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고등교육 재정 독립 왜 필요한가

[한국대학신문 이연희 기자]소득연계형 국가장학금 도입 5년, 정원감축 정책 도입 이후 대학들이 재정악화로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에 올인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가운데, 하루 속히 고등교육 정책과 재정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OECD 평균인 GDP 1% 수준으로 고등교육 재정을 지원하겠다고 공약을 밝혔으나 4년차에 접어든 현재 여전히 0.8%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교육부에서는 타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예산까지 합치면 박 대통령 임기 내 공약 달성이 가능하다고 밝혔지만 올해 OECD 평균 고등교육 재정은 GDP 1.2%로 높아지면서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교육개혁을 내세우며 사회수요 맞춤형 인력양성 방안으로 연 3000억원 가까운 예산을 배정했다.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프라임) 사업과 연 600억원을 지원하는 대학 인문역량 강화(코어) 사업, 내년도에 300억원을 투입하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 등 신규 재정지원사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선정대학 수가 19개교, 24개교, 8개교 내외로 극히 한정돼 있기 때문에 대학들의 갈증을 풀어주기는 역부족이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시 구조적인 문제가 발견된다. 교육부는 예산철만 되면 기획재정부를 오가며 설득작업을 펴느라 진땀을 뺀다. 전반적인 정부 재정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나 고용기금을 갖고 있는 고용노동부에서는 노골적으로 ‘교육부가 가장 협의하기 힘든 부처’라고 꼽고, 교육부는 교육 재정을 경제논리로 접근하기 때문에 사업이 원안대로 가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4년제 대학의 10%인 19개교, 1개 대학에는 300억원까지 지원하는 프라임 사업이 대표적이다. 교육부에서는 더 많은 대학들을 선정해 지원해야만 사업의 효과가 크다고 기재부를 설득해왔다. 그러나 기재부에서 ‘5개 대학에 500억원씩 투입하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아이디어를 고수했다.

결국 교육정책이 돈에 의한 파워게임에 밀리는 현실이다. 사회부총리가 별도의 재정을 확보하지 못해 실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재정으로 압박할 수 있는 곳은 결국 대학이다. 대학들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거버넌스와 존립까지 압박을 받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한 방향으로 모아진다. 바로 고등교육의 큰 판을 보고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고등교육 정책결정 주체가, 우선 재정이라도 독립적으로 운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GDP 1% 수준의 재정을 출원하고 고등교육을 체계적으로 지원하자는 논리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고등교육 예산을 확보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구조는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문제는 되풀이되고 있지만 언제나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중단돼 왔다.

양승실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부 서구권 국가들은 고등교육을 사회적 편익으로 보고 무료로 제공하지만, 우리나라는 대학교육을 개인의 편익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한 국가”라며 “고등교육 재정 독립이 실현 가능해지려면 고등교육에 대한 패러다임과 철학을 바꿔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고등교육 예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소득연계형 반값 등록금 제도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대학의 경쟁력 강화보다는 학생들에게 직접 투자하게 되면서, 국가장학금이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닌 복지 개념으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2012년 대선에서 야당과 고등교육 전문가들이 고등교육 재정교부금 도입을 주장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고등교육 정책과 재정을 초중등 교육 또는 타부처 정책과 분리해야 한다는 데에는 고등교육 전문가는 물론 교육부 관료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다. 오히려 분리하기에는 지금이 적기라는 전문가 반응도 나오고 있다. 정부에서 대학구조개혁과 사회수요 맞춤형 대학교육 추진, 평생교육 대중화, 온라인 고등교육 확산 등 대학의 패러다임과 판도를 바꾸는 교육개혁을 앞두고,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전면적인 조직개혁은 물론 시드머니(seed money)를 마련하기 위한 민간의 추가 출연 및 모금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처럼 고등교육 조직이 독립된 재정을 갖추게 되면 사립대 위주의 현 상황에서 대학의 기능 분화와 국가장학금, 대학 시간강사 지원, 사학분쟁조정위원회 판결의 신뢰성 등도 회복될 가능성이 많다는 분석이 대다수다.

최충옥 경기대 교수(교육학)은 “1995년 5.31 교육개혁 추진 당시에는 고등교육을 별도로 분리하는 고등교육위원회를 설립하고 예산을 확보해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했었다”며 “한국과 같이 정부가 대학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곳은 사회주의 국가 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교육부에서 고등교육위원회를 분리하고 재정을 마련해 지원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수면 아래의 교육부 폐지론이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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