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다른 사람이 쓴  책을 표지만 바꿔 출간하거나 이를 묵인한 대학교수들이 무더기로 적발돼 대학가에 충격을 주고 있다. 검찰이 지난달 24일 다른 저자가 쓴 전공서적 등의 표지만 바꿔 마치 자신이 집필한 것처럼 둔갑시키는 이른바 '표지갈이'에 연루된 교수 수백여 명을 적발한 것이다. 표지갈이에 연루된 규모는 50여개 대학, 200여 명에 달했다. 대부분 이공계열 교수들로 내로라하는 학회의 학회장도 포함됐다. 대학 재임용 심사를 앞두고 연구·저술 실적을 쌓기 위해 양심을 팔아먹은 셈이다.

하루 뒤에는 과학영재 송유근군의 블랙홀 관련 연구논문이 연구윤리 위반으로 밝혀져 사람들을 아연케 했다. 송 군의 논문을 게재했던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저널’이 표절 제보를 받고 조사를 벌였고 결국 해당 논문의 게재를 철회했다. 미국 천문학회는 지난 박석재 교수의 2002년 발표자료와 올해 게재된 송유근·박석재 공저 논문이 상당 부분 겹친다고 봤다. 내용이 같은 경우 인용을 했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5살에 미적분을 풀고 9살에 대학에 들어간 '천재소년'의 국내 최연소 박사 타이틀이 표절이라는 암초에 만나 좌초되고 만 것이다.

사실 올해는 황우석 박사의 사이언스지 논문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져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지 꼭 10년째가 된다. 당시 대한민국 학계는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충격파에 휩싸여 한동안 뒤숭숭했다. 그가 세계 최초로 사람 난자를 이용해 체세포를 복제하고 이로부터 배아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한 스타 과학자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낙인 찍히기까지 대한민국 학계는 부끄러움에 떨어야만 했다.

10년이 지나도 전혀 변한 것이 없는 우리 학계의 비양심에 참으로 어이가 없다. 표절에 관대한 풍조가 관행을 넘어 천성으로 박힌 것은 아닌지 참담하다.

지금이라도 악의적인 표절을 행하거나 묵인한 사람은 일벌백계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 특히 표지갈이 사건에 연루된 학자들은 결코 용서해서는 안된다. 표지갈이는 단순히 비양심의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것을 힘들여 연구하지 않고 어떻게든 베껴서라도 실적을 채우려는 왜곡된 연구 풍토마저 드러낸다. 논문을 심사해야할 학회 간부마저 검찰에 적발됐다니 기가 막힐 지경이다. 

우리학계의 비양심에 대한 교육부 연구윤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어느 명예교수의 증언은 절망적이다. 그는 "어떤 대학에서 총장이 표절 논란으로 낙마하면 다음 총장은 아예 표절 의혹에 재갈을 물려버린다. 표절에서 떳떳한 사람이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심지어 어느 대학 교수는 학생들에게 연구윤리 교육을 지나치게 '철저히' 했다는 이유로 총장에게 찍혀 끝내 징계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 나중에 해당 교수의 명예는 회복됐지만 학계 비양심은 그대로다.

우리가 기초적인 것도 지키지 못하는 사이 세계는 더욱 엄격해지고 있다. 이제는 내 글을 내가 인용할 때도 명확한 출처표시를 해야 한다는 것이 세계 학계의 흐름이다. 특단의 개혁 없이는 학문윤리를 바로잡기 어려운 이유다. 우리학계는 실기(失期)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자정할 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봐야 옳다. 대학마다 연구윤리 기준이 다르고, 적발되더라도 어물쩍 넘어간다. 제 식구 감싸기다.

표절 문제야말로 교육부가 나서야 한다. 앞으로는 학계와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공조해 표절교수의 명예나 지원금을 끊는 등의 특단의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곪은 상처를 도려내서 표절이 대한민국의 학문 발전을 발목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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