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이우희 기자]"법이 바뀌었다." 

2008년 대학 4학년이던 법조인 지망생들이 정부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로스쿨의 도입이다. 선정 과정에서 잡음도 있었지만, 예정대로 2009년 25개 로스쿨이 출범했다. 이후 대다수 법조인 지망생들은 “사법고시는 점차 규모를 줄여서  2017년에는 폐지, 법조인 양성제도를 로스쿨로 일원화한다”는 정부 말을 굳게 믿었다.

물론 로스쿨 도입 초반에는 오히려 사법시험에 더욱 바짝 매진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다만 대다수 학생들은 멀리 내다보고 꾸준히 로스쿨로 진학했다. 최근 사시 폐지 시점이 임박한 이후로는 기존 고시생들마저 상당수가 로스쿨로 진학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고시생들은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사실상 사시에 ‘올인’한 사람들 정도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 3일 사시 폐지를 4년간 유예한다는 정부 발표가 나온 것이다. 사실상 한시적 사시 존치 결정이다. 정부 말만 믿었던 로스쿨생들에겐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 셈이다. 국가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탄식도 터져나왔다. 조용하던 로스쿨생들이 순식간에 들고 일어났다. 예상보다 신속하고 강력한 집단행동에 정부도 당황했는지 곧바로 ‘최종안이 아니다’며 꼬리를 내렸다.

그럼에도 사시 폐지 유예 결정에 반발하는 로스쿨생들에 관한 기사에는 이들을 떼쟁이로 몰아가는 댓글들이 무수히 달린다. 로스쿨생들이 전원 자퇴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에는 "스스로 원한다니 학교는 즉시 자퇴시켜버려라"는 비아냥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기도 한다. 과연 이들을 떼쟁이라 할 수 있을까.

사실 법조인 양성제도와 관련해 조직적인 목소리를 내온 건 오히려 고시생들이었다. 로스쿨생들은 사시 존치론이 연일 언론을 장식할때도 조용했다. 이들을 대신해 사시 존치론에 맞선 건 로스쿨협의회와 로스쿨 출신 변호사단체였다.

로스쿨생들이 침묵하는 사이 고시생들은 로스쿨 도입 후 특권이 크게 줄어든 데 불만을 가진 사시 출신 청년변호사들과 손을 잡고 보다 조직적인 운동을 전개했다. 청년변호사들은 막강한 표 결집력으로 서울지방변호사회를 장악했고, 대한변호사회 선거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신림과 노량진 일대 고시촌 임대업자들도 사시 존치 주장에 가세했고, 이들 지역구 눈치를 보는 국회의원들이 덩달아 불을 지폈다. 로스쿨이 없는 대학의 법대 교수들은 각종 사시 존치 토론회에 단골 패널로 나섰다. 사회양극화를 우려하는 언론도 이들의 장단에 춤을 췄다.

그 덕분인지 분명 사시 존치에 찬성하는 국민들이 많다. 그렇다고해서 국정을 이끄는 정부가 스스로 한 약속을 손바닥 뒤집 듯 뒤집어도 될까. 중대한 발표를 법무부 단독으로 했다는 '꼬리 자르기 식' 해명은 상식적이지 않다. 수 년째 논란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조용히 공부만하던 로스쿨생들이 전원 자퇴서를 쓰게 한 사태에 대해, 누군가 해명을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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