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대응-학계 화합' 절실

"여러가지 복잡한 변수들이 얽혀있는 골치 아픈 문제가 돼버렸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한반도 고대사를 '왜곡'하려는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은 '과열흥분'과 관련 인사들의 '분란' 속에 효율적인 대응을 못하고 있는 양상이다. 게다가 정부가 학술문제에 개입하게 된 뒤 정책과 학술의 효율적인 접목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의식있는 인사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동북아재단 설립과정 =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부 산하에 '고구려연구재단'이 2004년 4월 설립됐다. 고구려재단은 정부 예산의 지원을 받긴 했으나 주로 학계 인사들이 주축이 돼 연구기관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다 지난해 3월 노무현 대통령은 역사와 독도 문제를 전담하는 기구를 설치할 것을 지시했고 그 다음달에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바른역사정립기획단'이 출범했다. 기획단은 청와대 직속기구로 공직자들 위주로 진용이 짜여졌다. 이후 정부는 중국의 동북공정은 물론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문제 등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동북아역사재단' 설립을 추진했다. 동북아재단은 정식 설립 절차를 밟아오다 지난 5월 국회에서 설치 법안이 통과됐고 9월 1일자로 동북아역사재단 초대 이사장에 서울대학교 김용덕 교수가 임명됐다. 고구려재단과 바른역사기획단은 동북아재단 설립을 계기로 통합 흡수됐다. 현재 동북아재단은 재단등기를 마치지 못한 상황이다. 최근 논란이 일자 재단 측은 "등기를 서두르겠다"고 밝히고 있다. 오는 28일 공식 출범식이 예정돼있다. ◆엇갈리는 주장= 동북아재단에 근무하는 관료출신 인사는 과거 고구려재단에서 일했던 인사들이 정부와 동북아재단을 비판하는데 대해 매우 불쾌해하고 있다. 1년에 예산을 60억 원이나 쓰며 활동한 고구려재단이 그동안 '제대로 된'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수준있는 연구실적을 올려 권위있는 국내외 학술지에 실리는 등 학술적 성과를 기대했지만 지난 2년간 고구려재단의 활동은 기대와 너무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고구려재단측 인사들은 지난 2년간 60권이 넘는 책을 냈다면서 실적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은 또 고구려재단에 몸담았던 연구인력 20명이 동북아재단에 흡수되는 과정에서 10명만 연구직에 배속되고 나머지는 엉뚱하게 행정직으로 갔다며 '문제있는 인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동북아재단 측은 "재단의 기능과 업무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재단은 고구려재단에 근무하던 연구원 18명과 행정직.기능직 직원 9명 전원이 동북아재단에 채용됐으며 연구원 18명 가운데 10명이 중국역사 전담부서인 제2연구실로, 나머지 인원은 전략기획실과 교류홍보실로 배치됐다고 설명했다. 또 연구원들을 제2연구실 외의 부서에도 배치한 이유는 동북아재단이 순수 학문연구 뿐 아니라 전략.정책 수립, 대외활동 업무까지 동시에 전개하는 전략적 사업단으로서 더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조직으로 구성할 필요성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책은 없는가= 관련 인사들의 감정대립 양상으로까지 비화되는 현 상황을 하루빨리 수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먼저 고구려재단의 연구실적에 대한 '평가'를 객관적으로 진행해서 문제가 과연 있었는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학계의 한 인사는 "고구려재단에서 연구해 발표한 논문 등이 학계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평가해야 한다"면서 "어차피 동북공정 등은 정부가 나서야 할 부분도 있지만 국제 학술계에서 각국의 연구수준이 어떻게 평가받는지가 관건이 아니냐"고 말했다. 따라서 권위있는 학술지에 실린 실적 등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또 이미 동북아재단을 출범시키기로 했다면 신속하게 절차를 밟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학계전문가들은 주문했다. 아울러 학계간 갈등, 나아가 학계 일부 인사와 관료들간 갈등을 야기한 정부의 대응도 면밀하게 점검해 고칠 것은 과감하게 고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학계의 한 인사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내부의 공감대 형성"이라면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일부는 정부를 무리하게 비판하는 소재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자제하고 냉정하게 학술수준을 제고하고 효율적인 외교적 대응을 해야 동북공정이든, 일본의 역사왜곡이든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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