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 교수(본지 논설위원 / 경일대 교수)

현재 수사중인 대형 법조비리 사건, 가습기살균제 사건, 지하철 안전막을 고치던 19세 젊은이의 사망사고 소식 등을 연이어 접하며 문득 ‘안수정등(岸樹井藤)’의 위기에 처한 나그네를 떠올린다. 불가의 <불설비유경(佛說譬喩經)>에 나오는 안수정등 설화는 무명(無明)의 광야에서 사나운 코끼리에 쫓기다 생사의 우물로 피해 들어가 등나무넝쿨에 매달려 시시각각 조여오는 위험에 놓이지만, 그 위로 날아온 다섯 마리의 벌이 떨어뜨리는 꿀방울 즉 오욕락(五欲樂)에 정신이 팔려 위급한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리는 나그네 이야기다. 오욕에 취해 허송세월하지 말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라는 이 설법에 묘사된 주변 위기상황의 급박함은 지금 우리가 당면한 각종 위협요소의 그것과 흡사하다.

올해 1월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열린 제46차 세계경제포럼(WEF)에서 2020년까지 전 세계의 일자리 710만 개가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 200만 개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3D 프린팅, 가상현실(VR) 등의 신기술로 일자리 510만개가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예상에 다소의 오차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 삶의 양상을 바꿀 큰 변화가 위기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에게 닥칠 고난은 더욱 심각할 것 같다. 한국이 곧 직면할 인구절벽, 소비절벽의 위기는 지난 60년간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을 안길 것이라고 경종을 울리는 학자도 있다. 매출감소로 기업이 위축되고 바닥상권이 붕괴돼 노숙자가 넘쳐나는 극심한 경제난에 처하리란 것이다. 탄탄한 금융자산과 재정적인 여유를 가졌던 일본도 지난 20년간 저성장의 고초를 겪었다. 거품이 잔뜩 낀 우리 사회가 겪을 진통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경고가 과장이 아닐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이는 것은 요즈음 조선업계에 드리운 불황의 먹구름이 그 예고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사회가 마주하는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대학의 책무도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의 대학들은 이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너무도 허약해 보인다. 우선 대학의 건강을 저해하는 두 가지 독소부터 제거할 것을 제안한다.

무엇보다 입시지옥을 지탱하고 있는 지식전수형 반복학습에 의한 치열한 점수따기 경쟁의 낡은 틀을 과감히 깨뜨려야 한다. 최근 제조업의 생태계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는 메이커스(Makers)의 경우를 보자. 지식전수형 학습으로 지금의 성취를 이룬 기성세대들이 이런 진화의 흐름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등급 매기기 방식으로 한국 교육을 재단하기를 계속 고집한다면 우리의 미래에 더 이상의 희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음은 대학에 기생하는 부정비리를 척결하고 대학의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 대학이 부패의 숙주가 된다면 그 사회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마이클 존스턴 교수가 분류한 바의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가 이번 법조비리 사건에서도 그 흉한 모습을 드러냈다. 엘리트의 사회적 책임은 망각한 채 꿀맛에 대한 개인적 탐닉으로 빚어지는 부패는 그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다. 비리의 근저에 있는 이기적 탐욕은 각종 양극화 현상과도 맞닿아 있다. 비리가 척결되면 양극화도 완화되고, 악순환이 선순환으로 돌아선다. 위기의 시대에 대학이 그 공공성을 새롭게 가다듬어 우리 사회를 선순환으로 이끄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현실과 동떨어진 희망사항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해답이란 것이 멀리 어디엔가 숨겨져 있는 보물이기보다는 보물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20대 국회가 새로 출범했다. 우리의 대학교육을 새롭게 일으킬 방안에 대한 논의가 모두의 협력으로 진지하게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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