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섭 건국대 홍보실장

“학생들이 대기업만 선호한다.” “도전정신이 부족하다.” “눈높이가 너무 높다.” “대학교육이 산업현장과 맞지 않다.” “채용 후 재교육을 해야 한다.” 청년실업, 특히 대졸자 취업 문제가 이슈화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말들이다. 청년들의 해외 일자리 진출을 독려하는 대통령의 언급에서도, 청년실업 문제를 다루는 정부 대책에서도, ‘취업 낭인’을 걱정하는 신문의 칼럼에서도 어김없이 ‘대학 교육 탓’과 ‘학생 눈높이 탓’이 등장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취업 빙하기’는 대학교육의 총체적 부실과 도전정신이 부족한 대학생들의 대기업 선호 문제로 귀결돼가고 있다. 취업난은 분명히 경제 문제인데 교육문제로 프레임이 바뀌었다. 대졸자 취업 관련 이슈를 경제부 기자나 고용노동 분야 기자보다 교육 담당 기자가 더욱 관심을 갖고 기사를 쓴다. 청년실업의 책임을 기획재정부나 고용노동부, 산업자원부 등 경제 컨트롤 타워가 아닌 교육부와 대학들이 덮어쓴 모양새가 됐다. 그러다 보니 정작 기업과 산업을 살려 일자리를 늘리고,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게 경제 구조와 기업 창업 생태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청년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일은 정작 뒤로 밀려나있다.

진단이 잘못되다 보니 해법도 산으로 가고 있다. 대학교육이 잘못됐다는 ‘대학 탓’에 이름조차 희귀한 산업친화형 현장 실무 학과를 만드느라 대학 사회가 법석이다. 학생들의 수요와는 무관하게 중소기업 초청 취업박람회가 열리고, 실무 인턴십이 유행이다. 일자리가 부족한데 정부 예산이 기업을 살려 새 일자리를 만드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찾는 대학생의 현장 실무 역량을 높이는데 투자되고 있다. 무언가 단추가 잘못 끼워져 가고 있다.

사람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중소기업이 많은데 대학생들이 취업을 하지 않고 졸업을 미루는 ‘일자리 미스매칭’이 비단 우리 대학생들의 눈높이 탓일까. 캠퍼스에서 만나는 요즘 대학생들은 중요한 ‘경험치’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대학생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삼촌이, 그리고 큰 형님이 중소기업, 벤처기업, 금융사에 다니다 멀게는 외환위기, 가깝게는 최근의 제조업 부진 등의 여파로 회사가 문을 닫거나 구조조정을 당해 실업자가 되고 치킨집 등 자영업을 하다 폐업하는 어려움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은 자녀 세대들이다. 지금도 대기업 독식 경제 구조 앞에서 무너지는 중소기업과 좌절하는 벤처기업이 속출하고 창업 성공 신화가 부족한 경제 구조 속에서 그들에게 ‘대기업만 고집하지 말고 눈높이를 낮춰 벤처기업을 입사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벤처에서 출발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며 성공신화를 쓴 기업이 다섯 손가락에도 못 꼽을 정도로 대기업 집중 경제·재벌 독식 사회로 흘러온 우리의 경제현실에서 대학생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강요한다고 취업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주변의 대학생이 중소기업에 입사 시험을 보러가면 지금도 ‘왜 거기를 가느냐’고 눈총을 주는 현실에서 학생 탓만 할 수 있을까. 어른들은 그걸 모른다.

정부와 어른들은 그들에게 ‘대기업 공기업만 선호하지 말라’고 하기 이전에 성공하는 벤처기업, 대기업 공기업 부럽지 않은 급여 많고 복지 탄탄한 중소기업을 많이 만들어 일자리를 펼쳐주는 것이 먼저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당장 실현되기 어려울 지라도 벤처기업으로 성공하는 신화를 더 많이 만들고, 실패의 두려움 없이 창업할 수 있도록 기업 생태계와 경제구조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먼저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은 스스로 창업하고 알짜 벤처기업에 취업하고 해외로 나갈 것이다. 대학을 ‘동네 북’처럼 팰 것이 아니라, 창업이 식은 죽 먹기인 사회, 벤처 성공신화가 많은 경제, 혁신기업이 대접받는 산업 생태계로 전환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순서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