상황에서 은퇴를 준비하거나 이미 퇴직한 성인학습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 교육부는 은퇴를 전후한 성인학습자를 포함한 전체 성인학습자의 규모가 14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학령인구 감소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대학들에게 새로운 교육 소비자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대구사이버대 한국어다문화학과의 수업 장면. <사진=대구사이버대 제공>

■ 은퇴가 빨라졌다 =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한국 직장인의 평균 정년은 55세 전후로 나타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정년이 65살인데 비해 10년이나 빠르다. 서구 국가에 비해 노인복지가 아직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은퇴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퇴직 시기는 더 빨라졌다. 취업정보 전문 업체 잡코리아가 지난 2010년 조사한 직장인들의 체감 정년퇴직 연령은 48.2세로 실제보다 훨씬 낮았다.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2013년 NH은퇴연구소의 '고령화시대, 노후준비 니즈 연구'에서도 만 30세 이상 일반고객 55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0대 연령층의 25.2%가 '20대부터 노후준비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은퇴를 대비한 대학교육 수요자는 좁게는 45~60세, 넓게는 30세 이상 전 연령대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직면한 대학들이 은퇴자 교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배경이다.

대구사이버대 이준영 홍보담당관은 “퇴직 후 공부하는 사람 뿐 아니라 직장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은퇴 이후를 대비한 잠재적 은퇴자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인생 2모작···늘어나는 성인학습자 = 은퇴를 전후한 성인학습자를 포함한 전체 성인학습자의 규모는 상당하다. 교육부는 성인학습자를 ‘학생 신분을 벗은 후 이직이나 창업 등 갖가지 이유로 공부에 매진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성인학습자 규모는 현재 14만명에 달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5년 현재 교육유형별 성인학습자 규모는 대학의 울타리 안에 △평생학습중심대학 3230명 △재직자특별전형 5932명 △전문희소대표대학 225명 △전공심화과정 12735명 △방송·사이버대 2000명 △계약학과 1만3377명 △산업체위탁 8103명 정도가 있다고 본다. 기타 기관에는 △학점은행제와 독학사 8만2000명 △폴리텍 8000명 △후직한특별사내대학(기술대학) 550명이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도 이들을 새로운 교육 수요자로 주목하고 있다. 평생학습중심대학이 대표적이다. 교육부는 평생학습중심대학 사업계획을 밝히며 “대학은 여전히 학령기 학생 위주의 교육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늘어나는 재직자, 은퇴자 등 성인 교육수요를 수용하려다 보니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고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에따라 교육부는 평생학습중심대학 육성사업을 통해 고졸 취업자가 일과 학습을 병행할 수 있는 계속교육 지원시스템과 함께 직장인과 퇴직자 등 성인학습자가 생애 주기별 맞춤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대학의 전환을 유도했다.

예산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 2013년의 경우 25개교 약 78억원에서 2014년도 45개교 102억원, 올해는 131억원으로 대폭 확대했다.

2015년 평생학습중심대학 육성사업 지원대학은 총 42개 일반대학과 15개 전문대학 등 총 57개 대학들이 선정됐다. 이 가운데 학위과정 운영대학(캠퍼스 구분)은 △강동대학 △강원대 △경기과기대학 △경남과기대 △경남정보대학 △공주대 △광주대 △구미대학 △국제대학 △남서울대 △대진대 △동명대 △동아인재대학 △상명대(서울) △상명대(천안) △서원대 △세경대학 △수성대학 △순천대 △순천향대 △신한대△영남이공대학 △영산대 △위덕대 △유한대학 △인제대 △전북대 △전주기전대학 △총신대 △호원대 등 30개 대학이다.

비학위과정은 △가톨릭관동대 △경동대 △경상대 △경희대 △극동대 △금오공대 △남부대 △남서울대 △대진대 △동명대 △동양대 △배재대 △상명대(서울) △전북대 △산기대 △한양대 △호원대 등 17개 대학이 선정됐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임숙경 대학평생학습실장은 “현재 어느 부처나 마찬가지겠지만 고령화 저출산 영향으로 관련 정책들이 퇴직 이후 삶으로 연결된다”며 “교육부와 같이 하는 평생학습중심대학 사업의 경우 학위과정과 비학위과정 등을 통해 퇴직자들의 고용안정을 돕고 있다”고 밝혔다.

■ 은퇴자들이 선호하는 전공은 = 은퇴자들이 선호하는 전공분야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다만 은퇴자들은 성공보다는 나눔과 행복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다.

대구사이버대에 재학 중인 장 씨는 "은퇴자들은 성공을 좇기보다는 경험을 나누려는 마음이 크다"면서 "주변의 퇴직 교사들도 자신의 전공 과목을 살려 강의를 다니는 등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현재 은퇴자들은 아직까지 학위과정보다는 자격증 과정 수요가 더 높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임 실장은 “학위과정은 퇴직하신 분들이 드물다. 예를 들어 뷰티 관련 일을 해오신 분이 대학에서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고자 할 때 정도다”고 말했다.

다만 은퇴자들이 몰리는 비학위과정은 대학 이외의 기관에서도 수강할 수 있지만 대학이 비교우위에 있다. 임 실장은 “퇴직 후 요양보호사로 취업하길 원하는 경우 일반 교육기관에서는 자격증 취득 과정에 그치지만. 대학은 자격증 취득 과정에 더해 현장실무 과정과 자원봉사, 취항업지원 등을 아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은퇴를 준비하거나 은퇴한 이들에게 인기있는 직종으로는 △한국어교사 △사회복지사 △바리스타(카페 창업) △주택관리사 △한의사 △소믈리에 △공인중개사 △전업강사 △산림해설사 △역사해설사 등이 손꼽힌다.

최근에는 해외 한류의 영향과 국내 다문화 가정의 증가로 한국어교사의 인기가 높다. 국내체류 외국인 수는 지난해 180만명으로 일반 국민을 포함한 국내에 거주하는 전체 인구 수의 3.6%에 달한다. 덕분에 한국어교사가 되면 복지관 등 평생교육기관에서 일하며 최소 월 100만원 이상을 벌 수 있다고 알려졌다.

이희경 고려대 국제어학원장은 “최근 한국어교사 양성과정의 수강 연령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 여성은 출산 후 직업복귀를 위해, 남성은 조기퇴직이나 퇴직 후에 다문화 관련 일을 위해 수강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한국어교사 자격증은 일반대학 이외에도 사이버대나 전문대, 학점은행 기관 등을 통해서도 취득할 수 있다. 대구사이버대학의 경우 인기가 높은 한국어다문화학과에는 168명이 재학 중이다. 이 중 직장인 학생의 비율이 57.2%에 이른다. 연령대 별로는 20대 10.1% 30대 19% 40대 46.4% 50대 20.2% 60대 4.2% 로 40대 이상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은퇴했거나 은퇴 이후를 대비하는 수요가 높다는 의미다.

■ ‘은퇴’ 없는 시대 온다 = 나아가 은퇴자 등 성인학습자에 대한 대학들의 대응은 훨씬 더 신속하고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들이 대학구조개혁 평가, 정부사업 선정 경쟁, 대학자율성 확보 등 현안에 손발이 묶인 탓에 미래에 대한 대비에는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미래학자인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는 저서 ‘유엔미래보고서’에서 “미래에는 동시다직종 시대가 도래하며 모든 직업에서 3~4개 분야의 전문지식을 원하게 된다”며 “전공 하나로 그 분야에서 평생 일자리를 갖는 시대는 지나간다. 20대에 대학을 졸업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분야는 물론 다른 분야의 공부를 계속해서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미래학자들의 경고에 정부도 걸음마 단계지만 조금씩 대비하는 모습이다. 평생교육진흥원 임 실장은 “내년에는 평생학습중심대학 사업과는 별도로 300억원 규모의 ‘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을 시행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는 재직자 중심 사업으로,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던 사람들이 사회경험을 가지고 대학에 올 때 일과 학습을 병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업에 선정된 선도대학들은 기존에는 일반적으로 30주 이상의 2개 학기로 운영되는 학제를 재직자들에게는 계절학기를 활용한 다학기제나 학기당 4주 이상의 집중이수제, 야간/주말 과정, 온라인 강의 등을 활용하도록 다양화한다. 이미 이수한 교양과정‧근무경력을 학점으로 인정하는 경험학습인정제도 전문대학에서 일반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사업에 대해 평생교육 수요를 빼앗길 것을 우려한 사이버대학이 반발하는 등 교육부가 앞으로 풀어야할 과제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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