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종(전 주필/문학평론가, 전 덕성여대·경희대 교수)

윤동주의 <서시>는 태평양전쟁 18일전 작품이고 <별 헤는 밤>은 한 달 사흘전 작품이다. 그리고 <십자가>는 5월 작품이다. 이 속에는 전쟁과 죽음이 있고 사랑이 있고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이별이 있다.

이 시 속에서는 그가 다음에 걸어 갈 길도 보인다.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로 걸어가는 길이다.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걸어간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옛 후쿠오카 형무소는 그의 순교지다. 그리고 그곳은 그가 우리 민족과 인류의 사랑과 평화를 위해 스스로 피를 흘린 곳이고, 이는 우리를 죽음의 도살장으로 몰아가던 군국주의자들에 대한 저항이었기에 지금 살아남은 우리들이 눈물 흘리며 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가는 성지다.

그가 죽은지 50주년이 되던 1995년 2월에 한국대학신문이 50명의 추모위령단을 구성하고 그곳에 다녀 온 것은 이런 의미를 새기며 이를 한국과 일본과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가 죽은지 50년만에야 그 자리를 찾아 간 것은 한국대학신문이 처음이다. 그리고 이 추모위령제는 그 후 지금까지 21년간 매년 2월이 되면 개최되었고, 우리가 못 가더라도 그곳의 <윤동주의 시를 읽는 회>(창립자 니시오카겐지 교수)가 이어나가고 있다. 또 교토의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 한국대학신문이 추진했던 윤동주시비 건립도 완성되어 50주년 그날 제막식이 열리고 그 후 윤동주 기념행사는 일본의 여러 도시에서 이어지고 금년에는 도쿄의 릭교대학(立敎大學)행사에 필자가 관여하는 문예지의 대표 한 사람을 파견했다.

그런데 윤동주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더라도 그의 문학과 삶에 대한 이해도 충분히 깊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를 스스로 죽음의 길로 가게 한 사랑과 평화의 정신이 무엇인지 좀더 확실한 검증이 필요하다.

윤동주가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묶던 당시는 전쟁상황이다. 이 상황은 1931년 만주침략부터 태평양전쟁까지 이어진 것이므로 이 시집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에 의한 정쟁상황이다. 그런데 그것이 종전 후 한국의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지고 지금의 휴전상황으로 이어진 것으로 본다면 윤동주 문학의 배경이 된 전쟁상황은 특수상황이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적 삶이다.

이 상황은 죽이는 자와 죽는 자로 분명히 2분화 된다. 그리고 여기서 윤동주는 죽는 자를 사랑하며 그들을 위한 ‘나의 길’을 걸어간다. 그 길이 십자가의 죽음이다.

그런데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그를 죽이려는 누구 한 사람도 죽이지 못하고 그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한 사람도 살려내지 못했었다. 윤동주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중요한 사실이 있다. 지금까지 후쿠오카에서 윤동주 시비건립을 위해 애쓰며 그 소식을 내게 계속 보내주고 있는 니시오카 교수는 후손들도 그 시비를 보고 전쟁을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윤동주는 죽었지만 그는 가해자의 나라에서 부활하며 이렇게 사랑과 평화의 정신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면 한국도 일본도 평화의 길이 열리고 윤동주는 전쟁광들을 없애버리는 구원자가 될 것이다. 이것이 총 들고 죽이는 것보다 더 강한 저항이다. 세계적 살상무기들이 범람하는 한반도야 말로 어서 우리 스스로 이런 사랑과 평화로 전쟁 없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윤동주는 지금도 우리에게 전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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