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 / 뮤지컬 평론가)

한 달 전쯤 저녁 자리에서 9월 28일을 전후로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에 관한 금지법)’ 때문이다. 송년회는 잘 마쳤냐는 인사도 들었다. 법이 발효되기 전에 올해 연말모임을 미리 갖는 것이 어떠냐는 농반진반 우스갯소리였다.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분명 법의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이른바 ‘관행’이라 불리며 당연시되던 우리 사회의 여러 폐단들을 다시 돌아보고 점검하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새롭고 신선하다. 하지만 동전에 양면이 있는 것처럼 고민과 우려도 동시에 불거져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상황과 현실에 맞지 않는 천편일률적인 법 해석과 적용이 애초의 법 취지나 의도를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그렇다. 김영란 전 대법관도 언급했던 것처럼, 법 적용에 있어 다양한 상황과 현실이 고려돼야 되지만 아직 주무부처나 국민권익위원회에서는 명확한 답변이나 기준을 제시하지 못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3·5·10이 뭐가 그리 어렵냐’는 취지의 인터넷 댓글들도 많다. “내가 먹고 쓰는 것은 내 돈으로 해결하자”라는 의미에서 더치페이법이라 불리면 어떠냐는 의견도 있다. 옳은 지적이고 개인적으로도 환영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3·5·10’이 만사형통의 만능키는 아니라는 점이다. 감성적인 부분에서의 법 적용이 특히 그렇다. 학생들로부터는 캔 커피도 받으면 안 된다더니, 정말 발효 첫날 최초의 신고사례는 대학가 풍경이 차지했다. 공강 시간이 모자라 점심을 굶는 학생들이 안쓰러워 피자를 시켜 함께 먹으며 강의를 했더니, 그것도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해주는 사람도 있다. 학기말이면 학생들이 강의 평가를 하니 교수가 사준 점심은 부정청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정말 누가 이 문제로 고발이라도 해서 공론화됐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소속기관에 누를 끼칠 수 있다는 양벌 규정에 결국 의기소침해지고 만다. 선례가 되지 않도록 복지부동(伏地不動)하는 게 현명하다는 법조인들의 애정어린 충고에는 그저 쓴웃음만 짓게 된다.

그나마 이런 사례는 단순한 고민거리다. 아예 진퇴양난의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교수로 있으며 뮤지컬 분야의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가 그렇다. 평론활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거니와 당장 뮤지컬 관련 수상식 심사도 그만둬야 한다. 문의했더니 기고를 위한 프레스 티켓은 5만원 이하만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공에 애정이 많고 봉사정신으로 임한다 해도 일 년에 160여편의 달하는 뮤지컬을 개인적으로 감당해낼 재간은 없다.

뮤지컬 티켓은 대부분 10만원, 심지어 대극장 공연은 15만원 안팎이어서 프레스 티켓의 대상도 못되니, 얼추 계산해 봐도 수천만원의 비용을 사비로 지불해야 비로소 심사작을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요즘엔 중복 출연도 많아 주인공을 서너명이 돌아가며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한 번 관람으로는 적절한 연기부문의 수상자를 가려낼 방도조차 없다. 관련 기자나 평론가들은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경제적인 손해를 감내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셈이다. 프레스 티켓과 초대권을 구분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다. 평론이나 평가 없이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라는 것은 버팀목이 없는 건물을 세우라는 것에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비단 문화산업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법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단호한 법 적용 못지않게,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법의 운용도 뒤따라야 한다. 더 큰 혼란이 가중되기 전에 적절한 기준의 확립이 시급하다. 예외조항에 대한 실효적이고 구체적인 연구와 적용이 가능한 빨리 뒤따라야 한다.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도록 하되 부정은 방지할 수 있는 잣대의 개발과 적용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나친 규제가 산업 전반을 위축시키는 칠링 이팩트(chilling effect)를 피해가기 힘들다. ‘김영란법’이 프로크라테스의 침대가 돼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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