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 교수(본지 논설위원 / 경일대 교수)

매일 쏟아지는 역겨운 비리와 추한 어거지 소식에 역시 헬조선인가 하는 절망감을 이기기가 어렵다. 그런데 리우에서 날아온 금빛 화살이 한 가닥 희망을 일깨웠다. 전종목을 석권한 한국양궁은 그 자체로도 큰일을 해낸 것이지만, 우리의 백년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할 만한 강력한 메시지를 선사했다.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극복하고 ‘한국양궁 본받기’가 가능할는지 의문이지만, 우선 그 메시지의 요체를 짚어 본다.

한국양궁이 준 통렬한 충고의 하나는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의 중요성’이다. 10개월 내외의 기간에 수천 발의 화살로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절차는 선수들의 피를 말리는 고난의 길이지만 아무도 불만을 갖지 않는다. 국가대표가 되려면 누구나 거쳐야하는 투명하고 공정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국위선양의 선봉에 선 한국양궁의 30년 위업은 이런 절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의 교육은 어떤가. 정답만 중요할 뿐, 과정은 무시되기가 일쑤다. 이와 같은 교육에 순치된 학생들이 사회로 진출하고, 일부는 지도자가 된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많은 문제의 근저에는 ‘절차의 중요성’에 대한 무지와 무감각이 자리하고 있다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이화여대 사태만 해도 그렇다. 이 사태를 읽는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소모적 갈등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절차 경시’의 고질에 크게 기인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후의 교육문제, 그 해답부터는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서 찾아야 한다. 대학구조개혁에 얽힌 갖가지 문제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교육의 기본정신’ 문제를 겨냥한 조언이다. 한국교육과 한국양궁의 외형은 똑같이 경쟁의 연속으로 보이지만 둘은 닮은 듯 다르다. 지식 주입을 통한 학생들 줄 세우기에 여념 없는 우리 교육의 결과는 어떤가. 최고 엘리트 코스를 거쳐 지도층의 위치에 선 적잖은 인물들이 보여준 악취 풍기는 탐욕의 행태가 한국교육 문제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이 번연함에도 교육부의 한 정책기획관이 ‘신분제 공고화’의 소망을 서슴없이 밝힌 어처구니없는 일도 그 원인을 우리 교육에서 찾지 않을 수 없다. 대한양궁협회는 대표선수들 개개인의 약점 보완을 위해 맞춤형 훈련을 한다고 한다. 선수·지도자·후원자가 공유하고 있는 기본정신은 위계질서나 갑을관계가 아니라 더불어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협력’인 것으로 보인다. 선수들이 이기적인 경쟁으로 줄 설 일은 없다.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이 있을 뿐이다. 값진 성과는 그 결과다. 교육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정신, 우리 양궁이 말해주고 있다.

한국양궁은 한국교육이 국민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지 묻고 있다. 물론 한국양궁도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킨 적이 있다. 메달 이야기가 아니다. 보도된 바와 같이 2011년 양궁장비를 둘러싸고 협회관계자들과 메달리스트까지 연루된 금품비리 사건이 있었다. 한국양궁의 초대형 위기였다. 협회는 ‘리베이트 업체와의 거래금지규정 제정’ ‘연루된 지도자들 자격정지’ 등의 단호한 조치로 조직을 새롭게 가다듬고 신뢰를 회복해 오늘에 이르렀다. 한국교육은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교육을 인질로 한 사리사욕 추구의 비리재단이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 한 신뢰회복은 무망하다고 봐야 한다. 우리 사회를 불신과 절망으로 몰아가는 비리, 교육계에서부터 척결해야 한다. 신뢰받는 건강한 조직이 누리는 기쁨을 한국양궁이 증언하고 있다.

세계 산업의 지형도를 바꿀 제4차 산업혁명의 전조가 심상치 않다. 미래를 대비하는 최상의 방책은 교육이다. 국제양궁협회의 견제성 규정개정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열린 마음으로 창의적 교육훈련법을 개척하고 있는 한국양궁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이를 거울삼아 한국교육도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변혁을 이뤄내기를 희망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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