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성(본지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교수)

일본이 올해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매년 이맘때면 우리나라 메스컴은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소식을 전하며 우리는 언제나 수상자를 배출할 것인가 하는 자조 섞인 목소리 내곤 했다. 올해는 이러한 자조의 소리보다 일본의 비결을 분석하는 기사가 늘었다. 그동안 학계에서 많이 나오던 ‘오랜 동안 기초연구에 투자한 결실’이라는 소리가 올해도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 조금 더 설득력 있는 것은 일본의 기초과학 연구가 이미 19세기 말 유럽과 함께 시작했다는 얘기인 듯하다. 그렇게 오래 전에 시작된 연구의 풍토가 그 사람들에서 강한 장인정신과 아우러져 좋은 연구 전통으로 계속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 학계에서의 진정한 연구는 언제 시작됐을까?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연구 분위기가 뿌리내린 때 말이다. 필자는 1990년 이후라고 생각한다. 80년대 초, 필자를 포함한 많은 석사들이 그 당시 불어온 첨단과학의 바람을 조금씩 맛보면서 ‘과학적 진실의 위대함과 멋짐’을 느끼고 대거 유학을 떠났다. 그들이 학위를 하고 포스트닥 수련을 마치고 들어오기 시작한 시점이 이때다. 1995년도 중반부터 국제 학술지에 우리 이름의 저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도 훌륭한 선배학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공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저 국내 학술지들이 peer review의 개념도 모르고 논문들을 발표하는 정도였다. 그런 학술지를 읽고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없었기에 학계의 연구풍토라는 것이 정착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의 과학연구의 역사는 이제 막 20년을 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1세대 학자들이 유학에서 돌아와 학교와 연구소에 자리를 잡았지만, 이들의 연구는 태반이 외국에서 하던 연구의 연장이었다. 즉 자신만의 독창적인 연구가 아닌 이미 외국 교수가 발견한 현상들에 대한 후속연구인 것이다. 여기서 노벨상을 받을 만한 독창적인 발견이 나오려면 이 1세대들과 그들에 의해 배출된 2세대 학자들이 국내에서 만든 발견에 기초해 독창적인 연구를 하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노벨상이 나올만한 시간이 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물론 해외에서 연구수련 중 뛰어난 발견을 하고 귀국해서 그 분야를 이끌고 있는 연구자들이 없진 않지만, 여전히 그 발견자체에 대한 크레딧을 인정받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박사들이 해외 수련을 쌓고 돌아 온 다음도 우리나라와 일본은 큰 차이가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은 한명의 교수 아래 여러 명의 부교수와 조교수, 대학원생들이 소속돼 있다. 교수가 연구실(실험실)을 운영하고 그가 펼쳐준 우산아래 부교수와 조교수들은 연구비수주와 강의에서의 커다란 부담 없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다. 외국에서의 짧은 수련 후 귀국해 안정된 연구를 할 수 있는 이유다. 교수도 이들 고급 연구 인력을 활용해 자신의 연구에서 깊이를 추구해간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석사부터 박사가 될 때까지 전력을 투구해 연구교육을 시켜서 내보낼 때에 이르러 겨우 1편의 경쟁력이 조금 있는 논문을 만들어낸다. 지금의 국제적 경쟁력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기특한 일이다. 교수 개개인이 학문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자는 우리 체제를 선호하지만, 우리 학계의 현실에서 발생하는 적지 않은 문제로 인해 이 체제가 갖게 되는 한계는 어쩌면 노벨상 수상 시기를 더 늦출 만큼 큰 것인지도 모른다.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교수들이 연구비 수주와 강의에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점이다. 연구를 좀 한다하는 교수라면 시간의 3분의 1은 연구비 계획서에, 3분의 1은 강의에, 나머지 3분의 1은 논문 쓰는데 투입하고 있다. 1년에 5개 연구계획서를 쓰기도 한다. 또 미국에서 교육위주 대학을 제외한 대학의 교수들은 1년에 15시간 정도 강의한다고 치면 우리는 한주에 15시간 강의를 한다. 이는 결국 연구 2세대를 키워내는 일 (소위 실험실 관리)의 질적 하락을 야기한다. 무엇보다 대학원생 연구 지도를 위한 시간을 낼 수가 없는 것이다. 당장은 괜찮아 보여도 점차 연구경쟁력의 감소가 발생된다.

우리 교수체제를 일본식으로 바꾸자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노벨상을 운운하기 위해서는 연구가 포스트닥 중심으로 이뤄지고, 또한 그들이 안정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의 획기적인 확대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수들의 강의부담이 크게 줄어야 한다. 이런 것이 이뤄져서 연구 경쟁력의 저변이 확대되지 않는다면 노벨상 수상은 다음 세대 학자들에 의해서도 가능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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