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본지 논설위원/경일대 교수)

국가가 나서서 국민들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는 새로운 교육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갖가지 난제가 먹구름처럼 드리운 암울한 현실에서 마주하는 급격한 변화의 물결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앞날에 대한 우려를 기대로 바꿀 지금의 교육정책이 중요하고 중요한 이유다.

지난달 일반의 예상을 깬 인공지능 알파고의 수준이 확인된 직후 서울대·연세대·고려대·카이스트·포스텍 5개 대학이 현재의 계량적 단기평가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연구평가시스템 개혁을 촉구하는 공동선언문을 정부에 전달했다.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교육정책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절박한 움직임의 하나였다. 지난해 일반대학 총장 3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출범한 UCN 프레지던트 서밋에서도 같은 맥락의 위기감이 표출됐다. 거기에서 ‘사회구조변화에 따른 고등교육체제 패러다임 전환’을 비롯한 미래를 내다본 대학정책의 필요성이 논의됐다고 한다.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교육정책 모색의 필요성에는 이론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최상의 교육정책이 무엇이며 어떤 절차를 통해 그것을 찾아내는가 하는 점이다.

교육정책에 반영해야 할 사회변화의 양상과 규모는 일반인의 상상 그 이상일 것이 분명하다. 청년실업 하나로 문제를 한정해도 해결책의 실마리를 찾기가 만만치 않다. 설상가상으로 정보기술의 발전 속도만큼이나 일자리는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모인 대학에서 이런 사회적 변화를 예측하고 일찌감치 활로를 제시해왔다면 더없이 다행한 일이겠으나 안타깝게도 학령인구 급감의 위기 앞에서 단기간의 실적경쟁에 내몰린 대학이나 교수들은 각자의 자구책 찾기에 여념이 없다. 지금은 국가가 나설 수밖에 없다. 다각도에서 제기되는 문제와 의견을 검토해 미래사회로 나아갈 방향을 찾고, 각 분야의 협력으로 우리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릴 교육정책을 마련할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적극 가동돼야 한다.

노인빈곤. 아동학대, 학교폭력, 취업경쟁, 양극화, 세금탈루, 외교마찰, 경기침체, 보복운전 등등 궁극에는 교육의 책임에 연결될 수많은 문제들이 임진왜란 때의 왜선처럼 몰려와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다. 왜란이 준 뼈아픈 역사의 교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통제사 이순신의 연전연승은 지위고하 불문의 소통을 통한 전략수립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산도에 있었던 운주당이 그런 소통의 상징적 공간이다. 승승장구의 조선 해군이 칠천량해전에서 일거에 붕괴되었다. 운주당을 폐쇄했던 원균은 탁상공론에 떠밀려 맞은 칠천량해전에서 자신의 목숨과 조선 수군 대부분을 잃고 전황을 악화시켰다. 발전적 변화를 꾀해야 할 우리의 고등교육정책이 마치 칠천량을 맴도는 듯하여 우려를 자아낸다.

올해 박근혜 대통령은 첫 국무회의에서 "비리와 부정부패, 사익을 추구하는 학교가 없도록 관리와 철저한 감독"을 주문한 데 이어 2월 4일에는 “일부 대학의 비리로 전체 대학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비정상적 관행'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한 달 뒤 교육부에 의해 입법예고된 것은 상위법 위반과 교육비리 조장의 위험이 다분한 사립학교법 시행령 개정안이었다. 여태 많은 대학이 각종 송사로 막대한 교육손실을 초래하였는데, 만약 법인회계와 학교회계 구분이 없어지거나 법인의 송사에 교비사용이 가능해진다면 부정비리와 소송사태가 기름 만난 불길처럼 치솟을 것이다. 이는 대통령의 뜻도 아니고 우리 교육이 가야 할 길도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모두가 믿음과 희망으로 따를 수 있는 미래 지향의 교육정책이다. 대학체제개편을 위해서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큰 그림이 필요하다. 국가가 나서서 정책개발의 운주당을 활짝 열어주길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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