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관·학 협력에서 미래 고등교육 경쟁력 키울 수 있어야”

[한국대학신문 김소연 기자] 우리나라 4년제 대학은 총 197개가 있다. 그 가운데 국공립대학이 31개, 사립대학이 165개로 사립대학이 고등교육의 약 80%를 차지한다. 한국 고등교육은 사립대학이 오랫동안 담당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들이 최근 학령인구 감소, 대학 구조조정, 대학 재정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위기에 처해있다. 본지는 창간 27주년을 맞아 이인원 본지 회장이 이대순 한국대학법인협의회 회장을 직접 만나 현재 사립대학이 처한 위기와 미래 고등교육 방향, 대학의 역할 등에 대해 들어봤다.

▲ 이대순 한국대학법인협의회 회장(왼쪽)이 본지 이인원 회장과 환담하고 있다. (사진=한명섭 기자)

- 최근 교육부가 부실대학을 퇴출시키고 대학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때문에 사립대학 내부에서는 진통을 겪고 있다. 한국대학법인협의회 회장으로서 어떻게 보나.
“근본적으로 지금처럼 많은 대학들이 난립하게 된 원인은 1995년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으로 준칙주의에 의거해 많은 대학이 설립됐기 때문이다. 준칙주의를 택했을 때는 사전 규제로부터 사후 규제로 넘어간다는 의미인데, 사전 규제를 완전히 완화시켜놓고 이후 고등교육의 질이나 운영에 대해 정책보완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일본과 큰 대비가 된다. 과거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택했으나 여기에는 사후평가 제도가 있어 엄격한 평가를 병행해 대학의 질적 저하를 막고 대학 간 경쟁을 시켰다. 그런데 우리는 무조건 설립을 가능하게 해놓고, 나중에 사학 간 경쟁이나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부실대학이 대거 나타났다. 결국 학령인구가 줄어든다는 사회적 원인도 있겠으나 정부 정책도 하나의 원인이 된다.”

- 정부 주도의 대학구조개혁 평가에 대한 입장은.
“사학제도를 인정한 민주국가에서 정부가 나서서 대학들을 퇴출시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사학의 자유를 인정하고 제도를 도입한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의 교육 선택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도 대학구조개혁 평가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대학 구조개혁법이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한 상황에서 법적 근거도 없다. 사회적으로 학령인구가 줄고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은 불가피하지만 이를 합법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동일연령 70%가 대학에 진학하는 사회다. 대학 보편화 단계에서는 각 개별적으로 대학의 특징은 다양하게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분화된 사회에서 어떻게 하나의 잣대로 대학을 평가할 수 있나. 획일적인 교육부 평가로 대학이 획일화되는 부작용이 생긴다. 관(官)이 나서서 다양한 고등교육 기관을 평가하는데 거부감과 비판이 이어지는 이유다.

▲ 이대순 한국대학법인협의회 회장 (사진=한명섭기자)

- 법인협에서는 사학의 자율성을 위해 사립학교법 개정을 꾸준히 추진해왔는데.
“우리나라처럼 사립학교법을 자주 변경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사학법은 원래 일본의 사립학교법을 참고해 도입했다. 과거 일본 사학법은 패전이후 미군정 하에서 사학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학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 사학법을 모방해놓고 사학의 자율성 대신 사학 규제가 더 많이 포함됐다. 때문에 법인협에서는 사학의 자율성을 확립하기 위해 사학법 개정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매년 선거 전에 각 정당에 사학 자율성에 대한 입장 등을 내놓고 의견을 듣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우수한 인재를 배출한 사학재단의 ‘공’은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과’만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나 정치권의 시각이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에는 사학육성정책이라는 용어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말 자체가 실종된 지 오래다.”

- 사학법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회계를 법인회계, 교비회계 나눠서 철저하게 규제하는 나라는 우리 밖에 없다. 정부가 법으로 교비회계에서 사학 운영비용을 지출하는 것에 대해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사학비리 유형 중 60% 이상이 제도의 모순에서 일어난 일이다. 역사가 오랜 사학들은 기본재산이 거의 토지나 부동산이다. 때문에 사학이 가용할 수 있는 재산이 거의 없다. 부동산을 매각하면 양도소득세를 내는데 엄청난 손실을 가져온다. 사학이 수익용 기본재산을 활용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도 없는데, 법정전입금을 내고, 인건비에 해당하는 의료보험까지 법인에서 부담하는 문제가 있다. 제도가 사학을 옥죌 뿐 아니라 사학의 비리를 제도가 만들어 내는 꼴이다.”

- 우리나라에는 입시제도 중 삼불정책으로 대학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등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입장은.
“우리나라 입시와 관련해 대학문제에서 자주 거론되는 문제다. 정부는 일관되게 삼불정책을 고수하고 있는데, 사실 현실적으로는 의미 없는 문제라고 본다.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 전원이 지원만 하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입시 문제는 극히 일부 최상위권 대학의 경쟁이라 고등교육 보편화 단계에서는 의미가 떨어진다. 대학 입시문제는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연결시키는 차원에서 나가야 한다. 기여입학제는 우리사회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아직 많다. 때문에 학교에 기부하는 사회 풍토를 조성해서 기부자에게 세제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대학을 육성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 국립대와 사립대 역할 어떻게 나뉘어져야 할까.
“지금은 국립대와 사립대 역할 구분이 없어졌다. 국립대는 교육 기회 균등화라는 취지에서 교육기회가 제한된 곳에 교육을 제공하고 국가적으로 필요한 연구, 인재육성 분야를 교육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사립대학들도 모두 서울대를 따라가고 있다. 엄청난 과학기술 변화로 인해 고급인력 가운데 사립대학에서 양성하기 어려운 분야도 있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력, 국가가 필요로 하는 연구소는 국립대학이 맡고 사립대학은 교육중심, 연구중심, 직업중심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정책적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 우리나라는 정권 바뀔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뀌는 경향이 있다. 장기 교육정책을 위해 어떤 점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가장 아쉬운 것이 교육정책 입안 과정이다. 선진국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 입안하는 경우 거의 없다. 미국은 자율적인 재단이 스폰서가 돼서 전문가들이 모여서 스스로 방향을 제시하면 대학이 자율적으로 따라가는 형태다. 일본은 ‘대학교육심의위원회’가 있어 정권이 바뀌더라도 교육 정책을 입안하는 기구는 독립된 형태다. 정책의 지속성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부나 의원입법으로 국회에서 교육정책을 다룬다. 이에 법인협은 지난해 전직 대학 총장 등을 중심으로 모여 정권에 관계없이 교육정책을 변함없이 추진하도록 독립된 정책심의 기구를 만들자는 의견을 건의했다. 정책심의 기구에서 여론을 듣고, 교육의 중장기 계획 만들도록 건의했으나 아직까지 반영되지 않고 있다.”

- 미래 고등교육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고 나가야 할까. 
“우선 대학 내부에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수다. 대학을 둘러싼 환경 변화 속에서 ‘대학관’ 정립이 필요하다. 경쟁력 있는 대학의 미래상을 대학이 자율적으로 제시하고 제도에 막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의견을 모아 정부부처에 건의하고 해결해야 한다. 지금은 과거 소수 10% 학생만 다니던 상아탑 개념에서 대학의 기능과 목적이 바뀌었다. 고등교육이 보편화 단계에 와 있는데 아직도 대학 구성원들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대학 스스로도 정확한 대학의 위치를 보는 인식을 가져야 하며, 사회도 대학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한다. 고등교육 보편화 단계에서는 대학 재정은 고급인력의 배출로 사회도 혜택을 보기 때문에 정부와 사회도 대학재정에 있어서 일정부분 부담해야 한다.”

- 본지에서 하고 있는 프레지던트 서밋(President Summit)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 모임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바라는지.
“우선 우리나라 대학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언론기관을 중심으로 한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학의 자율성을 신장시키는 하나의 모멘텀이 됐다. 특히 대학이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기업인, 정부부처 인사가 참여해 토론의 광장이 이뤄졌다. 산·관·학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대학은 산업변화를 파악해 인재를 양성하고 수요 충족을 고민해야 한다. 산업계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을 지원해야 하고, 정부는 이런 것을 뒷받침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우리나라 산업계 대표, 학계 대표인 총장들, 정책 관련 부서가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 간 의견 나누면서 협력하는 협력체로 발전시키는 것이 과제다. 프레지던트 서밋이 앞으로 우리나라 미래 국가경쟁력 높이기 위한 모임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창간 27주년을 맞은 본지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는가.
“지난 27년 동안 한국대학 교육에 기여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한국대학신문은 다른 신문과 달리 대학의 건전 육성이라는 관점에서 대학사회의 정보를 활성화 시켜주고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이번 프레지던트 서밋도 마찬가지다. 우리사회에서 획기적인 일이다. 대학이 잘못한 것에 대해 비판도 하고, 지원도 하면서 한국대학신문이 대학과 사회에 시대적 변화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한국대학신문이 고등교육을 이끄는 선도적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 부탁하고 싶다.”

■ 이대순 한국대학법인협의회 회장은…
1933년 전남 고흥 출생. 서울대 법대를 나와 동대학에서 행정학 석사, 미국 요크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교육과학기술부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전남 교육감, 11·12대 국회의원, 체신부장관, KT이사장, 호남대 총장, 경원대 총장을 역임했으며 대학총장협회 회장을 맡은 바 있다. 현재 학교법인 한마학원 이사장, 한국대학법인협의회 회장, 세계 태권도연맹 명예부총재 등을 겸하고 있다.

<대담=이인원 본지 회장, 정리=김소연 기자, 사진=한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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