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人君所畏者, 史而已)”

이 말을 남긴 이는 조선의 폭군 연산군이다. 조선의 임금 중 역사 기록을 싫어하고 사관을 미워한 이가 연산군 뿐만은 아니었으나, 연산군은 환관 김처선이 직언을 했다는 이유로 다리와 혀를 잘라 죽일 정도로 직언과 직필을 거부했다.

최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거세다. 정부와 여당은 많은 논란 속에서도 교과서 국정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는 국정감사가 끝난 이달 셋째주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를 발표할 예정이라 한다. 교육부가 공개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국정교과서 체제가 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교육부가 2017년까지 중고교의 역사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계획을 밝혔고, 지난달 23일에는 ‘2015 개정교육과정’을 고시하는 등 이미 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작업을 구체화하고 있는 까닭이다.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은 학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치고 있다. 지난달 서울대, 부산대, 덕성여대, 고려대, 연세대, 한국외대, 경북대 등 주요대학 교수들은 줄이어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고려대는 160여 명이 성명에 서명해 이 대학의 대외 성명 중 최대 인원이 참여했다. 연세대도 132명의 교수들이 국정화 반대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교수들은 세계적 추세가 검인정에서 자유발행제로 넘어가고 있음에도 정부가 시대를 역행한 시도를 하고 있다며 일침을 가했다. 교육적인 추세를 거슬러가며 국정화를 시도하는 것은 단연 역사왜곡이며 그 의도는 정치적이고 불순한 것이라 지적했다. 획일화된 교과서 도입으로 인한 교육의 자주성 훼손도 염려했다.

지난 1일에는 전국 모든 역사교육과 학생회가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23개 대학의 역사교육과 학생들은 교육부가 추진하는 개정교육과정이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을 고스란히 반영했다고 주장했다. ‘획일적 역사관’을 주입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획일’이 특정 역사관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 이들 예비교사들의 비판이다.

이렇게 많은 우려와 비판 속에서도 정부와 여당은 공고하다. 여당은 이달 역사 교과서 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교육부도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 12명이 1일 대법원에 상고한 것에 대해 2일 긴급 브리핑을 열며 “(2011년판 교과서는)북한 교과서 일부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며 맹비난을 쏟아냈다. 지난 2012년 교육부는 검정합격 교과서 7종 829건에 대해 수정명령을 내렸고 6종 교과서 집필진 12명은 이 명령에 불복, 수정명령취소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북한 교과서 보는 느낌’이라며 검정합격 교과서에조차 맹렬한 비판을 쏟아내는 교육부가, ‘북한 교과서와 같은’ 방식의 국정화를 추진하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육부의 그 ‘불편함’ 때문에 학계가 이에 감응해야 한다면, 학문의 자유라는 것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역사를 두려워하는 이는 지금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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