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인문 ‘학과’의 위기, 진짜 위기는 ‘후학양성 안되는 것’

한학자 양성기관 줄어 "국가 지원 늘리고 기부자 모집해야"
인문학은 ‘수원지’… “쉽게 보이지도 않지만 고갈되면 죽음”

[한국대학신문 정윤희 기자] “인문학의 위기요. 지금은 인문 ‘학과’의 위기겠죠. 진짜 인문학의 위기는 ‘후학양성이 안되는 것’입니다. 사람이야말로 인문학의 맥을 잇는 핵심입니다. 어느 것도 대신할 수 없죠.“

건국대 교수연구실에서 태동고전연구소 1기 장학생이자 2007~2008년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학 단장을, 현재는 교내 강의는 물론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후학양성에 매진하고 있는 성태용 철학과 교수를 만났다.

“1976년 태동고전연구소 1기 장학생 공고가 났어요, 한문 전문가 과정을 밟으면서도 월 5만 원 가량의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장학금은 점점 인상돼 중소기업 봉급 수준까지 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문이 중요하다고 누구나 온종일 한문연구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배워서 생활에 바로 사용할 수도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 현실적 수요는 별로 없지만, 우리 인문학의 뿌리임은 당연하죠. 문화계승을 위한 공부에는 그만큼의 투자가 필요한 겁니다. 당시 그렇게 큰 장학금이 없었다면 어떻게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겠어요.”

2014년 태동고전연구소의 한학교육과정은 폐지됐다. 1985년 청명(靑溟) 임창순(任昌淳) 선생은 본인이 설립한 태동고전연구소와 지곡서당 등 부지 5000여 평과 서적 1만여 권을 한림대에 기증했다. 이후 한림대는 2013년까지 매년 6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지원을 이어왔으나 구조조정의 칼날 속에 지원을 중단하고 말았다. 2014년 한학교육과정마저 폐지돼, 현재 한림대에는 태동고전연구소의 연구 기능만 남아 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죠. 한림대가 그동안 적지 않은 액수를 지원해 온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만 연구기능만 남기고 후학양성 기능을 중단한 것은 태동고전연구소 설립자 임창순 선생님의 뜻과는 전혀 맞지 않는 방침입니다.”

230여명의 태동고전연구소 졸업생들은 뜻을 모아 지난해 종로구 작은 오피스텔를 빌려 후학양성 맥을 잇고 있다. 스승이자 선배인 성태용 교수도 무료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태동고전연구소 졸업생들의 뜻을 모아 모금을 시작했는데 1억5000만 원이 모였습니다. 오피스텔을 임차하고, 학생들 장학금도 소정 지급하고 있습니다. 빠듯하죠. 하지만 230여 명의 졸업생 중 180명이 매월 기부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의 필요성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 인문학은 사람들 곁이 언제나 있지만 특별하게 나서지도 크게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래서 인간의 근본이다.

“수도꼭지처럼 틀면 바로 나오는 생활에 편의를 주는 학문이 있고, 수도꼭지와 이어져 있는 배관 역할의 학문, 그리고 배관이 꽂혀 있는 수원지와 같은 학문이 있습니다. 인문학은 수원지와도 같습니다. 수원지가 오염되면 그 양이 아무리 많아도 근본적으로 쓸데가 없어요,”

수원지는 사람들 생활권과 멀리 떨어져 있어 잘 안 보이고, 잊혀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수원지가 고갈되면 우리는 수도꼭지를 아무리 틀어도 물을 마실 수 없다. 그는 인문학은 그렇기 때문에 발전시키기 위해 더욱 애를 써야 한다고 했다. 현재와 같이 천덕꾸러기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년이면 인문한국(HK)지원사업 10주년을 맞는다. 지난 2007년 성 교수가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학 단장 시절, HK사업은 주제별 학문 간 융합을 목표로 도입됐다.

“학교별 한 주제를 가지고 학과간 벽을 없애 연구한지 10년 가까이 됐습니다. 해당 주제에 대한 교내 담론이 형성되고, 이는 전국 최고 수준이 돼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통일’이란 주제를 사학, 국문, 철학, 사회과학 등이 함께 고민하면서 융합과 통섭은 자연히 이뤄지는 겁니다. ”

인간의 뿌리 인문학. 국가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까. 

“생활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은 학문에 인생을 바쳐 연구하는 인문학자들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합니다. 학자 층을 두텁게 해야 하는 것이죠. 다양한 분야의 우수한 학자층을 고루 양성해 내야 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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