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익(본지 논설위원/우석대 교수)

모리스 버만의 ‘미국문화의 몰락’(심현식 옮김, 황금가지)은 로마제국 멸망의 4대 원인을 제시하고, 미국 역시 같은 원인으로 몰락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몰락의 이유를 네 가지 들고 있다. 첫째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가속화, 둘째 사회보장제도의 위기, 셋째 비판적 사고 및 지적 수준의 급격한 저하, 넷째 소비주의 문화에 따른 문화의 저급화 등이다. 이 가운데 셋째와 넷째는 한국의 대학 문제, 특히 인문학 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먼저, 지식의 퇴보다. 지식의 습득이 인간의 정신을 훈련시키는데 필수불가결의 요소라고 보던 기존의 원칙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버만은 오늘날 대학의 위상은 마치 중세 말 교회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대학들은 학생들에게 천국(고수익의 직장)에 갈 수 있는 면죄부(학위)를 판매한다. 대학 총장들은 너나없이 기업체 CEO를 모방하기에 급급하다.

다음, 버만은 상업주의 문화의 범람으로 사회 전체가 정신적 죽음에 이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것이야말로 지식의 몰락보다 한층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상업주의가 일상을 지배한 결과 저속한 모방과 과장이 사회 전체에 만연되었고, 사람들은 쓰레기와 진정한 가치를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개혁의 미명 하에 정부가 강권하는 과도한 상업주의에 떼밀려, 대학의 가치를 ‘오로지’ 상업적 효용성에만 두려 하는 우리의 풍토는 이런 지적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버만은 로마제국 말기 소수의 수도사들이 로마 문명의 진수를 유지·계승하기 위해 바쳤던 노력에 주목한다. 그는 멸망으로 치닫는 현대 사회의 문제 해결을 위해 ‘신수도사적 개인(New Monastic Individual; NMI)’의 필요성을 제창한다. 신수도사적 개인은 ‘독립적 지식인’이다. 시대의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개인이다. 버만은 이 해법이 조직과 제도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철저히 개인 차원의 작은 실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도사들이 로마제국 말기의 유일한 지식인 집단이었음을 고려한다면, 그의 처방을 대학 문제 해결을 위한 도움말로 받아들여도 좋지 않을까. 대학 위기의 근저에는 관료주의와 상업주의가 가로놓여 있다. 그것은 이미 거대한 흐름으로 굳어졌다. 인문학의 경우만을 놓고 보자. 교수들은 학회지 논문 투고만을 유일한 연구과제로 간주하는 획일주의, 학술지 등급 유지를 지상 목표로 삼는 학회 풍토, 중장기 비전 없이 단기성과를 강요하는 관료주의 등에 맥없이 무릎을 꿇고 있다. 승진·재임용을 위해, 연구비를 타내기 위해, 대학 평가 점수를 올리기 위해, 오로지 논문 쓰기에만 힘을 쏟고 있다.

인문학자로서 ‘큰 그림’을 그리고자 해도 저서는 평가 점수가 거의 없다보니 동기부여가 미약하다. 저서 집필에는 최소 3년 이상의 장기 계획이 필요하지만 단기 실적을 요구하는 당국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결국 논문 필자와 심사위원 외에 누구도 읽지 않는 논문 생산에 연구 역량이 집중된다. 그 결과 평생 교수를 하고서도 변변한 저서 한 권 없이 정년을 맞이하는 인문학자들(?)이 양산된다. 인문학 위기의 핵심은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현 상황에서 ‘신수도사적 개인’ 말고는 달리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 ‘틀’을 깨고 나오려는 노력과 시도를 해야 한다. 승진·재임용이라는 ‘현실적 장애물’을 무시한 주장이라며 볼멘소리를 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제도적 장애물이 사라진 정년보장 이후에도 행태가 바뀌지 않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다. 학내·학회 권력에 대한 너절한 집착을 끊고 제도의 속박에서 벗어나려 힘써야 한다. 주류에서 벗어나기를 겁내지 않으며 ‘독립적 사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수많은 ‘개인들’이 출현할 때 인문학 위기도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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