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명지대 교수(정부 양성평등위원회 민간위원)

세계경제포럼(WEF)은 정치, 교육, 고용, 보건 등 4개 분야에서 성별 불평등 상황을 계량화해 매년 ‘성 격차 지수(Gender Gap Index, GGI)’를 발표한다. 1이면 완전 평등, 0이면 완전 불평등을 나타낸다. 2015년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0.651로 145개 조사대상국 중 115위였다. 심각한 성 차별적인 사회임이 드러났다. 이렇게 성 격차 지수가 하위권으로 맴돌면 차이가 차별을 낳는 나쁜 사회가 된다. 여성의 잠재력이 발휘되지 못하면서 경력 단절은 늘어나고 국가 경쟁력은 추락한다. 이런 와중에 강남역에서 20대 여성이 살해당했고, 수락산에서는 산책을 나선 여성이 ‘묻지마 범죄’의 희생양이 됐다.

심각한 것은 박근혜정부가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 등을 주요 국정 과제로 선정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끔찍한 여성 혐오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 1일 ‘여성 대상 강력 범죄 및 동기 없는 범죄 종합 대책’을 공표했다. 신축 건물의 남녀 화장실 분리 설치, 여성 상대 범죄자에 대해 법정 최고형 구형, 여성대상 강력 범죄자에 대한 가석방 심사 강화 등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여성계에서는 젠더 폭력 예방책은 없고 가해자 처벌만을 강조하는 그야말로 실효성 없는 ‘사후 약방문식’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에게 묻는다. 이런 대책들이 과연 성 차별 사회 구조를 근절할 수 있다고 보는가. 성 차별 사회 구조를 없애기 위해서는 성 평등과 관련된 ‘인식적 오류’(cognitive error)에서 벗어나야 한다.

첫째, 양성평등은 이미 이뤄졌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고, 사시, 외시, 행시 등 고위직 공무원 시험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양성 평등은 이미 이뤄졌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런데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5.6%로 남성(77.6%)보다 훨씬 낮고, ‘비슷한 일을 할 때 여성의 임금은 남성 대비 64% 수준이다. 강력 범죄 피해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83.8%에 이른다. 상황이 이런데 무슨 성 평등이 이뤄졌다는 말인가.

둘째, “양성평등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다”는 착각이다. 양성 평등은 공공재(public goods)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양성 평등이 달성돼 일과 가정의 양립이 이뤄지는 등 좋은 사회가 만들어지면 그 혜택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누릴 수 있다.

셋째, 젠더 이슈는 그리 절박하지 않다는 편견이다. 성 평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가 경쟁력은 추락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젠더 이슈는 경제 이슈이고 동시에 절박한 사회 이슈다. 이런 중대한 젠더 이슈를 등한시 한 채 노동 개혁 등 다른 경제 살리기 이슈에만 매달리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새롭게 출범한 20대 국회는 젠더 이슈에 앞장서야 한다. 특히 성 평등 국가를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스웨덴의 양성평등정치는 소위 ‘두 명당 한 명꼴로 여성을’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바르안난 다메르나스(Varannan damernas)’로 대표된다. 이것은 스웨덴 양성평등 정책의 상징으로 1990년대 들어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양성평등 국가를 지향하기 위한 국가적 목표로 자리 잡은 후 현재까지 스웨덴의 모든 정책분야에 필수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스웨덴의 국가 경쟁력은 최상위에 포진되어 있다.

미래학자 페이스 팝콘은 ‘이브’(EVE)와 ‘진화’(evolution)의 합성어로 ‘이브올루션’(EVEolution) 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성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비즈니스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이런 새로운 시대에 우리 사회에 만연된 잘못된 인식과 성 차별적 구조를 없애 실질적인 성 평등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국가 경쟁력은 상승하고, 묻지마 식 여성혐오 범죄와 젠더 폭력은 사라질 것이다.

단언컨대, 성 평등 사회 구현은 시대정신이다. 특정 정치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야, 진보와 보수, 남성과 여성의 타협과 협력을 통해 지속·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