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창수(본지 논설위원/순천향대 창업지원단장)

지구는 왜 평평하지 않은가. 왜 어떤 나라는 잘 사는데 어떤 나라는 그렇지 못한가. 서로 다른 날씨나 자연환경, 부존자원 때문인가 아니면 사람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가. 이 질문은 남한과 북한을 비교하는데 이르러서는 더욱 복잡해진다. 같은 역사, 동일한 위치와 자연환경, 같은 민족인데 왜 남한은 이렇게 되었고 북한은 저렇게 되었는가. 긴 역사를 같이 살아오다가 잠시 헤어졌을 뿐인데, 저렇게 극명한 차이를 보일 수 있는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두 사람의 학자가 그 원인을 분석했다. 결론은 국가 간 빈부차이의 주원인은 자연환경도 인종도 아닌 ‘정치, 경제적 제도’라고 했다. 지구촌의 국가 가운데 비교적 부유하고 잘 산다고 하는 나라들은 비교적 포용적(Inclusive)이고 민주적이며, 경쟁적이고 다원적인 제도를 채택했고그렇지 못한 나라는 소수 엘리트에 의한 착취적(Extractive)이고 비경쟁적이며 독과점적인 제도를 채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유한 국가는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창의, 혁신을 장려하고 그에 상응한 인센티브가 존재하는 나라이고 그렇지 못한 국가는 소수집단의 일방적 결정과 다수 구성원의 맹목적 추종, 개별 노력에 대한 인센티브의 부존재를 특징으로 한다고 한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역 노갈레스가 이런 극명한 현상을 보여준다. 같은 민족, 문화, 지역인데 인위적 국경선에 의해 지역의 한쪽은 미국이 됐고 다른 쪽은 멕시코로 분류되면서 지금은 국민 소득이 세 배가 차이나는 전혀 다른 지역으로 변모돼 있다. 두 나라의 정치, 경제제도 때문이다. 미국 MIT대학교의 대런 에쓰모글루 교수와 하바드대의 제임스 로빈슨 교수가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라는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러고 보면 남한과 북한의 오늘날 차이의 원인을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다. 소수가 지배하는 정치와 경제제도, 다수가 참여하고 지배하는 제도가 결정적 차별요인의 핵심이다. 개별 구성원들의 개별성과 창의가 존중되고 장려되는 제도와 그에 상응하는 인센티브 제도의 존재여부가 핵심이다. 이러한 제도의 존재나 실행여부는 사람이 결정한다. 그러면 결국에는 이러한 차이의 맨 밑에는 ‘사람’이라는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국가간의 빈부차이는 자연환경이나 위치, 인종 요인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인위적 요인이 좌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민족이라도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문제가 있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직이나 그룹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학도 마찬가지이다. 규모나 차원은 다소 이질적이지만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본다. 우리나라 대학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어떤가. 소수의 엘리트에 의한 “나를 따르라”식의 개발연대식 육성정책인가 아니면 개별 대학의 특성을 앞세운 다원적 참여정책인가. 정부가 생각하는 방향을 먼저 정하고 따라 오라는 식인가 아니면 개별 대학의 특성이나 생각을 먼저 듣고 각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밀어주는 식인가.

대학만큼 미래와 관련된 예민한 기관도 없다. 미래를 살아갈 인재를 양성하고 미래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을 연구하는 곳이다. 소수 그룹의 생각이나 예측으로 대학의 방향을 설정하고 토끼몰이식 정책으로 대학을 유도하는 것은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다. 지금과 같이 한치 앞을 예측 못하는 급변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운명을 가장 잘 아는 주체는 바로 ‘자신’이다. 운명 앞에서 가장 절실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오늘 날 대학이 처한 문제는 해당 대학이 가장 잘 알고 가장 절실하다. 문제에 대한 위기의식도, 해결방향과 의지도 해당 대학만큼 절실한 곳은 없다. 그러한 절실함을 바탕으로 진정한 창의와 혁신, 자구책이 나온다. 대학을 대학에 맡겨보자. 정부가 이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맡겨보자. 처음엔 불안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스스로 정리하고, 바꾸고, 없애고, 새로 만들고 할 것이다. 결국 시장에서 가장 합리적인 형태로 재탄생하거나 사라질 것이다. 일부 소수 엘리트 정책 그룹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기발한 모양의 대학들이 각 지역에서 탄생할 것이다. 시장의 힘이고 인간의 힘이다. 소수가 나서지 말고 다수의 당사자에게 맡기자. 남북한이 생생히 보여주고 있고 역사가 보여줬지 않은가.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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