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태 서울대 의대 교수

우리나라는 중화학공업과 IT·전자산업 등에 대한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세계 11위의 규모를 가진 경제강국에 도달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경제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등 발전이 정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6년 새해를 맞아 정체된 우리 경제를 활성화하고 한 단계 도약하려면 신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것이 시급한 실정이다.

IT 이후의 대안으로 제시된 핵심 분야 중의 하나가 ‘BT(바이오 기술)’이다. 지난 한해만 7조~8조원의 기술이전 실적을 올린 한미약품의 사례는 BT산업의 경쟁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삼성, LG, SK 등 대기업도 차세대 주력산업으로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를 선정해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BT 분야의 폭발적 성장이 가능하려면, 임상과 기초과학 지식을 겸비한 의과학자(MD-PhD)를 육성하는 일 이 시급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의대생들이 기초의학 분야를 기피하고 있어 문제다.

미국의 경우 의과대학에서 의과학자 양성과정(MD/PhD)을 운용한다. 의과학자가 되어 기초의학연구와 환자진료를 병행하기를 원하는 학생들은 7-8년이 걸리는 MD/PhD 과정에 입학한다. 이들은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받으며 연간 7000만원에 달하는 학비를 면제받는다. 이 과정을 마치면 인턴 1년, 박사후연구원(포스닥) 2년, 레지던트 2년을 거쳐 의대 교수로 임용되는데, 대학에서는 이들을 최우선으로 임용한다. 미 국립보건원(MIH)은 약 30조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데 주로 임상적인 의미가 있는 연구에 지원하기 때문에 의과학자들이 주요 수혜대상이다.

우리나라는 고교생이 의대에 입학하면 흔히 ‘의사’를 의미하는 MD 단일학위과정이 기본이다. 정부에서는 의대생들을 의과학자로 육성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올리지는 못하고 있다. 2005년 시작된 의학전문대학원은 대학 4년간 다양한 지식을 쌓은 뒤 의대에 입학하여 기초의학 등 다양한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로 설립됐지만, 최근 대부분의 대학에서 폐지되었다. 2008년에는 7년 과정의 MD/PhD 제도를 도입하여 연간 2000만원을 지원했지만 지원자가 급감하여 사실상 폐지가 되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장려책에도 불구하고 연 3300여 명의 의대생 중 전일제 PhD 과정에 진학하는 학생은 1% 미만이다.

의대생들이 기초의학 분야를 회피하는 이유는 현실적이다. 전일제 PhD 과정의 경우 급여가 임상 전공의에 비해서 매우 낮을뿐더러, 임상 수련을 하는 동료들과 비교해 낙오된 듯한 심리적 부담, 현실적인 경력단절감 등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또한, 교수임용이 되지 않을 경우 임상의도 기초과학자도 되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초교수들은 임상교수에 비해서 급여가 현저히 낮기 때문에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연 3300명에 이르는 우수한 자원을 기초의학으로 유도할 수 있을까.

첫째, 소규모지만 MD/PhD 통합과정을 개설하고 학위과정에서부터 수련과정, 교수 채용까지 체계적인 지원을 하면 어떨까 한다. 둘째, 임상(수련)의들이 전일제 PhD 과정을 밟는 동안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실제 서울의대에서는 2011년부터 기초연구연수의사 제도를 시행하여 MD 졸업자가 전일제 PhD 과정을 밟으면, 연 4000만원을 지원하여 성공적인 제도로 안착하고 있다. 셋째, 군의관으로서의 복무를 PhD 과정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실제 KAIST의 의과학과 대학원 과정은 입학과 동시에 군대복무 요건을 충족시키는 시스템으로서 성공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의과학자 육성은 20대 초반의 의대생때부터 시작해서 15년 이상의 기간 동안 경험하는 일련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종합 시스템을 갖추어야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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