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창 (본지 논설위원 /서울대 교수)

대학의 선생으로서 가끔 물음을 던진다. 우리 학생들은 얼마나 건강한가? 신체적 건강이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 건강을 묻는 것이다. 최근 충격을 준 모 대학 의대 남학생들의 집단 성폭행과 대학 단톡방에서 확인된 남학생들 간의 대화는 아들 둔 학부모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모두 세계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 최고의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행실이다. 보도되는 사례들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란 추측은 대학 선생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이 같은 사례들은 요즘 대학 청년들이 지닌 인성 수준을 드러낸다. 치기 어리고 혈기 넘치는 극소수 어른 아이들의 순간적 일탈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도가 너무 심하고 빈도가 너무 일상적이다. 우리 젊은이들은 대학이라는 큰 배움터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우고 있단 말인가? 졸업과 동시에 학생을 빚쟁이로 만들 정도의 비싼 등록금까지 받아가면서 우리의 대학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단 말인가?

대학이라고 핑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입시 위주의 삭막한 중고등학교 교육을 탓하고, 이미 망가져버린 사회를 힐난한다. 인성의 문제는 가정과 사회 그리고 학생개개인의 문제라고 강변한다. 대학은 다 자란 성인을 대상으로 “이것은 옳다/그르다, 좋다/나쁘다, 선이다/악이다”라고 정해서 일러주는 곳이 아니라고 한다. 대학은 정답이 있는 작은 배움이 아니라 열려있는 답을 찾는 ‘큰 배움’을 추구하는 지식의 전당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나 인성은 작은 배움이 아니다. 인성은 배움 중에서도 가장 큰 배움이다. 훌륭한 진리를 아무리 잘 배워도 그 진리를 올바로 사용하는 인성이 그릇되면 아무 소용없다. 선현들은 이렇게 조언했다. ‘능력과 인성, 둘 모두가 중요하다. 만약 하나만을 택해야 한다면, 후자를 택하라.’ 대학에서는 인성형성이 강조돼야만 한다. 대학은 삶과 일을 준비시키는 곳이며 사람됨이라는 공통기반으로 받쳐지지 않는 삶과 일이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대학에서의 인성교육은 어떻게 실천되어야 하는가? 반드시 피해야 하는 방식이 있다. 강의실에서 인성을 내용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이런 인성교육은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이미 실패로 판명됐다. 인성은 사회적 맥락에서의 실제 행동을 눈으로 보고 따라하고 반복함으로써 길러진다. 4년의 재학 시간 동안 강의실이 아니라 캠퍼스 전역에서 인성이 실제로 발휘되는 장면을 목도하고 스스로 실연함으로써 함양된다.

가장 효과적인 기회와 환경은 스포츠 동아리 활동이다. 축구, 농구, 수영, 배드민턴, 댄스스포츠 등 운동동아리는 하나의 사회적 환경을 제공한다. 학과의 구분 없이 수 십 명의 회원들이 함께 생활하며 리더인 주장이 있고 각자의 맡은바 역할이 있는 팀원이 있다. 일주일에 10시간 이상 함께 연습하며 시합 준비기간에는 합숙도 한다. 자신의 포지션을 충실히 익혀 후보에서 주전으로 옮아가고 상대팀과 시합을 거듭하면서 협동, 인내, 용기, 희생, 봉사, 의리, 배려와 같은 사람됨의 성품들을 체득해낸다.

스포츠 동아리는 학생들이 재학 기간 동안 한 가지 활동을 가장 오랫동안 체험하는 곳이다. 강의는 아무리 길어도 두 학기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스포츠클럽은 1년 365일 내내 운영된다.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인성이 형성될 수 있는 곳은 스포츠 동아리가 유력한 이유다. 우리 청년들이 전심전력을 다해 몸을 부딪치며 땀을 흘리고 함께 샤워를 하고 웃음과 눈물을 함께 하면서 각자의 사람됨을 지속적으로 가꾸어나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Mens Sana in Corpore Sano”(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이천여 년 전 유베날리우스가 로마의 젊은이에게 주었던 이 금언은 이제, 여기, 오늘의 한국 대학생에게 더욱 절실한 조언이다. 최근의 행복 연구는 십대 때 주기적으로 신체활동과 스포츠클럽활동을 경험한 청소년들이 장년과 노년이 되었을 때 건강한 생활은 물론 만족도와 행복감이 더 높은 삶을 더 누리고 있다고 밝혀냈다. 영국, 미국, 일본 등 선진국 리더들은 유년기부터 대학 때까지 줄곧 운동부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던 이들이다.

우리 대학생들이 대한민국을 세계 제일의 국가로 우뚝 세울 훌륭한 비전과 건전한 정신을 지닐 수 있도록 만드는 건강한 신체는 어디에서 길러지는가? 그곳은 강의실보다도 운동장이다. 실험실보다도 체육관이다. 대학들이여, 스포츠동아리를 대학생을 위한 인성의 교육장으로 적극 육성하자.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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