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HRHR에 대한 창의·도전정신 대학서 길러야”

 황 총리 “독보적인 원천기술 확보위한 국가전략 절실”
“일정기간 투자해야만 하는 예술처럼 평가도 질적으로”
전문대학·이공계大 등 학제별 특성 탁월성 고려해 지원

[한국대학신문 정윤희·천주연 기자] 한미약품은 지난해 11월 국내 제약업계 사상 최대 규모인 39억유로(약 5조원)의 기술수출 계약에 성공했다. 2014년 국내 제약산업의 전체 매출이 15조원대였음을 감안하면 수출 한 건으로 전체 제약사가 한 해 거둔 매출의 3분의 1을 달성한 셈이다. 또 3월 면역질환 치료제로 7000억원을, 7월에는 폐암 표적 치료제로 8000억원의 기술수출을 성사시켰다.

남다른 연구개발(R&D) 투자가 뒷받침한 결과였다. 한미약품은 2013년 코스피 상장 제약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연간 R&D 투자액 1000억원을 돌파했고, 2014년에는 1525억원, 지난해 4분기까지 138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탁월한 분야를 선정해 과감하고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원천기술개발은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연구이며, 이는 기존 연구성과를 딛고 선 ‘창의적인 발상’으로부터 나온다.

기초연구 전문가들은 “현재는 과정혁신(Process Innovation)을 지나 새로운 개념과 제품을 만들어야만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면서 “창의적인 생각을 통해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야 하는 데 그것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관은 ‘대학’”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학이야말로 창의적인 환경에서 전문가적 호기심을 키울 최적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 2014년 기준, 정부 부처별 연구개발(R&D) 분야 고등교육재정 지원사업 현황이다. 부처별 지원금액이 많은 상위 5개 사업을 기재했다. 부처별 사업 수가 5개 미만인 경우 R&D 분야 전체 사업을 기재했다. (출처=고등교육 재정지원 정보시스템).

황 총리 “원천기술 확보위한 국가차원 전략 필요” 강조, 전문가들 “대학 R&D 재정지원 방안의 틀 ‘완전히 바꿔야’” = 한미약품 돌풍에 힘입어 우리나라도 자체적으로 원천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가 차원의 원천기술 확보전략이 필요하며, 기업과 대학, 연구소에 불필요한 부담·규제를 없애 창의적인 도전이 가능한 연구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7일 황교안 국무총리는 국가과학기술심의회(이하 국과심)에서 “정부와 기업이 긴밀히 협력해 세계 최고 수준의 독보적 원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며 미래부와 관계부처가 마련한 ‘제3차 과학기술인재 육성·지원 기본계획’을 심의·확정했다. 기본계획에는 △과학기술인재 취업·역량 강화 △이공계 대학의 교육·연구 경쟁력 강화 △과학기술인 경력개발 및 활동기반 확대 △미래인재의 창의적 역량 제고 △과학기술 잠재인력 활용 극대화 △문화·인프라 부분의 과학기술인력 육성·지원 기반 구축 추진 등 6대 전략이 담겼다.

전문가들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정부의 대학 R&D분야 재정지원 사업의 질적 제고는 물론 평가 방식의 틀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미래 먹거리 생산은 정책적 혁신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고등교육 재정지원은 크게 △인력양성(HRD) △연구개발(R&D) △HRD 및 R&D(공통) △국공립대 경상운영비 지원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고등교육재정지원 정보시스템의 고등교육 재정지원 개황 통계를 살펴보면, 2014년 기준 정부의 대학 R&D 분야 재정지원액은 전체 고등교육 재정지원 11조3500억8312만원 중 24.8%를 차지한 2조8168억227만원으로, 총 206개의 사업을 통해 사용됐다. R&D분야 재정지원은 HRD에 비해 15.3%포인트 낮다.

특히 R&D분야의 부처별로 보면 △미래부(37.3%) △교육부(29.5%) △산업부(7.8%) △보건복지부(7%) △중기청(4.5%) △국토교통부(3.5%) △농촌진흥청(3.4%) △농림축산식품부(2.6%) △해양수산부(1.2%) △기상청(0.6%) 등 23개 부처에서 재정지원이 이뤄졌다.

부처별 재정지원 상위 사업을 보면, 미래부에서는 △중견연구자지원사업(3413억5162만원)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1116억1108만원) 등 총39건의 R&D사업이 진행됐으며, 교육부는 △일반연구자지원사업(2698억3596만원) △지방대학특성화사업(2009억9000만원) 등 33건, 산업부는 △산업기술개발기반구축(425억7300만원) △지역특화산업육성(324억5727만원) 등 15건, 보건복지부는 △질환극복기술개발(810억6700만원) △선도형특성화연구사업(195억원) △감염병위기대응기술개발(161억원) 등 28건, 중기청에서는 △산학연협력기술개발(998억6341만원) △중소기업기술혁신개발(152억3585만원) 등 5건, 국토교통부는 △도시건축연구사업(176억2667만원) △국토교통기술촉진연구(167억2671만원) 등 13건, 농촌진흥청은 △차세대바이오그린21(448억8330만원) △국책기술개발(156억1621만원) 등 11건,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생명산업기술개발(257억4745만원) △고부가가치식품기술개발사업(149억1909만원) 등 10건, 해양수산부는 △해양수산생명공학기술(155억4300만원) △해양수산기술지역특성화(34억800만원) 등 9건, 기상청은 △기후변화 감시·예측 및 국가정책지원강화(50억1800만원) △기상기술개발사업(50억6680만원) 등 8건의 사업이 이뤄졌다.

권기석 한밭대 교수(국가과학기술심의회 기초연구진흥협의회 위원)는 “지금까지 한국의 연구개발 경향은 기존의 정의된 기술·제품 등을 효율적으로 값싸고 편리하게 재생산해 내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통한 ‘새로운 개념’을 쏟아내야 할 때다. 그것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관이 바로 ‘대학’”이라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정책적으로도 기존의 지원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지원틀을 구현해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령 ‘블록 펀딩(Block Funding)’을 통해 능력 있는 연구자의 ‘안정적인 연구’를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즉 대학 자체에 연구비가 지원되는 것으로, 연구비선점 사각지대에 놓인 능력 있는 연구자들에게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연구를 지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불과 1~2년 만에 신기술개발부터 상업적 시작품까지 요구하는 기술개발 풍토는 이제는 사라져야한다고도 지적했다.

평가를 위한 연구도 용인돼선 안 된다고 했다. 즉 계량적인 연구평가에서 질적 평가 혹은 평가 없는 연구 지원도 가능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실패를 용인한다는 말 자체도 다분히 기술개발적인 측면이 있다”며 “과학 그 자체를 일종의 문화 예술로 봐야 한다. ‘일정 부분 투자가 당연하다’는 인식을 기저로 기초연구에 대한 철학이 완전히 바뀌어야 미래 먹거리인 ‘새로운 개념’을 발견,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평가도 국내외 전문가 집단에서 질적 평가로 이뤄져야 한다”며 “최소한 탁월성을 보여줄 수 있는 분야의 연구자 및 기관에 대해 아낌없는 지원과 새로운 평가 정책이 반영돼야 한다”고 밝혔다.

지나친 기술개발 ‘사업화’에 몰두하는 정책도 원천기술 개발에 저해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태억 카이스트 교수(산업 및 시스템 공학과)는 “우리나라 연구개발 사업 성공률은 90%로 이는 현재 우리나라가 위험부담이 없는 모방형 연구, 개량형 기술, 국산화 연구 등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는 정부연구개발사업이 기획단계부터 새로운 모험연구를 지양하고 단기실적, 논문 및 특허 등 편의성, 객관성, 공정성, 실패 책임 회피 등에 집착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남이 안 해본 HRHR(High Risk High Reture; 고위험 고수익) 연구를 해야 혁신적인 원천기술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많은 지식과 경험, 통찰력, 창의성이 요구되는 생각과 도전을 격려하는 사회적 분위기, 문화, 체제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한미약품 신약개발, 이동통신 기술의 기반이 된 CDMA 기술개발 등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으로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특성에 맞는 재정지원 이뤄져야 =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 일반대학과 전문대학 등 대학의 특성을 고려한 ‘제대로 된 재정지원’이야말로 대학연구개발의 성공여부와 직결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즉 그동안 재정지원이 열악했던 기관의 특성을 살피고, 탁월성이 보이는 부분에 대한 집중적인 재정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2014년 기준 학제별 고등교육 사업 건수를 살펴보면, 정부의 고등교육 전체 471개 사업 중 △일반대학은 335개로 전체 사업의 71.1%를 차지한 반면 △전문대학은 107개로 22.7%에 불과했다. 대학원대학은 29개로 6.2%였다.

재정지원 액수 차는 더 크다. 2014년 고등교육 재정지원은 △일반대학이 9조6969억9878만원으로 85.4%를 차지했고 △전문대학은 1조6020억4401만원인 14.1%에 불과했다. 이를 학생 1인당 수혜액으로 분석하면 △일반대학생은 466만원 △전문대학생은 322만원으로 전문대학생이 일반대학생보다 100여만원 적은 정부재정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대학, 이공계 연구중심 대학의 경우 기업과 함께 원천기술 개발을 진행할 기회가 많은 반면 전문대학은 원천기술 연구보다는 단기 트레이닝 중심의 산학협력, 인력교류, 중소기업의 애로기술 자문 등 기술 상용화에 더욱 주력하고 있다. 학제별 역할 차이가 사업수나 액수의 차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대학만을 위한 사업이나 재정지원은 터무니 없이 적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권기석 한밭대 교수는 “전문대학은 인력양성 중심의 산학협력을 주로 하고, 이공계 연구중심 대학은 R&D를 깔고 시드기술을 전달해 주는 등 역할 차가 존재한다”면서도 “전문대학이 잘할 수 있는 산학협력 영역을 확보해 전문대학만 지원할 수 있는 사업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또 “HRD, R&D등 대학 특성별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국가에서 파악하고, 대학·연구자·연구소 등 특성에 맞는 제대로 된 재정지원이 이뤄져야 원천기술개발 및 기술상용화가 맞물려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경북지역의 A전문대학 교수는 “현재 중소기업청의 ‘산학연 협력기술사업’ 추진주관기관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문대학에 대한 국가 재정지원이 열악했던 만큼, 연구기기자재·인력·이전 실적 등 주관기관의 역량 평가에서 일반대학이나 연구기관보다 조금 불리할 것”이라며 “중소기업의 기술실용화를 목표로 하는 정부지원사업 만이라도 전문대학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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