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욱 (본지 논설위원/ 고려사이버대 교수)

21세기를 융합의 시대라고 한다. 융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구분’이 있어야 한다. 구분되고 나누어져있던 것이 물리적으로 화학적으로 혼합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융합이다. 음악을 예로 들어보면 연주회장에서 듣던 음악은 LP판으로 듣다 다시 테이프로 듣게 됐다. 기술이 더욱 발전해 CD로 듣게 되고 결국 MP3로 듣는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음악만을 위한 전용기기를 이용했다. 하지만 이후 음악을 위한 기기와 산업이 구분된다. 여기에 인터넷을 통한 네트워크의 발달, 통신망의 광대역화 등은 음악을 위한 기기라는 구분을 무너뜨렸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대부분의 음악을 듣는 기기가 됐다. 음악을 소유하지 않고, 스트리밍으로 듣는 사람이 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융합이다. 소유에서 사용으로 단일 목적에서 다목적으로 바뀐 것이다.

융합이 일어나는 이유는 2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구분되어지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거나, 사용자가 편의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학과나 학문분야의 융합은 현대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하나의 학문이나 분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학습자들은 이미 어려서부터 온라인강좌를 들으며 자라나고, 학습의 많은 부분을 온라인을 이용하게 되었다. 그만큼 교육에 있어서도 언제 어디서나라는 편의성이 중요한 이슈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대학의 가치는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지식이 있고, 만날 수 없는 교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함께 생각하고 고민할 동료를 만나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도 대학의 가치를 인정하고, 학위를 평가의 도구로 사용하였으며, 심지어 학벌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왔다. 

현대사회에서도 이 대학의 가치가 유지될 수 있을까. 대학의 졸업만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대학이라는 공간이 불편하게 된다면 융합이 일어날  것이다. 음악기기가 스마트폰으로 통합되듯이 이제 고등교육이라는 의미가 대학에 한정되지 않고 무엇인가와 통합되고 확장된다는 것이다. 인터넷에는 최고 수준의 지식이 넘쳐나고, 세계 각국의 교수들을 블로그, 유튜브, 공개강의 등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로는 국가, 나이를 불문하고 같은 생각과 꿈을 가진 사람들을 쉽게 찾고 소통할 수 있다. 전통적인 대학의 존재가치가 약해진 것이다. 세상에 형태도 없고 범위를 특정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대학이 나타난 것이다. 현재의 대학 위기는 대학의 수도 정원의 규모도 아닌 과거 대학이 해왔던 가치를 다른 무엇인가가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중 하나는 학위를 대체할 수 있는 자격증, 정식 학위가 아닌 증명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대학구조조정의 실효성을 생각해보자. 학령기 인구의 감소, 대학의 실용화가 대학의 위기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학과의 통폐합이나 정원감축이 효과가 있을까. 이는 출판시장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출판사의 수를 줄이고 출판도서의 양을 줄이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도서의 구매량이 늘고 독서량이 늘지 않는다. 출판시장이 어려워진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도서에서 미디어로의 정보도구가 이전되었기 때문이다. 독서량은 줄었지만 인터넷에 게시된 글을 읽는 양은 늘고 있다.

투명인간이 두려운 이유는 존재는 있으나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재 대학의 가장 큰 경쟁은 다른 대학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대학일지 모른다. 대학과 같이 정해진 공간, 교수, 과정, 학위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대학이 해왔던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대학, 그것이 앞으로 대학이 어떻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지속가능한 교육기관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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