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억(본지 논설위원, KAIST 교수)

세상이 급격하게 변화해도 동굴 속 호수 같이 잔잔한 곳이 있다. 바로 학교이다. 학생을 가르치고 학습하는 방식은 수백 년간  거의 변화가 없었다. 교수는 교과서 등을 먼저 열심히 공부해 학생에게 충실히 전달한다.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이를 전달 받고 공부는 집에 가서 따로 한다.

이러한 강의가 학생들의 실제 학습에는 얼마나 도움이 될까. 지금까지 우리는 큰 의심 없이 강의 중심의 교육을 해왔다. 학생의 학습방식과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학생과 학부모는 이를 믿고 따랐다. 다분히 공급자 중심이다. 최근 강의가 학습에 크게 도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Education to Employment’라는 맥킨지 리포트의 취업자 설문조사에서 강의가 ‘최악’의 수업방식, 교육방법이라고 지적됐다. 국내 유력대학에서 신입생 일부 학생들의 자체 설문 결과, 교수 강의는 4번째 10% 정도로만 학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Chronicles of Higher Education에서 개설한 ‘LectureFail’ Project라는 인터넷 토론방, 해외 최고 명문대학들의 SNS 등에서도 강의 방식 수업의 문제에 대해 신랄한 지적이 많다. 이미 대다수가 잘 알고 있는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제대로 공론화하지 않았다.

사실 강의의 문제는 오래 전부터 인식되어 문제기반학습, 프로젝트중심 학습, 능동학습, 협력학습, 동료학습, 팀학습 등의 다양한 혁신적 교수법이 제안됐다. 그러나 대다수 교실 현장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학생이나 교수나 강의에 대한 고정관념이 너무 크다. 평생 그렇게 교육 받고 가르쳐왔기 때문에 강의가 학습과 교육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학생은 ‘강의’가 자신이 받아야 할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교수는 강의 이외의 방식으로 가르치는 방법을 잘 모른다. 교수에게는 강의가 가장 편하다. 교수가 학생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용은 매년 늘어난다. 제한된 시간에 많은 학생에게 많은 내용을 전달하는 대량교육에는 강의가 가장 효율적이다. 수업시간을 ‘강의’에 모두 사용하고 나면 토론이나 팀웍을 할 시간이 없다. 학생은 수동적인 청취자가 될 수밖에 없고 의문을 갖고 생각할 기회가 없다. 다른 수업시간이나 대학원 입시 면접 때 질문해보면 성적과 상관없이 배운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학생이 드물다. 창의성이나 도전적 발상을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사전 발굴해 시상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스라엘의 울프재단 대표는 얼마 전 방한해 창의적인 아이를 원하면 질문하는 방법부터 가르치라고 했다. 우리 학생들이 수줍어서 질문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질문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생각할 줄 모르니 질문도 하지 못한다. 교수도 질문을 끌어낼 줄 모른다. 매년 가을마다 우리는 노벨상 수상자가 왜 없느냐는 기사가 넘친다. 창조경제를 외치나 창의적 기술혁신과 창업은 쉽지 않다. 학업과정에서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키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은 명확하게 풀리도록 잘 설계된 문제의 정답만 구하도록 훈련한다. 그러나 세상의 문제는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최근 삼성전자 사장에게 어떤 역량을 원하는지 물었더니 문제를 제대로 식별하고 정의할 줄만 알면 해결은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산업 및 경제는 이제 고부가가치 지식기반으로 변신해야 할 기로에 서있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발상과 도전이 필요하다. 창의성, 문제 식별 및 정의, 커뮤니케이션, 팀웍, 리더십, 도전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몇 개의 과목으로 가르칠 수 없다. 교육방식, 수업방식을 바꾸어 통상적인 학습과정에서 이러한 역량이 체화되도록 해야 한다. 최근 여러 대학에서 Flipped Learning(거꾸로 학습)처럼 수업시간에서 강의를 없애고 학생과 교수, 학생과 학생간의 상호작용과 학생참여방식의 수업으로 전환하고 있다. 초중고 교사들 모임인 미래교실 네트워크에서도 거꾸로 교실 등의 수업혁신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천만 다행이다. 희망의 불씨를 키워야 한다. 수업시간에서 강의를 없애는 것이 답이다. 이젠 할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