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대학 성폭력예방교육 현장 및 민무숙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인터뷰

<상> 대학내 성폭력 예방교육, 왜 필요한가
<하> 예방교육 현장 및 민무숙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인터뷰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는 4대악 근절을 위한 박근혜 정부의 주요 핵심 국정과제다. 지난해 3월 정부는 11개 관계부처 합동으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 근절 대책’을 심의·확정하고, 양성평등 인식을 기반으로 한 ‘성폭력 예방교육’을 대국민을 상대로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 구성원의 성폭력 예방교육 참여율은 고위직 61.2%, 비정규직 61.2%, 학생 33.5%로, 전체 공공기관 평균인 68.9%, 82.3%, 80.9% 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대학 내 철저한 예방교육은 미래의 ‘피해자와 가해자’ 양산을 막을 뿐만 아니라 청년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학 내 ‘폭력예방교육’이 절실하다.

상대방 몸의 경계 넘어설 땐 우선 ‘동의’ 의사 구해야
동의없는 스킨십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이자 ‘폭력’

 민무숙 원장 “올해 대학내 폭력 퇴치 원년 삼겠다”
“양성평등의 ‘민감성’ 높여 정책 수립·개발 힘써야”

[한국대학신문 정윤희 기자] “상대방의 몸 경계를 넘을 때는 반드시 동의를 구해야 한다. 동의없이 이뤄지는 경계 침범은 곧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지난 12일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은 교내 ‘신입생 대학생활 안내 및 학부모 간담회’에 앞서 2016학년도 신입생을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했다. 이날 강연을 맡은 서울대 인권센터 최기자 전문위원(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전문강사)은 “상대방의 몸의 경계를 넘을 경우 동의가 반드시 전제돼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이러한 인식 자체가 부족하다”면서 “동의없이 이뤄지는 경계 침범은 곧 상대방의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이자 ‘폭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화·드라마 상의 ‘달콤한 스킨십’ 현실은… “잘못된 성 인식, 편견 깨는 작업부터” = 최기자 전문위원은 영화·드라마 혹은 야한 동영상 등을 통해 알게 모르게 축적돼 온 각자의 ‘성에 대한 인식’을 돌아보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를 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전문위원은 “야동의 경우 특정 성을 ‘성적인 도구’로 삼고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통해 점차 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잘못 형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의대생 성추행 사건, 소모임 단톡방 성희롱 사건 등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례들을 소개하고,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함께 공부하는 친구, 동료들 조차도 ‘성적 대상’으로 삼는 등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편견을 깨는 시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기습·사탕·거품키스 등 드라마에서는 남녀 주인공들의 달달한 연애 장면으로 그려졌지만, 현실은 전혀 로맨틱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 전문위원은 “드라마에서는 인성이 부족한, 부자 남성이 그와는 반대인 여성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고, 사랑을 고백할 때 행하는 ‘기습키스’가 로맨틱 하게 그려지는 경향이 있다”면서 “로맨틱한 장면으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고정관념’으로 현실에서의 스킨십은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즉 드라마·영화를 통해 형성된 고정관념이 실제로는 상당히 비현실적이란 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편견깨기다.

▲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이 지난 12일 신입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성폭력 예방교육에서 최기자 서울대 인권센터 전문위원이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한명섭 기자

성관계 동의 ‘차(tea) 권하는 행위로 비유’… "상대방 동의 없은 성관계는 ‘강간’" = 최 전문위원은 상대방 몸의 경계를 넘고 싶은 경우 반드시 먼저 ‘동의’ 의사를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전문위원은 ‘동의(CONSENT(It's simple as tea))'란 시청각 자료를 통해 “차를 마시고 싶어하지 않은 상대방에게, 혹은 의식이 없는 상대방에게 차를 더 이상 권하지 않은 것처럼 성관계도 상대방의 동의 의사가 있어서만 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전문위원은 “법적으로도 ‘확실한 예스(YES)’ 가 있을 때만 성관계를 허락한 것으로 간주 된다”며 “성폭행 여부는 ‘피해자의 인식이 판단 기준’이 되며, 상대방의 적극적이고 명시적인 동의 의사를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학에서의 성폭력 예방교육 필요할까… “예방교육은 평생교육” = 평생교육과 같이 성폭력 예방교육도 지속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전문위원은 “성폭력 예방교육은 사람들의 관점 및 인식 교육으로 한번 교육받았다고 해서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일회성 교육은 절대 아니”라면서 “교육이 일방적 강의 형태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상 관련 주제를 가지고 서로간 대화나 토론을 나누면서 체화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강의에 참석한 최일섭(서울대 농생대 1) 씨는 “상대방 동의 과정을 차(tea) 권하는 행위로 비유한 영상이 기억이 남는다”며, “성폭력예방교육을 통해 ‘대학문화의 자유로움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성폭력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사람들에게 알려 단 하나의 사고라도 미연에 예방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인터뷰] 민무숙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폭력은 사회구조적 문제… 리더들의 관심 절실”

‘공공기관으로서 양성평등 교육기관’인 한국양성평등진흥원 민무숙 신임원장을 만났다. 여성가족부 산하기구인 양평원은 △양성평등을 위한 교육 및 진흥사업 △공무원 대상 성인지교육 △성폭력 예방교육 등 전문강사 양성사업 △양성평등 교육프로그램 개발 및 연구 △국정과제 관련 국가 위탁사업 등을 실시하고 있다. 성차별적인 의식과 관행을 개선하고 양성평등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국내 대표기관으로 올해로 설립 13년째를 맞았다.

양평원은 ‘우월적 지위에 의한 성폭력예방 근절대책’ 일환으로 대학 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활용한 ‘찾아가는 성폭력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3회(2350명), 올해 71회(60개 대학, 4만7000여명)으로 점차 지원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대학 내 학생은 물론 교수, 직원 등의 적극적인 성폭력 예방교육을 위해 최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도 교육프로그램 관련 업무협약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입법화된 ‘여교수 채용 목표제’, 대학내 ‘여대생 커리어 개발센터’ 설치 등 일찍이 여성 인적개발 정책 입안에 힘써온 민 원장은 올해를 대학 내 성폭력을 퇴치하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민 원장은 “양평원이 양성평등의 국내외 대표기관으로서 수준 높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력있는 강사를 배출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교육’으로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민 원장은 대학 내 성폭력 예방교육이 일차적인 폭력예방 효과는 물론 사회인식의 변화까지도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민 원장은 “폭력은 개인간의 문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재화 돼 있는 사회문제, 성차별 문제, 사회구조적 문제까지도 맞닿아 있다”면서 “폭력 예방교육은 양성평등의 문제, 젠더와 인권 등의 문제의식을 전제로 실시되기 때문에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와 타인, 사회를 인식하는 보다 넓고 깊은 관점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사회에 진입할 때까지 인식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문강사’ 양성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했다. 폭력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대중에게 설명할 수 있는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민 원장은 “이론적 전문성뿐만 아니라 교육 대상자와의 소통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면서 “폭력예방교육의 수용성이 높도록 끊임없이 교수 방법을 개발하고, 맞춤형 강의 클리닉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평원에서는 우수한 전문강사 양성을 위해 지난해 ‘서울대학교 여성학협동과정 전문강사 양성과정‘을 운영해 전문강사를 배출했으며, 이를 모델로 학점취득과 전문강사 위촉이 동시에 가능한 ’학-관 연계 전문강사 양성과정‘을 점차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민 원장은 폭력 앞에 고민하는 대학생들에게 “자신을 소중히 여기기 위해서, 또한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해서라도 고민을 함께 할 친구를 찾으라”고 말했다.

민 원장은 “자기를 부정하거나 탓하기에 앞서 본인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란 것을 인식해야 한다. 양평원 혹은 주변의 상담소 등 문제를 함께 풀어갈 수 있는 조력자를 찾아야 한다”면서 “자신을 소중히 여기기 위해,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해서는 전문가와 함께 정신적 트라우마를 치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대학이 ‘안전한 캠퍼스’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보직자 및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 원장은 “지금도 대학의 보직자·리더들은 폭력 예방교육 실시에 공감하고는 있지만, 좀 더 민감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며 “리더들은 학생들의 문제가 성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대학구성원 전체에 영향을 주는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하고, 교원들을 위한 어린이 집 설치 등 대학 내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도록 문화와 제도 개선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진정한 ‘안전한 캠퍼스’로 가는 길이란 것이다.

■ 민무숙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은…

1958년생으로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교육사회학 석사, 미국 일리노이대 교육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과 여성가족부 여성인력기획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대통령비서실 여성가족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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