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점대학과 중소대학 협력하면 지방대학 살 길 나올 것”

“국립대 총장 직·간선제 논란, 중요한 것은 공정성”
“기대에 미치지 못한 광주U대회는 아쉬움으로 남아”

[한국대학신문 이재익 기자] 전남대는 1952년 개교 이후 오래도록 호남지역의 대표적인 명문대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수도권 인구 집중이 계속되면서 서울 상위권 대학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기 시작했고 최근 위기로 부각되기 시작한 학령인구 감소는 전남대의 입지를 더욱 줄였다. 한 마디로 위기의 상황이었다.

2012년 12월, 전남대 19대 총장으로 취임한 지병문 총장은 취임과 함께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며 모교의 명성을 되찾겠다고 선언했다. 지 총장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전남대는 지난해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A등급을 받고 최근 ‘대학인문역량강화(코어)’사업에도 선정되는 등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2016년 총장으로서 마지막 해를 시작한 지병문 총장은 마지막까지 ‘대학의 근본적 발전’이라는 원칙에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 어느새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았다. 취임 당시와 지금의 전남대를 비교한다면.
“그동안 여러 지표에서 처지고 구성원들도 침체한 기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3년이 지난 지금 다행히 좋아진 부분들이 보인다. 이젠 자신감을 좀 회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과거엔 상아탑이다, 학문의 전당이다 말을 하면서 외부에서 어떻게 말하든 우리의 길을 가면 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많은 대학들이 경쟁하고 대학에 대한 기대도 달라지고 있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확실한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그래서 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그럴 수 있을 만큼 잠재력도 있었다고 본다.”

- 곧 총선이다. 그동안 총선 출마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려왔었는데 총장으로 남았다.
“총장 임기가 4년인데 그동안 생각한대로 학교를 발전시켰다고 보기엔 부족한 것이 있다. 또 개인적인 욕심이 있더라도 임기를 채우지 않고 도중에 떠난다는 것은 학생들이나 구성원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아직 할 일이 많고, 임기 4년을 채워도 다 마칠 수 없는데 중간에 1년 먼저 그만둔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봤다.”

- 교수부터 국회의원, 총장 등 여러 가지 직책을 수행했는데 무엇이 가장 적성에 맞았나.
“적성은 교수가 가장 맞다. 다만 국회의원도 법을 만들고 예산을 심의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국회의원과 총장은 역할이 다르다. 국회의원은 구성 자체가 회의체라 혼자 결정하거나 책임질 일이 없다. 그런데 총장은 자신이 한 결정에 따라 성과를 본다. 일의 추진과정이나 결과에 대해 보람을 느끼게 된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 볼 수 없다.”

- 능력 있는 사람들이 굳이 국회에 오지 말고 자기 분야에서 기여하는 것이 좋겠다는 식으로 정치 불신, 정치 무용론 같은 말도 나온다.
“현대에 와서 거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경험하고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정치 불신 때문에 국회를 경원시하고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지면 안 된다. 아무리 총장이 잘하려 하고 기업이 잘하려 해도 법적인 뒷받침이 없으면 못한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나 불신은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고민해서 풀어야 할 문제다. 문제들이 있다고 중요성까지 무시하면 민주정치에 있어 엄청난 부작용이 생기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온다. 지금 미국에서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에서 화제가 되는 것도 정치 불신이다. 기성 정치인에 대한 실망과 분노 때문에 상식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선에도 일부가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조심해야 한다.”

- 그동안 대교협 부회장이나 국총협 회장 등 대학사회에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 최근 고등교육계의 화두를 논한다면.
“결국 대학의 경쟁력을 높여줘야 한다. 그러려면 대학 스스로가 경쟁하도록 해줘야 한다. 지금 지방 교육자치가 등장한 이후 시도 교육청 중심으로 고등학교까지 자율성이 늘어났다. 그런데 대학은 여전히 교육부의 감독 아래 있다. 자율적으로 학문을 신장시키는 틈을 줘야 한다. 모든 것을 정부가 하는 대로 하면 안 된다. 어떤 정책이든 만들 때는 대학을 발전시키고 나라의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시작하지만 언제든 의도했던 대로 실적을 보장하진 못한다. 정책 입안자들이 대학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대학에게 자율성을 주고, 대학들은 그 자율성을 가지고 성과를 내고 또 경쟁하는 식이 돼야 하는데 정해진 룰대로만 가고 있다. 가장 큰 핵심은 자율성이다. 특정 정권이나 관료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해본 적이 없다. 대학 발전에 대해 더욱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

- 그러기 위해선 뭔가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할 텐데.
“그렇다. 90년대 중반부터 대학을 40개 가까이 새로 만들었는데 전부 사립대다. 세계에 이런 나라는 없다. 미국도 사립대가 많지만 학생들 80%는 주립대를 다닌다. 국립대와 사립대의 역할을 어떻게 정립할 것이냐. 그리고 대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반값등록금 문제도 지금 그걸 도입하면서 국가 예산 7조원이 투입되고 있는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다. 접근이 잘못됐다.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되 책임도 따르도록 해야 한다. 경쟁력 없으면 문 닫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도태되는 대학까지 유지하려고 경쟁력 있는 대학도 학생 수를 줄이라는 것이다. 물론 정부도 고민을 같이 하면서 가야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시장에 맡길 필요가 있다.”

- 국공립대에도 총장 직선제 등 논쟁거리들이 있다.
“사실 직선제냐 간선제냐가 해결책이 아니다. 국회에 있을 때 교육공무원법을 고쳤는데 직선제를 하는 경우 금품제공, 향응을 없애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자고 했다. 그런데 다시 혼탁해졌다. 정부가 간선으로 가자고 하는데 그러면 선관위 위탁도 못한다. 논의는 그게 아니다. 절차와 방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할 것이냐다. 모두 장단점이 있는데 어떤 것을 할 것인지 대학은 고민해야 하고 정부는 융통성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 호남지역 대학들의 맏형으로서 지방대학의 생존 위기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소위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들이 문을 닫는다는 말이 있다. 이젠 들어올 학생이 없으니 경쟁력 있는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그게 특성화다. 전남대나 경북대 같은 곳은 거점대로서 지위와 책임이 있기 때문에 연구, 교육, 산학협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대학들은 특성화를 해야 한다. 경쟁력이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필요한 부분은 거점대와 협력하는 것이다. 정부지원으로 근근이 버티겠다는 생각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근본적인 것은 연명이 아니다. 확실하게 특성화하도록 군소대학을 도와줘야 한다.”

- 대학발전의 방법 중 하나로 지역에서의 대형 이벤트 등을 활용하는 것을 들기도 한다. 지난해 광주U대회는 어땠나.
“사실 특별할 것은 없었다. 총장 중에 조선대는 독일 응원, 전남대는 미국 응원 식으로 국가와 대학을 연계해보자 제안했지만 조직위에서 연락이 없었다. 또 선수들이 소속된 세계대학 총장들이 모여 회의를 해보자고 했지만 무산됐다. 오히려 구체적으로 지역사회와 대학이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야 한다. 큰 이벤트는 아니지만 ‘한 책읽기 운동’을 시작했다. 독서 클럽도 있고 토론회도 한다. 처음 도서를 선정할 때 시민 5000명이 투표했는데 지난번엔 2만명이 넘었다. 대학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런 것이 아닐까. 또 캠퍼스 내 부지를 도시텃밭으로 시민들에게 분양하는 것이나 송년음악회를 통해 모두가 함께하는 것처럼 지역사회와 같이 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켜 온 철학이 있나.
“일단 직분에 충실해야 하니 교수나 연구자로서는 학생에게 정직하게. 공직자로서는 부패하지 말고 불의에 타협하지 말고. 총장을 하면서는 학교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했다. 누군가는 총장을 목표로 열심히 했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국회의원, 총장을 하겠다는 생각은 안했다. 열심히 살다보니 교수가 됐고 국회의원이 될 기회를 얻었다. 학생들에게 조언한다고 하면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나, 목표 세우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은 이루는 것에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인생이 기니 그때그때 만족하면서 열심히 살다보면 또 기회가 오지 않나. 기본에 충실하고 열심히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전남대 역사에서 어떤 총장으로 남고 싶나.
“임기 동안 하려고 했던 일 중에서 못한 것도 있고 목표만큼 못간 것도 있지만 사적 욕심을 채우려고 하진 않았다. 잘못한 일도 있고 뜻대로 안될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학교발전이라는 원칙에 충실하려 했다. 그렇게 기억되고 싶고 남은 임기 1년, 마지막까지 지키려 한다.”

<대담=박성태 발행인 / 정리=이재익 기자 / 사진=한명섭 기자>

■ 지병문 총장은…
1953년 전남 영광 출생. 전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정치학 석사,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부터 전남대 교수로 부임해 통일문제연구소장, 아시아태평양지역연구소장 등을 역임했고 2012년 총장으로 취임했다. 대학 밖에서는 한국지방자치학회 부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부회장, 전국국공립대총장협의회장 등을 지냈으며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제17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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