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성(본지 논설위원/서울시립대 교수)

최근 이런 보도가 있었다. 지난해 사회를 뒤흔들었던 소위 전공서적 표지갈이 사건의 당사자로 지적된 교수들에 대해서 대학들이 별 징계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면서, 교육부가 해당 대학들에게 이를 ‘연구윤리 위반’ 명목으로 조사하고 징계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보도된 바대로 다른 이의 책을 표지만 바꾸어 내 책으로 둔갑시킨 것이라면 이것이 무슨 연구윤리 위반인가? 사기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이야기로 강조하려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왜 우리 사회에서는 연구윤리의 문제를 연구자들이 아닌 일반인들이 지적하고 재단하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연구윤리 기준은 2005년 줄기세포연구부정사건 이후 교육부의 한 사무관이 발 빠르게 외국의 자료를 모아 만든 연구윤리지침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이후 우리 학계의 윤리규정은 우리 학자들에 의해서 제대로 세워져 왔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 대학과 학술단체들에서는 ‘만들어라, 만들지 않으면 더는 지원하지 않겠다’는 교육부의 강압에 의해서 연구윤리 지침이 만들어졌다. 그것도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중지를 모은 공동체의 결실로 나온 것이 아니라 한두 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지시를 받고 교육부 지침이나 다른 기관의 것을 베껴서 만든 것이 태반이다.

그간 수많은 연구윤리 사건들이 매스컴을 통해 노출됐고, 그때마다 당사자들은 학자가 아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맞지도 않는 얘기를 그렇듯하게 둘러대면서 피해왔다. 학자들이 그런 사안들에 대해 무관심해 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언제까지 우리 학자들은 연구윤리의 정착이 남의 일인 양 나 몰라라 하고, 그 결과 일반인들이 우리들의 연구방식과 관행에 대해 옳고 그름을 단정하도록 놔둘 것인가.

이미 사회는 많은 경우에서 학자들이 오래 유지해 오던 제대로 된 연구 관행을 ‘잘못됐다’, ‘옳지 않다’고 예단하고 있다. 학자들이 별반 올바른 연구 관행을 갖고 있지 않고, 연구윤리도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지 않나 우려된다. 지금은 계도가 된 경우지만, 학위논문이 학술지 논문으로 발표되는 일이 이중출판이라고 비난받던 일이 한 예이다. 또 교수가 지도학생의 졸업논문을 정리해 학술지 논문으로 출판하면서 공동저자로 이름을 등재하는 일이 학계의 파렴치한 관행으로 판정된 법정 사례도 있다.

학자들은 왜 연구윤리라는 것을 가지고 있나. 사회의 눈이 무서워서? 아니다. 연구자들이 스스로의 연구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런 짓은 하지 않기로 다 함께 약속하고 지키자’라고 한 약속이다. 연구하는 행위는 마치 ‘과거 선배들이 쌓아놓은 ’과학적 진실의 계단‘이라는 높은 층계의 꼭대기에서 새로운 계단을 또 한 단계 쌓는 일이다. 그러나 과거에 어느 누가 헛계단을 쌓아놓았다면, 그 탑은 언젠가 허물어질 것이고 그 위에서 작업하던 나의 연구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연구를 수행하면서 이런 일은 당연히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제하고 자신의 계단을 쌓아나간다. 다시 말해서, 연구하는 나는 동료학자들의 신뢰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한다. 때문에 거짓된 자료를 발표하거나 남의 것을 가져와 크레딧을 부당하게 취하는 일은 우리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돼야 한다. 이를 판정하는 일이 결코 모호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변명하고 외면하는 것은 스스로 맑은 물에서 살 의지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대학과 연구소 등 연구커뮤니티의 기초에서 연구자간의 신뢰를 다지는 일이 튼튼히 일어나야만 한다. 또 그러한 일은 연구란 일에 대한 구성원간의 활발한 논의에 의해서 가능해진다. 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연구를 공개하고 서로의 연구의 진실성을 따져주는 일이 그것이다.

필자가 속한 한국과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과편협)의 출판윤리위원회에서는 2014년에 ‘이공계 연구윤리 및 출판윤리 매뉴얼’을 출판해 전국 대학에 배포한 바 있다. 책에서 제시한 연구진실성의 본질과 원리를 중심으로 연구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공감대를 구축해 가면서 진정한 자신들의 연구윤리와 연구관례를 정립해 나가길 바라면서 만들어진 매뉴얼이다. 이 매뉴얼이 최근에 영어로 번역돼 아시아 여러 나라 학자들에게 배포될 예정이다. 아시아권 연구자들도 함께 공감하는 연구윤리를 정립하자고 하는 의도다. 한편, 국내 연구계에서 점차 수가 늘고 있는 외국인 학생들은 스스로가 연구윤리의 사각지대에 있음을 하소연하고 있다. 이들에도 이 영문 매뉴얼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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