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본지 논설위원/ 경일대 교수)

정부가 국정 하반기에 총력을 기울여 이루고자 하는 4대 개혁의 대상에 ‘교육’이 포함돼 있다. 교육개혁이 필요하다는 데에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혁이 필요한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다. 주무 기관인 교육부는 교육개혁을 위한 6대 과제를 발표했다. 주요 정책과제로는 ‘전인적 성장을 위한 학교교육 내실화, 안전하고 신뢰받는 교육환경 조성,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대학체계 혁신, 능력중심사회 기반 구축과 직업교육 강화, 100세 시대 평생학습체제 구축, 고른 교육기회 보장 및 사교육·입시부담 완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어느 것 하나 긴요하지 않은 과제가 없어 보인다. 이상의 과제가 잘 수행된다면 교육개혁의 성과는 굉장하리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상당 부분 교육에 기인한 갖가지 사회병리 현상이 교육부의 이런 교육개혁 노력으로 개선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진행되는 교육개혁에 개혁이라는 느낌이 없다. 교육부가 개혁의 기치를 올리든 말든 비리혐의의 대학이 여전히 부당한 힘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교육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의 중심에는 교육비리가 자리하고 있다. 교육비리는 그 자체로 교육의 질 저하를 초래할 뿐 아니라 갖가지 소모적 갈등을 야기하여 국가의 미래를 절망으로 몰아가는 범법행위다. 그런 범죄를 방치한 채 부르짖는 ‘교육개혁’이 공염불 이상의 의미를 갖기는 어렵다. 교육부가 진실로 개혁을 하고자 한다면 교육비리부터 척결해야 한다.

비리척결에 이어, 진정한 교육개혁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 개혁은 교육을 개인의 이기적 욕망 추구의 수단 정도로 여기는 인식에 대한 통렬한 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어느 대학에 몇 명 합격이라는 고등학교의 플래카드 아래에서 ‘금수저, 흙수저’ ‘헬조선’ 같은 비아냥과 자조 섞인 신조어를 주고받는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분열 일로의 사회현상은 우리의 피폐한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만나는 저급한 다툼과 속임수, 고비용 저효율의 미숙함은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 할 땀흘린 보람을 허망하게 날려버린다.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이해를 가볍게 여긴 어리석음의 비싼 대가다. “위 아래가 서로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맹자의 경고가 마치 우리를 위한 말처럼 들린다. 우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서로 배려하고, 소통의 통로를 열고, 토론과 협상의 능력을 기르고, 논리가 설 자리를 찾아주는 교육이 시행되어야 한다. 구각을 깨뜨리는 결단과 인내의 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지금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바의 소위 대학구조개혁도 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세밀한 점검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가 누차 밝힌 바와 같이 재단평가가 빠진 지표는 평가 결과에 대한 공신력을 떨어뜨린다. 구조개혁방법의 개혁이 요구되는 이유다. 정부가 기왕에 교육개혁을 선언하고 위에서 소개한 다양한 과제를 추진하고 있으니, 그 온전한 성과를 위해 적극적이고도 열린 자세를 취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교육부에서 몰두해 온 산업체 수요에 대학 졸업생들을 맞추는 일만 해도 그렇다. 그런 노력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창조경제를 통한 일자리 마련을 위해서는 오히려 생각을 뒤집어야 한다. 정부가 졸업생들을 현존하는 기업의 사원으로 만드는 데 간여하기보다는, 대학이 학생들에게 애플이나 IBM 같은 대기업을 세울 창의성과 자율성을 마음껏 불어넣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미래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개혁의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시대의 변화는 급격하고 국내외 정세는 요동치고 있다.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미래에 대한 우려는 고조되고 있다. 우리의 백년대계인 교육이 개혁다운 개혁을 이루어내기를 소망하는 이유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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