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김도연 포스텍 총장, 대한민국의 고등교육을 논하다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태조왕건 936년 병신년에 후삼국 통일한 역사적 의미”

김도연 포스텍 총장 “우리 국운은 360년 주기 ‘사인곡선’…미래 상승세 지속”
“무크 교육 혁신 초래  대학은 엄청난 변화에 직면할 것” 지적도
역사교과서엔 “석학이 참여해 올바른 교과서 만들어야” 한목소리

[한국대학신문 이우희·천주연 기자] 오늘날 대한민국은 G20 국가로 당당한 세계 리더그룹에 들어있다.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세계 수출 6위에 진입할 전망이다. 세계 신용등급도 일본을 넘어섰다. 예년보다 경제가 어렵고 청년 취업률이 심각하지만 오천년 역사 속에서 대한민국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다만 패스트팔로워로서의 성과는 여기까지라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패스트팔로워 교육이 초중등 교육의 수훈이라면, 퍼스트무버로의 전환은 고등교육이 해줘야 한다. 병신년 새해를 맞아 학계의 원로를 모시고 대한민국의 고등교육을 이야기했다.

▲ 지난 12월 23일 서울플라자호텔에서 좌담회를 갖고 있는 김도연 총장, 이배용 원장, 이인원 본지 회장.(왼쪽부터) (사진=한명섭 기자)

■ 한반도의 세 번째 통일 부르는 상서로운 기운

이인원 본지 회장=“올해는 ‘붉은 원숭이의 해’라고 합니다. 원숭이라는 동물이 영리한 동물 아닙니까. 원숭이띠들이 각 분야에서 사회적으로도 활약을 하고 있는데요. 올해에는 우리나라가 재주를 부려서 잘 되는 해가 될 수 있을까요.”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글쎄요. 옛 과거시험지 답안으로 달력을 만들면서 병신년이 어떤 해인가 봤더니, 신라의 첫 한반도 통일 이후 936년에 왕건이 후삼국을 멸하고 재통일한 해입니다. 한반도 재통일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겁니다. 반면에 120년 전인 1896년 병신년은 사실 희망찼던 해는 아닌 거 같아요. 을미년에 명성황후가 시해된 데 이어 고종황제가 1896년 2월 11일에 아관파천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항상 우리가 암울했을 때도 샘물이 솟아요. 그 해 독립협회 운동이 일어난 겁니다. 4월에 독립신문이 창간되고 이어 7월에 독립협회가 설립됐습니다. 우리 역사에는 굴곡이 있어도 길은 항상 앞으로 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의미로 병신년을 ‘지혜의 해’로 밝게 만들어 나가기 위해 우리 국민들이 힘을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인원= “김도연 총장님께선 혹시 금년에 특별한 기대가 있습니까.”

김도연 포스텍 총장= “벌써 60여년을 살았는데 특별한 기대야 있겠습니까. 사실은 올해의 의미에 대해 큰 생각을 안 하고 왔는데, 방금 말씀 들어보니까 120년 전 우리가 굉장히 힘들었던 때인 거 같아요. 그땐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되다가 병신 되었네’ 뭐 그런 노래도 있었죠. 120년 전  바닥으로 떨어졌던 우리나라였다고 생각하니, 얼핏 이런 얘기가 생각납니다. 대한민국의 국운은 360년을 주기로 바닥을 치면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는 ‘사인곡선’ 형태의 물결무늬 커브를 그린다 그래요. 예를 들어 1592년 임진왜란이 있었고 360년 지나 1950년에 6.25전쟁이 있었죠. 그러고 이제 2016년이니까 2300년까지는 대한민국이 계속 올라가지 않을까 희망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이인원= “두 분이 아주 새해를 아주 잘 해석을 해주셨는데요. 사회 전반적으로 우리가 너무 경쟁사회가 되지 않았는가.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이기라고만 가르치고 더불어 사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배용= “결국 인성교육이 필요합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물질만능 풍조를 해소해야 따뜻한 자본주의 4.0 시대가 열린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요즘 ‘착한 선진화운동’을 화두로 내걸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사회는 자본주의적·경제적인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직면해 있어요. 우리 역사에서 중요시했던 공동체질서, 협력은 결국 역지사지입니다. 상대방이 있음에 나도 있다는 생각으로 동행의 길을 더 넓게 펼칠 때 역사는 후손에게 더 넓은 걸 넘겨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일면 생각해보면, 이기심은 컴퓨터가 조장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전화번호도 못 외우게 될 정도로 너무 기계에 의존하다보니 인간의 따뜻한 숨결, 가슴을 느끼지 못하게 된 거죠. 깊이 인간다움을 성찰해야 할 때가 온 게 아닌가 그런 고민을 해봅니다.”

이인원= “맞습니다. 그리고 경쟁사회로 가는데 교육도 일조하는 것 아닌가요.”

■ 지속가능한 인류 위해 ‘배려하는 경쟁’으로 나아가야

▲ 김도연 총장. (사진=한명섭 기자)

김도연=“물론이죠. 경쟁은 필요하고 때론 불가피하지만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배려하는 마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사실 인류가 경쟁을 통해서 발전한 것은 틀림없죠. 특히 과학기술에 있어서는. 그 경쟁의 가장 극심한 형태가 민족 간의 전쟁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편리하게 이용하는 항공기도 컴퓨터도 다 전쟁 과정에서 만들어 진 것이죠. 또 인구 측면에서도 1900년 세계 인구가 16억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뉴 밀레니엄이 되던 2000년 60억명을 넘었습니다. 이후 매년 거의 1억명 씩 늘어서 지금은 75억명이 됐죠. 이 지구 자체가 경쟁을 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더더욱이 지금 대학을 다니는 세대는 앞으로 30년 내에 100억명의 인구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경쟁은 더 심해질 수밖에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말씀하셨듯이 인류는 그 경쟁을 통해서 발전했지만 이제는 그 경쟁과 더불어서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줘야 하는 시점이죠. 그렇지 않고 과거처럼 경쟁일변도로는 전 인류가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최근 동아시아 연구 중심대학 회의에서 제가 그랬습니다. 적어도 동양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 인(人)’자의 의미를 알지 않느냐. 한 사람은 기대고 한 사람은 받쳐주는 게 사람이다. 배려의 정신을 대학에서 좀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만 ‘지속가능한(Sustainable)’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인원=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만, 실제 대학에서는 인성교육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거 같지 않아요. 학점 따고 전공 잘하는 학생을 우수한 학생으로 생각하지, 좀 더 배려하는 인재를 기르려는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을 봐도 도저히 대학생다운 질서가 아니고 장바닥과 같은 수준입니다.”

이배용= “인성교육의 목표와 개념이 분명하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요즘 대학 풍토가 따뜻하지 못한 탓도 있어요. 요즘엔 대학생들이 고민 상담하려고 교수님 방문 못 두드립니다. 대학가에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까 인성교육이라는 건 급하지 않다는 생각들이 조금 있어요. 교육부가 이제는 진지하게 신뢰와 배려, 공동체 질서 등을 체득한 인재를 기르기 위해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하나 제일 중요한 것은 애국심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나라를 잘 가꿔야 후세를 위해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물려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해야죠. 저는 행사 때마다 애국가 4절을 꼭 부르게 합니다. 가요와 찬송가는 4절, 5절 잘 부르면서 애국가 4절하자면 시간이 없다고 생략합니다. 애국가를 통해서라도 우리 선조들이 빼앗겼던 나라를 35년 만에 찾아준 그 열정을 기억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김도연= “사실 인성교육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과연 대학교에서의 인성교육이 얼마나 효과적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듭니다. 초·중등 교육을 거쳐 18세가 된 청년은 인격적으로 90%는 완성이 된 인격체라고 봐요. 대학에서 이들을 붙잡아두고 인성교육을 하기란 굉장히 어렵습니다. 오히려 입시를 통해 초·중등 교육이 바뀌도록 유도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인원= “그러고보니 질서 의식이 제일 높은 게 유치원생이고 그 다음이 초등생, 중고생입니다.  대학생이 가장 낮다는 말도 있죠. 길 건널 때 유치원생들은 다 손 들고 어른들한테 배꼽 인사하는데,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질서의식이 낮아지니 문제입니다. 대학교육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죠. 우리나라 고등교육 정책이 있긴 있는 겁니까. 어떻습니까.”

김도연= “확실한 정책이 있지만 항상 시행착오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정책은 결국 국민이 만들어 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인원= “우리나라 고등교육 정책이 너무 입시 위주로 돼 있지 않은지. 대학입시 제도에 따라 중·고등학교, 심지어 초등학교 교육까지 방향이 달라지는 게 아닌가 걱정입니다.”

김도연= “입시정책은 어떤 정책을 해도 결국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갖고 있는 미신이 ‘좋은 대학을 나와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그 미신이 불식돼야만 입시정책도 왜곡되지 않고 잘 반영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과거에 비해 점점 그런 미신이 엷어지고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주관적인 평가를 수용 못 하는 사회…신뢰사회 구축이 우선”

▲ 이배용 원장. (사진=한명섭 기자)

이배용= “교육부 정책은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일관성이 결여되면 대학에게 신뢰를 못 줍니다. 교육부가 세계적인 대학을 육성하겠다면서 지원을 약속해도 대학들은 정원을 줄여야 한다면 선뜻 나서지 못해요. 정책이 지속되겠느냐는 의구심 때문이죠. 정책은 중장기 계획을 확실히 수립하고 단기적으로 고칠 것은 고쳐나가야 하죠. 거시적이면서 미시적이어야 합니다. 입시 제도와 관련해선 ‘사지선다형, 오지선다형’ 시험으로는 절대로 인재를 기르고 선발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평생 학생들에게 객관식 문제를 낸 적이 없어요. 장서각에서 옛 선비들의 과거시험 답안지 들여다보니 이분들은 20대인데도 공부의 양이 엄청나요. 여기에는 기본적인 학문 뿐 아니라 인성도 포함돼요. 심지어 요즘으로 따지면 수험번호가 천자문 순서예요. 누구나 천자의 순서까지 외울 정도로 공부를 한다는 거예요. ‘가을 추(秋)’가 내 번호면 21번입니다. 시험 문제와 교육방법이 사유 능력을 함양하는 쪽으로 가야 대한민국을 좀 더 품격 있는 나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김도연= “요즘 ‘선보러 나가도 후보가 4명 나와야 고른다’는 농담이 있지 않습니까. 원장님의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포스텍은 입시에서 입학사정관제로 100% 뽑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인을 생각해보자면, 우리 국민들이 객관적인 평가의 결과는 수용을 합니다. 주관적인 평가의 결과는 수용을 안 합니다. 입시에서도 그렇고 심지어는 대학에서 교수 평가도 마찬가집니다. 교수님들이 평소에는 논문을 한두 편 더 쓰는 것이 무슨 의미 있느냐고 서로 공감하면서도, 막상 평가할 땐 나보다 논문을 적게 쓴 사람이 우수한 평가를 받으면 용납을 안 합니다. 오히려 논문의 질은 따지지 않고, 두 편은 승진 한 편은 탈락 그렇게 가면 대부분 용납을 합니다. 결국 제대로 된 평가 체계에는 주관성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 주관을 받아들이려면 ‘신뢰사회’가 돼야 합니다. 서로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겁니다. 사회 전반적인 신뢰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에 입시와 각종 평가제도, 교육제도가 다 객관적인 것에 맞춰서 가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인원= “객관적인 것에 대해서 좀 거부감을 느낍니다. 대학에서 시험을 치는데 상대평가를 합니다. 교육부에서 학교를 평가할 때 상대평가를 얼마나 하느냐를 보기 때문이랍니다. 학생이 수업을 받고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으면 잘 된 거지, 왜 꼭 순서를 매깁니까.”

이배용= “그게 바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아닐까요. 개인적으로도 채점할 때마다 괴로운 게 A-와 B+의 경계가 확실치 않아요. 결국 출석률 등을 다 반영해서 순위를 내야만 했던 게 마음 아팠어요.”

■“대학진학률 낮춰야” VS “배움의 열정 막아선 안 돼”

이인원= “참 그런 것들이 우리나라가 당면한 고등교육의 중요한 문제를 드러낸다고 봅니다. 지금 대학을 구조조정 하겠다고 합니다. 평가 항목이 수십 가지가 됩니다. 제일 황당한 것이 어떻게 취업률을 대학이 책임집니까. 취업은 그 나라 경제수준과 기업의 경제 활동이 결정하는 것인데. 교수들이 졸업 때만 되면 지인들의 회사에 쫓아가서 ‘우리 애들 취업 시켜달라’고 청탁하는 지경입니다.”

김도연= “근본적으로 우리나라는 아직도 70~80%의 고등학교 졸업생이 4년제 대학에 가지 않습니까. 대졸자가 너무 많습니다. 학력 수준에 맞는 마땅한 직업을 당연히 찾기 어렵죠. 다만 그렇다고 대학이 마지막 교육기관으로서 학생들의 취업에 전혀 신경 안 쓰는 것도 옳은 태도는 아닌 거 같아요.”

이배용= “조금 다른 견해입니다. 대학 진학률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건 좋지만 인위적으로 낮추려는 것은 옳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땅도 작고 자원도 적고 오로지 두뇌, 인적자원뿐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높았어요. 지금 전체에서 사립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80%가 되는데, 과거 대원군 시절 민간이 세운 서원이 전국 곳곳에 있었어요. 역사적으로도 교육열이 높았다는 것이죠. 따라서 교육을 받고 싶어하는 열정은 막지 말되, 단지 직업에 대한 차별은 하지 말자 이겁니다. 고졸이나 대졸이나 원하는 일을 하며 잘 대우 받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학교육에서 이공계도 육성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교양 교육은 더 강화해서, 책임감을 가진 지도자 양성하는 것도 대학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도연= “대졸자의 취업 관련해서 정부 통계를 지적할 게 있습니다. 최근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라 10년 뒤엔 공학 분야 대졸자가 크게 모자란다는 식의 대대적인 언론보도가 나왔어요. 좀 잘못된 분석입니다. 우리나라 고등교육 공대 졸업생은 연간 15만명 가량 됩니다. 일본이 17만명, 미국이 24만명입니다. 우리 산업규모는 일본에 비해 4분의 1 가량 됩니다. 우리나라 산업규모를 감안하면 공대 졸업생이 갈만한 일자리도 그 정도 밖에 없다는 얘기예요. 그렇게 따지면 우리나라 공대 졸업생은 5만명 정도면 충분하고, 그래야 모두 원하는 직장을 찾아서 취직할 수 있습니다. 아마 고용부는 용접공 같은 기술직 분야도 공대 졸업생의 일자리 수요로 판단한 것 같아요. 하지만 공대를 나와서 단순 기능공으로 일해야 한다면 불행하거든요. 결국 전반적으로 대졸자의 비율을 낮춰서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처우를 잘 받으면서 일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인원= “지금처럼 정책적으로 밀어 붙이는 구조조정, 제대로 될 수 있을까요”

김도연= “그런 식으로는 제대로 될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지금 대학정원을 100명으로 쳤을 때 3, 4년 후면 70명이 된다고 하는데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냥 시장에 맡겨 둘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럴 경우 이론적으로 30%의 대학이 문을 닫게 될 텐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혼돈을 국민들이 수용해 줄 것인가. 틀림없이 그때 가서 국민들이 교육부는 뭐하고 있었느냐고 비난할 겁니다. 결국 교육부는 뭔가 할 수 밖에 없고, 하다보면 100점짜리가 있을 수 없는 문제풀이다보니,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인원= “정치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올해 4월 국회의원 선거가 있죠. 정치인들이 저마다 말을 하면서 국민의 뜻이라고 하는데 저는 TV를 보면서 속으로 ‘당신이 언제 나한테 물어봤어’라고 묻습니다. 정치가 대중의견을 어떻게 맞춰나가야 할까요.”

이배용= “현실을 풀어갈 때 역사를 되돌아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합니다. 좀 미래 길도 보이지 않을까. 국회의원은 결국 국민들이 뽑습니다. 국민들이 유권자로서 누가 진짜 양심을 갖고 국민을 위해 일을 할지 제대로 들여다보도록 하는 것은 또 국민 교육이죠. 교육을 통해 성숙한 국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김도연= “사실 대한민국 정치의 권력은 국회에 가 있습니다. 국회의 제일 큰 문제는 의원들이 지역의 대표로서 일하지 국가의 대표로서 일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국민들이 잘해서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대표로 선출해야 합니다.”

■‘반값등록금’ 기조로 7년째 등록금 동결·인하…“미래 갉아먹는 일”

▲ 이인원 본지 회장. (사진=한명섭 기자)

이인원= “한 나라의 정치 수준과 언론 수준은 그 나라의 국민 수준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정치권에서부불어온 ‘반값 등록금’이라는 바람이 지금 대학 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어요. 자금이 있어야 발전을 하는데, 자금줄 다 막아놓고 발전하라는 상황입니다.”

김도연= “정말 큰 문제입니다. 대부분 대학들이 지난 7년 동안 등록금을 못 올렸습니다. 그 사이에 인건비와 물가는 올랐는데도. 요즘 대학이라는 게 사실 경비가 굉장히 많이 드는 기관입니다. 정보화 등 거의 2, 3년마다 주요 시스템을 바꿔야 되고 정말 엄청난 경비가 들어가죠. 등록금에 의존해 대학을 운영하는 사립대학이 대부분이다보니, 상당수 대학이 수업학기를 16주에서 15주로 줄이는 실정입니다. 직접적으로 교육의 질을 그만큼 낮추는 일이죠. 전국적으로 사립대학 신임교수 선발도 엄청나게 줄었을 겁니다. 물론, 우리나라 대학교의 등록금이 높은 거는 맞습니다. 획일화 돼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배용= “너무 획일적으로 하지 말고 대학마다 인상 수준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학생 소득 격차에 따라 등록금에 차등을 둘 수 있는 정교함도 필요합니다. 국제경쟁력도 확보해야하는 데 (반값등록금으로)대학의 주름살은 늘 수밖에 없습니다.”

김도연= “등록금을 올리지 못해 결국 ‘싸구려 교육’을 하게 된다면 좋은 인재가 나올 수 있을까요. 오늘의 편안함을 위해 미래를 갉아먹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돈 조금 내니까 편안한 거 같지만 결국 우리나라의 미래를 갉아먹게 될까 걱정됩니다.”

■ 역사교과서 국정화 불가피한 선택…“우리역사 자랑스럽게 가르쳐야”

이인원=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다들 고민이 많으셨을 듯 합니다.”

이배용= “원래 이 문제는 국정화냐 검인정이냐 논쟁으로 갈 문제가 아니에요. 역사 교육은 미래 세대를 위해서 역사인식을 올바르게 불어 넣어주기 위함이지, 개개인의 역사가가 연구 논문을 쓰는 게 아니거든요. 국가가 장기적으로 분명한 책임과 방향을 갖고 집필하는 것이 옳아요. 또 역사교과서 만큼은 경륜 있는 석학들이 써야 합니다. 오랜 세월을 농축한 지식이 있어야 더 쉽게 가르칠 수 있어요. 스스로도 역사학자지만 나한테 고대사를 쓰라고 하면 망설이게 될 거예요. 시대별로 최고의 학자가 써야하는 이유입니다. 검인정 교과서는 7~8명의 집필진 가운데 전문성을 가진 교수가 한두 명 뿐이었어요. 검인정 교과서들 중 교육부가 잡아낸 오류가 820여건입니다. 출판사들이야 책을 팔아야 하니까 오류를 고쳤는데, 집필진이 2심까지 패하고도 불복해서 현재 대법원에서 재판중이죠. 교과서 논란으로 가장 피해보는 것은 학생들이에요. 학생들에게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혼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사실에 입각한 건전한 역사교과서가 필요합니다.”

김도연= “사실은 2008년에 정부에 들어가서 처음 역사교과서 문제를 제기한 장본인입니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는데 당시 전국의 60%의 학생들이 택한 교과서가 금성사 교과서였습니다. 그 교과서는 예를 들어 한국의 새마을 운동과 북한의 천리마 운동을 똑같은 양으로 다룹니다. 내용으로 가면, 새마을 운동에 대해서는 나중에 독재 강화에 이용됐다며 매우 부정적으로 썼고 사진도 농촌에서 일하는 사진을 넣었어요. 북한의 천리마 운동은 비판 없이 사진도 천리마 동상을 근사하게 곁들였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천리마 운동이 무슨 의미가 있나. 왜 우리 학생들이 그걸 배워야만 하나. 그런데 뭐 이런 예가 굉장히 많습니다. 국정화니 검정이니 이런 걸 다 떠나서 우리 근대사, 곧 대한민국 역사를 좀 더 자랑스럽게 가르쳐야 한다는 데 동감하고 있습니다.”

이인원= “교과서가 왜 이렇게 된 겁니까.”

김도연= “연유가 있습니다. 2008년에 역사교과서를 읽고 이건 진짜 잘못됐다고 말했는데,  일주일 후에 역사학자 200명이 장관 앞으로 항의서한을 보내왔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그분들께 어떻게 이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이 다를 수 있느냐 묻기도 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사학계는 저와는 굉장히 생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게 우리 현대사의 업보일 수도 있겠는데, 1970~80년대에 민주화운동은 정의였죠. 민주화 진영에서 제자가 많이 나오게 됐죠.”

이인원= “최근 논란 중에, 도대체 세종로에 태극기 설치하는 게 왜 문제가 됩니까. 광화문에 태극기 걸면 외국인들이 전체주의 국가인줄 안다는 서울시 심사위원들의 설명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프랑스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데, 노트르담 사원 꼭대기에는 프랑스 국기가 24시간 휘날립니다. 관공서에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국기가 게양돼 있죠.”

김도연= “깃발 말씀하시니까 금성출판사에서 묘사한 장면 하나가 또 생각이 납니다. 역사적인 팩트는 정확한데 의도가 분명한, 이런 겁니다. 1945년 9월에 경성에 도착한 미군이 조선총독부에서 일본과 항복 조인식을 하는 장면인데. ‘항복조인식은 일본 총독 누구와 미군 장군 누구 사이에 10여분 만에 끝났다. 그리고 일장기가 내려왔다. 그러나 그 자리에 다시 올라간 건 성조기다.’ 정확한 팩트 아닙니까. 박스에 이 이야기를 싣고 그 밑에 소감을 적어라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은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에서 미국 식민지로 넘어갔다’는 사관을 주입하려 한 겁니다.”

이배용= “대한민국의 발전 과정에서 살고 그 결과를 향유하면서도 우리나라를 부정하면 안 됩니다. 주인의식을 가져야죠. 이 나라를 부정하고 어떤 나라를 만들겠습니까. 역사교과서에서 왜곡된 부분들을 잘 정리하고 누가 봐도 팩트에 근거한 바람직한 교과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인원= “교육영토 확장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합니다. 대학을 무조건 줄이는 것보다 해외로 영토를 확장 하는 게 필요하지 않냐는 건데요. 그런 의미에서 요즘 '무크(온라인 대중공개 강좌; 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도 화제입니다.”

김도연= “무크로 인해 교육의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고 항상 얘기합니다. 5000년 전에 문자가 만들어졌고, 500년 전에 책이 나왔습니다. 이어 50년 전에 컴퓨터가 나왔고, 5년 전에 스마트폰이 나왔습니다. 기술혁신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겁니다. 이제 교육도 과거 책이 등장했을 때처럼 교육자체가 혁명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무크 플랫폼인 ‘코세라(Cousera)’에는 1700만 명이 등록했습니다. 140개 대학의 1500개 학과목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 학과목을 올린 교수들은 자기 강의를 전 세계에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지식들이 무료로 다 공개돼 있는데, 왜 우리나라 대학들은 이 사실을 외면하는가. 우리가 참여를 하건 안 하건 어마어마한 혁신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졸업장이라는 ‘자격증’ 덕분에 대학이 존재하는 거 아닙니까. 그 대학의 졸업장보다 무크 기관의 ‘자격증’이 더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면 대학은 진짜 엄청난 변화에 직면할 것입니다.”

이배용= “우리나라는 IT 강국이라는 점에서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대학이 사이버공간이 늘려나가고 국가적으로 육성하면 됩니다. 또 교육에서는 선생과 제가가 얼굴을 맞대는 것도 중요하죠. 퇴계 선생은 스승을 일컬어 깊은 산 속의 마르지 않는 옹달샘이라고 했어요. 학생이 바가지로 퍼가든 두레박으로 퍼가든 마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학을 유지해온 힘은 진리탐구의 상아탑이라는 역할 덕분이죠. 대학이 어떻게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인가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이인원= “새해 덕담 한마디씩 부탁합니다.”

김도연= “우리 사회가 좀 더 자신감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고쳐야 할 점을 많이 얘기했지만, 사실은 그것이 우리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반세기를 돌아보면 전 세계에 대한민국 같은 나라가 없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이 기록은 깨질 것 같지 않습니다.”

이배용= “항상 역사를 배우면서 지혜와 긍정의 힘을 키웠으면 합니다. 6.25와 일제 식민시대, 임진왜란을 다 이겨냈는데, 오늘의 어려움도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따뜻한 화합의 시대를 열었으면 좋겠어요.”


***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1969년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동대학에서 한국사를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서강대에서 한국사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2006~2010년 이화여대 13대 총장을 지내면서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장(2008~2009),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2009~2010)을 역임했다. 2010년부터는 2년간 대통령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2대 위원장을 맡았고 2013년 9월부터 현재까지 한국학중앙연구원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2010년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에서 선정한 ‘글로벌리더십상’을, 2013년에는 ‘5·16 민족상’(사회·교육부문)을 수상했다. <한국 근대 광업침탈사 연구>, <Women in Korean History>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1974년 서울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했다. 1976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1979년 프랑스 블레즈파스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무기재료공학 분야 전문가로 논문 200편 이상을 발표했고 미국 세라믹학회 펠로(석학회원)이기도 하다. 서울대 공대 학장(2005~2007), 제1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2008), 제8대 울산대 총장(2008~2011)을 역임했으며,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2009~2010), 한국공학한림원 회장(2011),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2011~2013)을 지냈다. 지난해 9월부터 제7대 포스텍 총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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