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보다 학과명칭 먼저 고민…"준비도 없이 시류에 편승" 비판도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대학들이 가상현실이나 드론 등 미래산업을 확보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가운데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그간 대학들이 사회 세태를 쫓아 학과를 개설했다가 슬그머니 폐지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이나 드론을 실제 학과개편에 반영한 것은 현재로선 2개 대학이다. 많은 대학들은 관련 기업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거나 대학 내 비교과과정으로 강의를 개설해 가상현실과 드론 등을 도입하기 위한 이해득실을 따져보고 있다. 두 분야 모두 4차 산업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어 대학가의 관심이 뜨겁다.

그러나 일부 교수들은 이런 트렌드에 따른 대학가의 학과개편이 학생모집을 위한 간판 바꾸기 아니냐며 불신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현재 드론 교육과정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전남지역 한 사립대 A 교수는 “드론을 교육한다고 해도 이미 외국기업들이 기술을 선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교수진으로 드론을 얼마나 잘 연구하고 교육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학생모집을 한다해도 제대로 교육을 시킬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인근 또 다른 사립대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이 대학 B 교수는 “가상현실에 기반한 연구실조차 조성이 안됐는데 대학본부에서는 가상현실 학과를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논의가 오가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가 가상현실을 띄워주니 따라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고 털어놨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일부 대학의 경우 새로운 학과의 교육과정이나 구성보다 학과명을 먼저 고민한다는 것이다. B 교수는 “가상현실을 한글로 표기할지, 영어로 표기할지를 두고 상당히 긴 시간 논의했다. 그럴듯한 ‘간판’을 만들어야 학생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가의 이 같은 ‘간판 바꾸기’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최근까지 대학가를 휩쓸었던 ‘융합’이 대표적이다. 교육부의 산업연계교육활성화선도대학(프라임)사업이나 지난해 대학특성화(CK)사업 당시 선정된 사업단의 경우 내용은 학과통폐합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융합’을 사업단 명에 포함시킨 경우가 많았다.

융합과 함께 대학의 학과명칭이나 사업단 이름에 빠지지 않았던 것이 ‘바이오·생명’이다. 바이오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해 관련 산업이 미래산업을 주도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면서 대학가 전반에 ‘바이오·생명’ 학과가 널리 퍼졌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바이오·생명 분야의 성장이 둔화되자 일부 대학들은 슬그머니 관련 학과를 폐지했다. 보다 거슬러 올라가면 북한 관련 학과들의 쇠퇴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중후반 대북 긴장감 해소와 함께 문을 연 북한학과들은 2000년대를 넘어가며 다시 대북 긴장감이 고조되고 교육부가 취업 중심의 고등교육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잇달아 폐과되기도 했다. 

대학의 한 교수는 "대학의 전공 분야가 산업사회와 사회변혁에 맞춰 다양해질 수 있겠지만 장기적인 비전이나 대학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유행처럼 시류에 편승해서 전공을 개설하거나 폐지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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