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억 (본지 논설위원/KAIST 교수)

대학들의 비전과 슬로건을 보면 대부분 세계, 전국 또는 지역 최고를 지향하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믿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철만 되면 대학평가 뉴스가 오른다. 세계, 아시아, 국내 순위를 매긴다. 평가를 주도하는 기관과 언론사도 많고 평가기준도 제각각이다. 정부는 각종 재정지원사업과 정원조정에 또다시 다양한 잣대를 들이댄다. 연말이면 전국 대학 및 학과 들은 수능성적으로 또다시 서열화 된다.

대학 평가와 비교가 대학에 자극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기준이 혼란스럽고 불합리하면 대학에 더 큰 혼란과 부작용만 커진다. 사실 다양한 대학을 몇 가지 기준만으로 점수화해 평가하기는 아주 어렵다. 무엇이 좋은 대학인가? 논문 수, 인용횟수, 학생 대 교수 비율, 외국인 교수 및 학생의 비율, 재정충실도, 정원 충족률, 취업률, 입학 커트라인 그 어떤 것도 대학의 본질과 가치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다.

대학은 왜 존재하는가? 캠브리지 대학은 세계 최고수준의 교육, 학습, 연구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미션으로 정하고 생각과 표현의 자유, 차별로부터의 자유를 핵심 가치로 표방하고 있다. 사실 대부분 대학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흔히 대학만큼 자유로운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에도 대학들은 왜 이토록 아직도 자유를 갈구하는가? 중세시절 종교의 질곡으로부터 겨우 탈출했더니 새로운 권능이 기다리고 있었다. 에리히 프롬은 근대인들에게서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 종교와 봉건적 정치권위로부터 쟁취한 그 좋은 자유로부터 오히려 도망가 파시즘 같은 국가권력에 종속되는지에 대해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자본주의 체제의 효율성 추구과정에서 인간과 개인이 소외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인본주의적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다.

오늘날 우리 대학들도 비슷한 상황에 있다. 정치권력에서 겨우 자유롭게 되었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다시 새로운 권능에 스스로 종속되고 있다. 대학을 효율성의 잣대로만 몰고 가면 종착역은 뻔하다. 대학에서 창의와 도전은 사라지고 대학의 본분과 가치를 잊어버리게 된다. 더 많은 학생, 더 많은 예산, 더 많은 연구비를 확보하기에 급급해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 대학들이 망각하는 본분이 있다. 바로 제대로 된 교육에 충실 하는 것이다. 많은 대학들이 연구중심 대학을 표방하고 있다. 연구비 많이 따오고 논문 양산하는 데에만 혈안이 돼 있다. 대학행정도 연구 간접비 확보와 정부의 예산지원사업 확보에 급급하다. 대학이 연구소인가 논문 생산기지인가? GDP대비 연구비 투자는 세계 1위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 연구는 정말 세계 최고 수준에 곧 도달할 것인가? 그리도 갈망하는 진짜 노벨상을 조만간 받을 것인가? 창의적 기술이 개발돼 혁신적인 비즈니스와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창출될 것인가? 아마도 쉽지 않을 듯하다. 25년 전 처음 부임할 때 대학 경영진으로부터 듣던 말이 있다. 교육이 중요하니 여기에 주력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승진 심사 등에서는 결국 논문 실적이 결정적이다. 소위 연구중심 대학에서 교수들은 수업 준비, 학생지도를 포함한 교육에 몇 퍼센트의 시간을 사용하는가? 우리 대학의 체제나 수업방식은 산업, 경제, 사회가 갈구하고 있는 창의성, 문제해결능력, 커뮤니케이션, 리더십을 제대로 교육하고 있는가?

정부와 사회의 문제만은 아니다. 대학행정과 교수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대학에 오는 학생들은 진정 공부를 원하는가, 학위와 브랜드를 탐하는가, 취업을 위한 자격과 인증을 받기를 원하는가? 호기심이 넘치는가, 성적 욕심이 앞서는가? 오늘날 우리 대학들은 효율성만 강조해 인간의 가치를 소홀히 한 근대 자본주의의 전철을 밝고 있는 것이 아닌지 냉정하게 생각해보고 본분인 교육 중심으로 혁신을 시도할 때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대학의 자유와 자율, 창의와 혁신 보다는 굴종과 종속의 종착역이다. 결국 대학이 사라질 것이다. 흔히 걱정하는 온라인 교육과 디지털 학습 때문이 아니라 본분을 잊어버려 대학 스스로 존재를 지우게 될 것이다. 진정한 선진대학은 교육의 본분에 충실한 대학이다. 이제 이 본분을 회복할 르네상스가 필요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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