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여학생회 필요성 논의 없이 소멸…총학생회가 역할 대신할 수 있을까

대학 내 성 인지 담론 활발해지기 어려운 구조 고착

▲ 고려대 안암캠퍼스 정경대학 후문 게시판에 붙은 강남 여성 살인사건 추모 대자보와 포스트잇(사진=이재익 기자)

[한국대학신문 김소연 기자]성평등을 위한 학생자치기구인 총여학생회(총여)는 줄어들다못해 자취를 감추고 있다. 대학 내에서 성 인지 관련 교육과 활동, 논의도 덩달아 위축되는 분위기다. 총여가 오히려 ‘여성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총여학생회 존재 이유에 의문을 품는 학생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지역 대학 중 올해 총여가 운영되고 있는 대학은 경희대, 연세대 2곳에 불과하다. 지난해까지 총여 회장을 뽑았던 숭실대는 올해 후보자가 없어 지난해 회장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한양대는 2년 연속 회장 후보가 나오지 않아 공석 상태다.

고려대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따르면 여대를 제외한 전국 일반대학 217개교를 조사한 결과 37개 대학(17%)에만 총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총여가 없는 대학은 180개교(83%)에 달한다. 총여가 자연소멸되거나 폐지하고 총학생회(총학) 산하로 격하시키는 대학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과거 총여가 있었지만 사라진 대학은 23개교,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간 폐지 대학은 12개교에 달했다.

총여는 1980년대 중반 당시 대학 내 인원이 적었던 여학생들의 권리 신장을 위한 자치기구로 출발했다. 그러나 대학 내 여학생 비중이 크게 늘면서 존폐 논란에 시달려 왔다. 총여에 대한 관심도 줄어 필요성 논쟁조차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숭실대는 지난달 총여 존폐와 회칙 등을 개정하는 학생총회를 열었으나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윤홍준 전 숭실대 총학생회장은 “그동안 대학가에는 강남역 살인사건 정도는 아니더라도 MT,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축제 등에서 성희롱 사건, 교수의 학생 성추행 사건 등 성 관련 사건이 끊이질 않았다”면서 “지금 우리사회에서 여성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 차별적인 발언들을 듣는 게 사실이다. 총학에서도 이런 부분을 개선하고자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총여가 활발하게 활동할 때보다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오규민 한양대 총학생회장도 “총학에서도 일상적인 복지 사업은 할 수 있지만 총여가 이런 역할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본다”며 “지금은 총여의 역할과 필요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논의가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라고 답했다. 대학과 총학이 성평등 또는 성폭력 예방 교육과 활동 등을 하더라도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여성혐오 논쟁이 뜨거워진 상황에서 총여가 제 기능을 하려면 자신만의 색과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2010년 이후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이나 생리대 배부 등 복지에 골몰했다는 비판 끝에 폐지된 총여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고신대 총여의 경우 최근 페미니즘과 거리가 먼 혼전순결 캠페인에 참여한 학생 중 추첨해 은반지를 나눠주는 사업을 벌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석순'의 권순민 편집위원은 “총학도 위기인 상황에서 총여가 복지 사업 등에 치중하고 페미니즘 어젠다(의제)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는 등 제 역할을 찾지 못한다면 총여는 쇠락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총여는 최근 투표권을 남학생까지 개방하고, 산하의 ‘여학생위원장회의’와 ‘단과대학 여학생위원회’의 명칭을 ‘성평등위원장회의’와 ‘단과대학 성평등위원회’로 바꾸는 등 변화 시도를 단행했다. 이번 시도는 성평등에 대한 남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지, 정체성 논란을 가속화 시킬지 학생사회에서 주목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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