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홍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법학)

사회가 참으로 복잡해졌다. 누구나 교육을 받고 학교를 다니는데 대학구조개혁법안에 대한 입장이 이렇게 다른 것을 보면 교육문제도 전문가가 아니면 접근하기 힘든 영역이 된 듯하다. 대학구조개혁법을 논할 때에 쟁점은 이미 대학기관인증평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목적의 대학평가제도를 새로이 도입하는 부분이다. 즉 대학을 평가해서 D, E등급 평가를 받은 대학에 대해서 입학정원을 감축하거나 퇴출시키는 것이 소위 대학구조개혁의 핵심이다.

그런데 입학정원 강제 감축의 목적의 목적만으로는 모든 대학을 대상으로 정성평가방식을 포함한 평가를 정당화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대학 입장에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죽기 살기로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연구와 교육은 뒷전으로 밀리지 않을 수 없다. 필요하면 로비도 불사할 것이다. 이렇게 대학평가가 진행되면 빈대잡기 위해서 초가삼간을 불태우는 꼴이 될 것이다.

따라서 구조조정 목적의 대학평가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별개의 구조개혁목적을 추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들어온 것이 대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국가경쟁력 강화이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 역시 대학평가가 된다. 즉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대학들이 자구노력을 하게 될 것이고, 이런 과정을 통해 질 관리가 된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들은 이러한 가정이 현실화되기 힘든 조건에 있다. 교육여건이 개선되어야 질 관리가 가능한데 교육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평가지표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학의 질 관리를 위해서는 대학부실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대학 부실의 근본원인은 사립대학 위주의 고등교육체계에서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고등교육재정에 대한 공적 책임이 수반되어야 한다. 학생등록금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고등교육의 질 관리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전임교원 확보율 기준을 포함시키면 재정이 빈곤한 대학들은 비정년교원으로 이 기준을 맞출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학평가를 통해 '등급이 높은 대학 = 질 관리가 되는 대학', '등급이 낮은 대학 = 질 관리가 되지 않는 대학'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이는 질 관리가 아니라 등급매기기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립대학을 확충하든지 아니면 정부가 재정을 일정 정도 책임지는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의 육성이 전제되어야 교육여건이 개선된다. 그리고 이런 기반 하에서 질 관리를 넘어 질 향상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대학의 질 관리는 구조개혁법 통과를 위해서 잠시 빌려온 목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두고 논쟁하는 것은 시간낭비 말고는 논의의 실익이 전혀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고등교육의 질 관리는 임시변통이고 진짜 목적은 구조조정목적의 평가를 통해서 입학정원을 줄여 공급과잉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대학설립자유화정책의 실패라는 책임추궁에서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런 대학평가권을 통해 모든 대학을 쥐고 흔드는 대학통제로 갈 때 발생할 부작용이다.

대학이 국가권력이나 자본에 의하여 부당한 압력을 받게 되면 대학은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지식의 생산과 보급을 통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대학의 사명이다. 대학이 흔들리면 사회와 국가도 같이 흔들린다.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대학을 흔들었을 때 이는 너무나 큰 재앙을 초래할 것이다. 영국을 따라하지 말고, 영국사회가 처한 혼란과 불평등심화로부터 교훈을 얻길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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