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천(본지 논설위원 /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고종 때 미국을 시찰하고 돌아온 홍영식은 “미국에서는 왕을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이라고 부르더라”고 보고했다. 당대의 개화파였지만, 군주정과 의회정치를 분간하지 못했던 탓이다. 미국의 대통령은 군주가 아니라 의회에서 정해지는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임을 보지 못한 것이다.

해방이 되고 민주공화국 헌법이 시행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의회의 기능에 대해 불신이 팽배하다. 수백 명의 의원들이 모여서 집단의사를 형성하는 역량이 성숙하지 못한 때문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다양한 의견들이 분출했다가 논쟁을 통해 일정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참아내는 인내심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수 십 년의 독재를 겪어오면서 독재에 대한 반감은 매우 커졌지만, 여전히 정치현실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개헌론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정작 개헌의 내용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는 빠진 채, 피상적 구호들만이 나돌아 다닌다. 보도에 따르면,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정치인 가운데 다수는 이원집정제를 선호하는 모양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의원내각제는 제2공화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과 국무총리 사이에 권력 투쟁으로 흐를 위험이 있으니 이원집정제가 바람직하다. 하지만 대통령과 국무총리 사이에 권력 투쟁은 어떤 제도 아래서도 발생할 수 있다. 대통령제에서도 최규하 대통령은 실권을 행사하지 못했고, 국무총리는커녕 단지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이 실권을 행사했었다. 이원집정제를 헌법에 정해놓는 것만으로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권한을 사이좋게 나눠서 행사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치는 것이 목적이라면 제도의 선택은 의원내각제여야 논리적이다. 행정권의 소재가 의회 내부의 세력분포에 의존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의회 과반수의 지지를 확보한 행정권은 안정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행정권을 지지하던 의회 과반수 동맹이 어떤 이유 때문이든지 무너지게 된다면, 새로운 선거를 통해서 새로운 과반수의 소재를 찾게 된다.

한국인 대다수는 의원내각제는 정국불안정을 연상하게끔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편견일 뿐이다. 오늘날 세계의 200여개 나라 중에서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선도하고 있는 OECD 국가 대부분은 의원내각제를 성공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 중 어떤 나라도 처음부터 의회의 기능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의회 내부의 토론 규칙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확립된 덕분이다.

의회가 생산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 요소는 행정권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관해 진상을 파악하는 역량이다. 모든 행정행위에 관해서 의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조사권을 발동하고, 그랬을 때 행정부는 성심껏 소명해야 한다는 원칙이 필수적이다. 잘못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은폐를 시도하다가, 더 이상 은폐할 수 없게 되면 사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퇴 여부는 나중 일이고 먼저 진상 규명이 중시되어야 차후에 같은 잘못의 반복이 방지될 수 있다.

개헌은 오로지 이와 같은 방향을 지향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 이런 의미가 살아나려면 조문의 개정에 더해서, 의회 내부의 의사진행 절차가 숙성될 때까지 상당한 기간 동안 진지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반면에, 현재의 개헌논의는 알맹이는 빠지고 껍데기 수준의 이합집산으로 흘러갈 위험이 매우 크다. 몇몇 정치세력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지점에서 명분과 실상이 따로 노는 담합으로 그칠 위험이다.

지금까지 개헌의 역사는 번번이 거창한 명분을 내걸었지만 실망스러운 결과로 끝났다. 이번만큼은 소기의 목표에 부합하는 개헌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이원집정제 같은 미봉책으로는 정치 불신만이 가중될 것이다. 훨씬 진지한 논의를 통해 의회의 위상을 높이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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