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훈 / 서울여대 현대철학 교수

지난 대선 때 핵심 쟁점은 경제민주화였다. 박근혜 후보나 문재인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를 주장했다. 당시 승자는 경제민주화라는 의제를 선점했던 박근혜 후보였지만, 이번 총선에선 경제민주화가 부메랑이 되어 참혹한 패배를 겪었다. 경제민주화를 선점했기 때문에 승리했던 사람이 경제민주화를 이행하지 않아 패배했다면, 과거에 패배했던 야당은 경제민주화를 다시 쟁점화 함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 정치에서 경제민주화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 되고 말았다. 경제민주화를 실천하는 사람은 시대를 이끌 것이요, 이를 거부하는 사람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 대학은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학은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정신과 무관한 것일까.

경제민주화란 헌법적 의미에서 균형 있는 성장과 적정한 분배, 경제력 집중과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의미하며, 이는 소득 불평등 해소, 대기업에 의한 시장독점과 불공정 거래 방지, 기업과 근로자, 소비자 간의 세력균형을 통한 기업의 권력화 방지 등으로 구체화된다.

이를 대학에 적용한다면 첫째, 강사와 교수, 교수 중에서는 정년과 비 정년 교수들 간의 소득불평등이 해소되어야 한다. 과연 강사들의 강의와 교수들의 강의가 질적으로 얼마나 다른 것일까? 더구나 비 정년 교수제도는 싼 값으로 교원확보율을 높이기 위한 편법에 불과한 것 아닌가.

둘째, 메이저 대학만 키우는 선별적 대학지원은 모든 대학에 대한 공평한 지원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학문생태계를 파괴하는 취업위주의 학과조정도 재고되어야 한다. 국민의 세금을 통한 대학 지원은 그 혜택이 모든 대학 학생들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해야 하는데, 선별된 대학만을 지원하는 것은 교육재정의 공공성을 침해한다.

또한 취업위주의 학과조정은 기초학문과 응용학문 간의 균형을 파괴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취업 학과의 학문적 토대를 상실하게 함은 물론 결국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대학 학과 조정을 단지 시장의 수요에 맞춘다면 보다 넒은 의미에서 사회재생산을 위한 인재육성을 도외시하게 한다.
셋째, 대학 집행부가 권력화하는 기존의 대학 지배구조는 철폐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이 ‘자기결정권’이라면, 민주적 대학은 재단, 집행부, 평교수, 학생, 직원 등 다양한 주체들 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운영되어야 하며, 그 핵심은 총장 선출방식에 있다. 총장 선출을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총장 선출에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대신 이사회에 총장 선임권을 넘겨주려는 기존의 정책기조는 대학의 민주적 운영을 저해한다.

경제민주화가 새로운 시대정신이 된 것은 시장논리를 전 사회로 확산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며, 오늘날 대학을 망친 만악의 근원을 말한다면, 이것 역시 대학이 시장의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용절감을 위해 교육 담당자들 사이에 차별을 만들고, 대학에 대한 선별적 지원으로 대학 간 경쟁을 유발하지만, 결국 교육수혜 상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것, 시장수요를 과장함으로써 학문생태계를 파괴하고, 시장논리를 강화하려는 정부시책에 부응하도록 대학을 행정 권력화 하는 대학지배구조 등. 이것이 신자유주의적 대학운영이 남긴 폐해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일까.

대학이 시대의 산물이라면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을 거부할 순 없다. 더구나 대학이 시대를 선도해야 한다면, 이제 대학은 경제민주화의 방향을 전향적으로 제시할 뿐 아니라, 스스로도 이를 실천해야 한다. 물론 대학의 경제민주화를 지원하도록 대학정책이 혁신되어야 함은 필수적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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