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적 의미에 그친 법안 ‘공염불’ … 현장에선 “체감도 낮았다”

▲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법안처리율 26.9%에 머물러 '불량 상임위'로 꼽힌다. 30명에 달하는 교문위원들은 왜 이런 평가를 받아들어야 했을까. 사진은 25일 국회 본청 교문위 전체회의실의 모습. (사진=최상혁 기자)

[한국대학신문 이재·최상혁 기자] 20대 국회가 시급히 처리해야 할 고등교육 현안은 뭘까.

전문가들은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을 꼽고 있다. 이 법은 한 해 세수의 일정비율을 고등교육 예산으로 의무할당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이미 19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던 법안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각 대학은 법이 정한 비율에 따라 정부지원금을 일정하게 받을 수 있다. 지금처럼 대학들이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에 사활을 걸고, 학과를 갈아엎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태범석 전국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장은 지난 5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대학구조개혁법안’도 20대 국회가 풀어야 할 문제다. 현재 교육부가 실시하고 있는 대학구조개혁 정책을 법으로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또 대학 경영진과 대학 구성원의 이견이 컸다. 대학가 구조조정 전문가들은 “국회가 법안 처리에 몰두하지 말고 구조개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대학과 지역을 살펴 피해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감내할 것인지 합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격대학협의회법안(원대협법)’과 ‘전문대학 수업연한 다양화 법안(수업연한법)’도 과제다. 원대협법은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하고 자동 폐기됐고, 수업연한법은 전문대학 총장과 일반대학 총장이 국회 내에서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연출한 끝에 처리가 무산됐다. 19대 국회는 두 법 처리과정에서 대학가의 현안을 이해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시간강사법’과 대학원생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도 20대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교육민생 현안이다. 특히 대학원생 인권문제는 전국 대학원생이 30만명을 넘긴 시점에서 법제화 필요성이 크다. 강태경 고려대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대학원생 문제에 대해 19대 국회가 나서서 한 일은 전혀 없다. 다음 국회에서는 대학원생의 노동자로서의 성격을 인정한 대학원생 노동권 보호법 등이 제정되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사시존치법 △산업·보건의대 설치법 △수도권정비특별법 △대학생 주거안정 대책 등 교육 민생 현안이 산적하다.

그렇다면 19대 국회는 왜 고등교육 현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까.

19대 국회를 가까이서 지켜본 관계자들은 19대 국회가 ‘논쟁을 회피하는 국회’였다고 강조했다. 미디어에 비치는 정쟁에 휩싸인 국회 이면에는 고등교육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각종 교육민생 현안을 제대로 토론하지 않는 ‘조용한’ 국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일까.

대학생 주거권 운동에 앞장서온 임경지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주거기본법을 통과시키고 각종 요구사항들을 처리하긴 했다. 그러나 실제 피부에 와 닿는 체감도가 높은 법들은 아니었다. 상징성은 있지만 실효성은 없는 법안들이 주로 통과됐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처럼 19대 국회는 청년·서민주거안정을 내세우며 특별상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전·월세 상한제 등 실제로 임대시장을 규제하고 대학생의 주거안정을 꾀할 수 있는 법안들은 처리되지 못했다. 임경지 위원장은 19대 국회에서는 주거권 문제를 의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선수’가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산촉법(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 촉진에 관한 법)’도 마찬가지다. 박근혜정부가 취·창업을 강조했지만 정작 국회에서는 대학의 계약학과를 늘리는 게 전부였다. 채창균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 연구위원은 “실효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이 분야에 밝은 인재가 19대 국회의원 중에선 보이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전문가가 없다 보니 제대로 된 현안토론 자체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런 비판에는 고등교육 관련 굵직한 법안도 예외가 아니다. 국정감사나 청문회 등에서 대학구조개혁에 관한 질의응답은 많았지만 내용은 지역구 챙기기 수준에 그쳤다. 대학구조개혁 자체가 관심사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안 통과에 찬성하는 대학 경영진과 반대하는 대학 구성원들 간의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조차 미진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 같은 책임을 전적으로 국회에만 돌릴 수는 없다. 행정부와 국회의 관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입법기관으로서 국회의 독립성은 19대 국회 내내 크게 훼손됐다. 일부 의원들이 행정부의 입장을 담은 법안을 그대로 이어받아 ‘청부입법’을 지속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대 현안이라는 대학구조개혁법안 역시 교육부의 입김이 담긴 법안이다. 앞서 2014년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이 법안을 발의했고, 이 법안이 야당과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자 서둘러 자구를 일부 수정한 법안을 지난해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이 다시 발의했다. 두 법안 모두 법안 설계와 수정과정에 교육부가 깊숙이 개입했다.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종 이슈에서 여당은 뚜렷한 입장을 내지 않고 버티기로 일관했다. 여야의 이견을 좁힐 수 있는 토론 자체가 불가능했다. 청와대가 국회의 독립적 활동에 계속 간섭하고 여당에 간섭하는 행태가 사라져야 제대로 국회가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며 행정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이런 구도는 교육비 문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유은혜 의원이 발의한 취업 후 학자금대출 상환 특별법 개정안(ICL법)이 대표적이다. 당초 학부생으로 제한됐던 대출대상을 대학원생까지 확대하고 △대출자격기준 완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이 법은 그러나 교문위 논의 과정에서 기획재정부의 반대에 부딪혔다. 표면적으로는 여당 의원이 반대한 모양새이지만 논의 과정에서 기재부가 거세게 반대했다는 게 정설이다. 20대 국회는 이 같은 행정부의 간섭을 끊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될 전망이다.

▲ '일하지 않는 국회'라는 오명 뒤에는 전문가와 논쟁이 실종된 국회라는 진단이 뒤따랐다. 사진은 25일 국회 본청 정론관의 모습. 항상 기자들로 북적이던 이곳은 이날따라 한산했다. (사진= 이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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