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반대 넘어야 할 산…지역 표심 놀이 비판도

[한국대학신문 방서후 기자] 의료 취약지에 국공립의대를 설립하는 법안이 19대 국회 임기가 종료됨에 따라 줄줄이 폐기됐다. 이에 따라 공공보건의료 전문 인력을 양성하려던 보건복지부의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25일 국회에 따르면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국공립의대 관련 법안은 △국립보건의료대학 및 국립보건의료대학병원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안(이정현 새누리당 의원) △창원산업의료대학 및 창원산업의료대학병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박성호 새누리당 의원) △국공립공공의료전담 의과대학 및 국공립공공의료전담 의과대학병원의 설치·운영 등에 관한 법률안(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다.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정부가 무상으로 의사를 양성하고, 10년간 지정된 공공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조건으로 면허를 발급해주는 것이 골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제1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의료 취약지 공공보건의료 분야에 전문적으로 종사할 의료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 설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별도 입법 없이 새 법안의 입법을 도와 국립보건의료대학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관련 법안들이 모두 폐기되며 정책 추진 동력을 잃은 셈이 됐다.

해당 법안들을 발의한 의원들은 20대 국회에서 적극적으로 재논의 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산업의대법을 발의한 박성호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패했고, 의료계의 반대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이정현 의원실 관계자는 "20대 국회가 개원하면 가장 먼저 발의할 법안이 국립보건의료대학 설립 법안"이라며 "논의 과정에서 세부적인 내용은 일부 수정될 수 있지만 기본적인 큰 틀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단지 의사수를 늘리는 것은 의료 취약지의 열악한 의료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미 △공공의료에 관한 법률 △국립대학병원설치법 △서울대학교병원설치법 △국립중앙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공공보건의료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의과대학 및 병원이 있는데 굳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의대를 신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환자들이 소위 '빅5'라 불리는 대형병원에만 몰리는 이유를 조금이라도 생각해본다면 의사수를 늘리는 것만이 답이 아님을 누구나 알 수 있다"며 "무작정 의료 인력을 늘릴 게 아니라 의사들이 근무를 기피하는 지방의료원 등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 특정 지역, 특정 진료과에 몰린 인력을 재분배하는 것이 먼저"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의대 유치 공약은 선거철만 되면 남발된 전형적인 선심성 공약"이라며 "전문의가 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이 소요되는데 이제 갓 의사 면허를 받은 초년병들로 가득한 병원을 환자들이 믿고 찾을지 묻고 싶다. 결국 국회의원들은 그런 실패가 불 보듯 뻔한 시설을 운영하기 위해 예산은 있는 대로 끌어다 쓰고 임기가 끝나면 나 몰라라 할 텐데 오랜 기간 그 지역을 위해 일할 것도 아니면서 끝까지 책임지지도 못할 공약을 남발하는 것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고 일침을 놓았다.

실제로 공공의료 관련 법안을 발의한 의원 모두 의대가 없는 자신의 지역구에 의대를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이를 두고 의대 설치에 들어가는 비용 등에 대한 철저한 검토 없이 단지 공약을 위한 수단으로 법안을 남발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차의과대학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과대학 건축비는 85억 원, 여기에 기숙사와 부속병원까지 신축하면 약 2500억 원이 추가로 투입된다.

이정현 의원은 지난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순천대 의대 유치와 대학병원 설립을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하지만 순천대 의대 설립 허가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자 이번 총선에서는 국립보건의료대학 및 병원 설립 법안을 발의해 이를 순천으로 끌어오겠다는 공약으로 선회했다. 이 의원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순천 지역 사회는 순천대 의대 유치를 미끼로 표심을 얻어놓고 이제와 다른 소리를 한다며 술렁이고 있다.

박성호 의원 역시 창원시가 관내 6개 대학 중 의대가 전무하고, 인구 100만 이상 도시 중 상급 종합병원은 물론, 의대, 치대, 약대, 한의대가 없는 유일한 지자체라는 것을 강조하며 산업의대 설립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박홍근 의원도 4년제 대학이 없는 서울 중랑구의 교육 여건을 개선시키기 위해 서울시립대에 의과대학을 설치하고 부속병원을 서울의료원으로 정해 운영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박홍근 의원실 관계자는 "서울의료원을 비롯해 기존에 있는 병원을 대학 부속병원으로 활용한다면 설치 및 투자비용을 상당 부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국민의 의료기본권 확보 차원에서 이런 중대 사안은 사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리고 직접 입법을 주도하는 것이 맞지만 의료계와 합의하는 데 시일이 오래 걸려 개별 의원 입법에 기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더 이상 표를 얻기 위한 정치법안이 아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민생법안으로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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