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성 제고 기대 한편으로 경직성·실효성 우려도

[한국대학신문 대학팀]헌법재판소에서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일부 조항을 상대로 제기된 헌법소원에서 합헌 판결이 나면서 대학에서는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일 것이라는 환영 목소리와, 민간영역을 과도하게 규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목소리가 엇갈렸다.

오는 9월 28일부로 실시됨에 따라 구체적으로 논문심사시 관행으로 지급하던 선물·금품 제공이 엄격히 제한되고, 대외 기관이나 언론인에 제공하던 명절 선물·접대비도 축소되는 등 청탁이 현저하게 줄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부정·비리 감시가 사회 또는 학내 구성원을 통제하는 도구로 활용되지는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사학 운영진도 의견 갈려=이대순 한국대학법인협의회장은 “일부 부정을 저지른 교육자가 있더라도 교원은 존중을 받고 권위가 서야 제대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데, 교단에 서있는 사람을 범죄자로 전제해둔다면 교육을 망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불쾌감을 표했다. 이 회장은 협의회 차원에서 사립학교 교직원 대상으로 한 조항은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국회 등 입법부에 지속적으로 전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사립대를 운영하고 있는 총장들의 의견은 갈렸다. A 사립대 총장은 이번 합헌 결정에 대해 “사립대 교직원까지 김영란 법을 시행하는 것은 시대적 상황에서 너무 경직되고 긴장된 것”이라고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익명을 요구한 이 총장은 “김영란법을 둘러싼 양쪽 입장을 살펴보면 한쪽은 ‘부정부패를 없애자’. 다른 한쪽은 ‘부정부패를 없애려다 사회가 경직돼 성장속도에 지장을 주는 것 아닌가’ 인데, 지금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현재 한국의 상황은 후자에 가깝다고 본다. 사립대 교직원까지 확대된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B대학 총장 역시 총론에서는 동의하나 각론에서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당장 9월 시행예정인데, 정치인이나 공무원, 대학교수 등과 일하기 위해 이해를 구하고 협조를 당부하기 위한 식사 자리가 부담스러워져 소통하고 교우하는 데 장애가 될 것 같다”며 “자주 찾는 한정식집이나 일식집만 따져봐도 1인당 비용이 3만원을 상회하니 현실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C대학 총장은 한 번 시행해볼 만 하다는 입장이다. 이 총장은 “세세한 논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정청탁을 없애기 위해 필요하다. 사립학교든 언론인이든 한번쯤 법 테두리에 들어가 관리를 받는다면 사회 투명성 제고에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대학은 이미 전체회의와 교수회의를 통해 김영란법 골자에 대해서 안내하고 취지에 맞춰 행동하자고 교육했다. 대학이든, 언론이든, 사립학교든 김영란법을 의식하게 되면 사회 전체가 투명해질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D대학 총장 역시 당장 대학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식사 값, 선물 등이 주요 쟁점 이슈인데 충분히 법 테두리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면서 “헌재에서도 합헌 결정을 내린 만큼 순응해야 한다. 향후 시행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으면 문제를 제기해 추후 개정, 수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논문심사·교수채용시 청탁 관행 척결 기대=교수사회에서는 크고 작은 청탁 관행이 사라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순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은 사학 법인과 교수사회에 고질적으로 퍼져있는 부정 비리를 뿌리 뽑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반겼다. 박 이사장은 “이미 나름 가이드라인을 정해 자정한 대학도 있지만, 석박사 학위 심사과정에서 교수들이 금품이나 향응 등을 관행이라고 당연시하고 제대로 지도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김영란법 제정을 계기로 교육과 연구학술 분야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향기 성신여대 교수(법학) 역시 “김영란 법 적용 금액 기준이 너무 낮다는 일각일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법을 시행하기도 전에 기준액을 바꿀 필요는 없다고 본다. 애초부터 손볼 게 아니라 법을 우선 시행하고 추후에 바뀌어야 할 부분은 수정하는게 좋겠다”며 “대학가에 긍정적인 영향이 미쳤으면 좋겠다. 대부분의 대학 교수나 교원들이 청렴하지만 이 법의 시행으로 일부에서라도 이뤄지던 비리가 줄어들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학원생들 역시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됐다는 반응이다. 대학원 학생회 관계자는 “교수들이 대학원생들에게 명품 선물이나 논문심사비 명목의 연구비 등을 받는 관례를 법 테두리 안에 묶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며 “법이 없었다면 피해를 당한 학생이 섣불리 나설 수 없는데, 법이 있으니 주장할 명목이 생기지 않나. 대학원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고 학생들의 부담감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논문심사시 외부 심사자의 거마비가 대학과 대학원생 중 누구의 부담으로 넘어갈 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외부심사자의 교통비와 식사대접비, 숙박비 명목으로 최소 10~30만원가량의 거마비를 관행으로 대학원생이 지급해왔기 때문이다.

다른 사립대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논문심사비 명목은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어느 정도 규격화가 돼 있어 이 부분을 건드릴 수는 없지만 문제는 관행으로 지급하는 거마비”라며 “당장 김영란법에 의해 불법요소가 되니 다행이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 있어도 이미 관행적으로 오랜 기간 유지돼 있었기에 자리 잡는 데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순준 사교련 이사장은 “외부 심사자 거마비와 관련, 많은 대학들이 제도적으로 받쳐주지 못한다”며 “논문심사비를 인상하거나 지원하는 등 현실화 방안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비리·부정 감시 '누가 어떻게' 쟁점 될까=김영란법 시행이 확실시됨에 따라 대외 공공기관과 산학협력 기업체,언론인을 대응하는 실무부서의 관행도 바뀔 전망이다. 한 사립대 홍보담당자는 “선물이나 접대에 있어 확실히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아마 홍보용 선물을 주더라도 언론인들이 받지 않을 것이고, 명절 선물도 적어지는 등 당분간 긴장감이 흐를 것 같다”고 말했으며, 다른 사립대 대외홍보담당자 역시 “대외적으로 발전기금 기탁자 접대비용, 타 기관 언론담당에 보내는 선물 등 단가를 줄여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결국 김영란법 위반 여부를 누가 어떻게 감시하는지도 추후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헌법을 전공한 한 사립대 교수는 “촌지 등은 자정작용이 일부 된 상태이고, 논문심사나 교수 채용시 비리도 범죄 행위로 각인된 상태이기 때문에 김영란 법이 권력층 눈 밖에 난 언론이나 학자 등 비판세력을 표적수사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우려도 있다”면서 “뮤지컬 티켓 두 장만 놓고 가도 과태료를 물고 인사상 해임이나 파면까지 당할 수 있으니 결국 이법으로 검·경찰 등 사법권이 더욱 세져 평등권 침해, 언론권 위축 등의 문제가 야기될지 모른다”고 경계했다.

법 시행과 함께 사립대 내 총장이 청탁방지담당관을 임명해야 하는 만큼 감시를 맡는 기구가 대학당국과 구성원 모두를 감시·경계하는 독립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순준 이사장은 “벌써 김영란법 자문으로 법조계 영향이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지 않나. 법이 아니라 자정작용이 필요한데, 교내 감시기구인 대학평의원회나 교수단체의 위상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자체적으로 학내 감사실을 둔다고 하더라도 학내 구성원을 감시하는 기구로 전락하지 못하도록, 자치기구가 학교당국을 함께 감시할 법적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은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2012년부터 추진해 지난해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공직자는 물론 민간에서도 사학교원, 언론인도 포함하고 있으며 식사접대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대외강연비 100만원 등 상한을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헌법재판소는 김영란법에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을 포함한다면 교육과 언론 자유가 위축될 것이라는 헌법소원을 28일 각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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