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길자 본지 논설위원 /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교수

기초과학연구비가 내년에 증액된다고 한다. 그동안 기초과학연구비 지원 금액에 비해 가시적인 성과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있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근본 체력 증강을 위해서는 기초학문이 튼튼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불러온 결과라 매우 긍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인가 하는 방향성 모색이라 생각된다. 그동안 대부분의 국가 연구비 지원은 주로 대형 과제에 집중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름난 과학자들이 선두가 돼 수행하는 대형 과제에 연구비가 집중돼 있는 동안 상대적으로 젊은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은 축소돼 왔다. 2014년 통계에 의하면 정부의 R&D 투자액 14.5조 원 중 30% 정도가 기초연구에, 70% 정도가 시험개발과 응용연구에 투자됐다. 날로 치열해져가는 글로벌 경쟁 사회에서 국가의 미래 먹거리 창출에 필요한 대형 과제 지원, 산업화가 가능한 시험 개발과 응용 연구 지원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한 지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연구자들의 흥미나 재능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져 있다. 비록 아직 충분한 업적이 없는 젊은 연구자들이라 할지라도, 이들의 연구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산업화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즉, 지금은 개인적 연구로 보일지 몰라도 제도적인 지원 등이 뒷받침된다면 이것이 후에 신산업 영역을 창출하거나 기존의 산업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필자의 개인적 경험을 들어보자면, 특허 유지나 연구비의 부족으로 가능성 있는 연구 결과들이 사장되거나 아쉽게 종료돼 버리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1990년대 시작한 녹용연구에서 모유와 우유에 들어 있는 강글리시오드가 서로 다르다는 연구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 젊고 경험이 없었던 탓에 연구 결과를 특허로 내지 않았고, 이후 분유 제조 회사에서 이를 상용화해 제품을 출시하였다. 또한 조혈 면역에 관여하는 활성물질에 대한 공동 연구 후 이를 특허로 낸 적이 있으나 개인으로서 특허 유지비까지 부담하기가 힘들어 특허를 포기한 경험도 있다. 이 역시 그 이후에도 이를 지속적으로 연구하던 공동 연구자에 의해 벤처 회사에 기술을 이전, 곧 시판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각 연구자들이 적은 규모로 시행하는 연구들도 충분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다면 얼마든지 산업화를 기대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의 영역이 얼마나 다양한 지를 생각해보면, 대형 과제 몇 개가 이를 전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국가 먹거리를 창출하는 대형 과제는 그 자체로 필요성을 인정해주되, 다른 연구자들의 기초 연구에 대한 균형 있는 지원 역시 고려돼야 할 것이다. 일본은 대부분의 교수들이 일정 연구비를 정부에서 지원받기 때문에 개인 연구의 지속적인 수행이 가능하고, 이것이 결국 노벨상 수상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우리가 깊이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거칠게 말하면 목적 없는 투자가, 좀 더 명확하게 말하면 개인 연구자들에 대한 기초연구 지원이 보다 확대돼야 국가의 기초 체력 역시 효과적으로 증대될 수 있을 것이다. 큰 나무 하나도 필요하지만, 실제로 땅을 단단하게 받치는 것은 작지만 수많은 풀뿌리들이 얽혀야 하듯, 기초과학 지원 역시 대형 과제 지원과 개인 연구자 지원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기초과학 연구비 증액이라는 반가운 소식에 환영을 표하며, 본 연구비 지원 증액이 이후 국가의 미래에 보다 탄탄한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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