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이후 별도 학과 설치…2000년대 후반부터 줄폐지

대학생들 "필수교양과목으로 지정해 남녀 모두 수강해야" 한목소리

<글 싣는 순서>
①여성혐오에 갇힌 사회…성 평등 교육 ‘마지막 보루’

②대학 여성학 교육의 어제와 오늘
③대학 내 젠더 이슈 선도 방안 모색 좌담회

[한국대학신문 이연희· 구무서 기자]지난달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에도 여성혐오성 비면식 범죄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사후약방문식 제도 개선책만을 내놓고 있어 비판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가운데, 교육의 역할이 다시금 중요해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지난해 3월 내놓은 ‘학교 성교육 표준안’은 오히려 성역할을 뚜렷이 나누고, 여성이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성차별적 편견과 인식을 심어주는 내용이라는 비판에 적용되지 못한 바 있다.

의무교육은 아니지만 국내 대학 진학률은 70%에 육박한다. 학생들 역시 입학 후 전공이 아니더라도 교양수업을 통해서 성평등 인식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여성학과 페미니즘 담론을 재생산하는 역할을 주도해온 만큼 대학은 교육을 통해 젠더이슈를 선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 국내 23개 대학의 여성학 전공·수업 현황 (2016년 기준)

■민주화와 성장해 시장주의 가속화로 쇠퇴=여성학은 1970년대부터 여대 교양학문으로 개설되기 시작해 1990년대까지 69개 대학에 여성학이 개설될 만큼 호황기를 맞았다. 특히 1988년 이후 여학생회 요구로 남녀공학까지 늘어나, 여성학자들은 아카데미즘 보다는 민주화 운동의 발전과 그 맥을 같이 했다고 평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학위과정으로서 여성학 프로그램과 학과가 여러 대학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1992년 처음으로 이화여대에서 박사과정이 개설된 뒤 2000년대 중반까지 남녀공학에도 대학원 과정이 늘어났으나, 이후 연달아 폐지됐다.

본지 조사에 따르면 올해 별도 학과로 운영되는 여성학과는 없다. 사회학과 내의 전공 또는 연계전공, 대학원 과정 형태로 운영되는 대학들만 남았다. 여대 중에서는 이화여대와 숙명여대, 남녀공학에서는 서강대, 성균관대에 그친다.

여자대학도 여성학이 설 자리가 더 좁아지고 있다. 동덕여대는 지난해 여성학 전공과정을 폐지했다. 교육철학이 ‘여성 리더십’으로 옮겨간 지 오래고, 나아가 취업률 걱정에 남녀공학으로 전환까지 고민하는 게 현주소다.

이처럼 여성학이 급속히 사라진 이유에 대해 학자들은 학계 전반의 변화와 사회구조적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경희 연세대 공과대학 교수는 논문 ‘이공계 대학특성화의 기회와 제약(2006)’에서 “1995년 5.31개혁 정책 이후 대학정책이 시장친화적 효율성을 강화하면서 ‘아카데믹 캐피탈리즘(academic capitalism)’이 확대 심화됐고, 대학이 외부자금 확보를 위해 상업적 경쟁관계에 뛰어들고, 인문사회계열의 많은 학과들이 쉽게 통폐합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여성주의 작가 수잔 그리핀(Susan Griffin)은 여성학이 대학체제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로 △교과과정 발전에 있어 대학의 낮은 자율성 △학제 구조의 경직성 △여성학 제도화를 향한 여성운동의 지원 부족 △여성학에 대한 국가의 지원 부재 등을 꼽았다. 즉 우리나라는 정원이나 학과개설 측면에서 자율성이 낮아지고, 학사구조가 경직돼가고 있으며, 여성학에 대한 국가 지원이 없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교양필수 과목 지정해 젠더 인식 바로 해야=대학 교무처장들은 “정부와 대학이 의식적으로 여성학을 부흥시킨다면 좋겠지만, 이공계 중심 전공교육에 교양교육을 더하는 형태의 대학교육이 가속화 되는 상황”이라고 고개를 젓는 상황이다.

그러나 대학이 의지만 있다면 필수교양으로 지정할 수 있고, 교양대학 차원에서 강화할 수 있다는 게 공통적인 반응이다. 필수교양으로 지정하면 성별이나 전공과 상관없이 제대로 수업을 듣고 성적을 받아야만 졸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부 전공수업이나 교양수업으로 여성학 관련 과목은 대체로 많이 개설된 편이다. 본지 조사에 따르면 올해 주요대학 중 포스텍과 KAIST 등 이공계 중심 대학은 전무했고, 다른 대학에는 △여성학 △성과 사회 △여성학개론 △젠더와 역사 △젠더와 문학 등 여러 이름으로 개설돼 있다. 그러나 필수이수 과목으로 개설된 경우는 찾을 수 없었다. 사회학과 등 관련 학과의 전공필수 과목으로 두는 경우를 제외하면 다른 대학들은 전공선택 과목 또는 인문사회 분야의 교양선택 강의로 뒀다.

수요는 적다고 할 수 없다. 대학생들은 여성학 수업이 늘어나고 필수과목으로 운영될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표했다. 한림대 여학생 A씨는 “우리나라 남성들이 ‘페미니스트’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 관심도 없고 배우지도 않은 상태에서 막연히 불편하게 느끼는 경험이 쌓여서 여성혐오가 되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남녀 모두 페미니즘 강의를 듣고 여성운동 역시 피해자 중심에서 탈피해 동등하게 젠더 이슈를 바라보도록 유도하는 강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수도권 사립대에 재학 중인 한 남학생은 젠더 관련 교양 수업이 필수로 지정돼 늘어나야 한다는 의견은 같았으나 “이를 통해 여성들이 제대로 된 양성평등과 여성인권 신장을 주장하는 토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해 여전히 성평등 교육이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라고 인식하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여성학 수업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도 상당하다. 이나영 사회학과 교수는 그의 논문 ‘여성학의 위치성: 미완의 제도화와 기회구조의 변화(2011)’를 통해 여전히 여성학 강의는 강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개설학과나 주무자가 누구냐에 따라 여성학 수업 존립 자체가 불안정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또한 페미니즘을 전혀 공부하지 않은 학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맡는 경우, 여성주의 관점과 달리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지지하는 경우, 여성을 폄하하고 대상화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강의의 질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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