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승 한국산업기술대 홍보팀장

▲ 송영승 한국산업기술대 홍보팀장

최근 서울의 한 대학교수가 나이 든 경비원에게 “너 같은 놈 때려봤자 개값도 안 돼”라는 막말을 한 사실이 알려져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라면 상무’, ‘땅콩 회항’ 등 무소불위 기업인의 갑질 횡포가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까지 오염된 모습을 보며 대학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느낀다. 졸지에 ‘개값’이 된 경비원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다.

문제는 대학가의 이 같은 갑질 행태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동안 곪았던 상처가 터졌다는 것이다. 이참에 캠퍼스 내의 잠재적 위험성을 미리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학 구성원 누구라도 한순간에 ‘갑질 괴물’이 될 수 있다는 현실적 위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초부터 100일간 경찰청이 ‘갑질 횡포’를 특별 단속한 결과 블랙 컨슈머(59%)가 압도적 1위로 나타났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사회적 약자를 괴롭힌 것(41%)보다도 많았다. 우월적 지위와 무관하게 ‘고객’이 되는 순간 갑질의 주인공으로 등극하는 사례가 더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은 교수와 학생이 최고의 행정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누리고, 학생은 교수에게 수준 높은 수업을 받을 권리를 갖는 등 저마다 서비스 주체와 객체로 얽혀 있는 조직이다. 이러한 권리는 대학교육과 행정역량 강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여기에 수직관계가 끼어들면 ‘갑질 괴물’로 돌변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서비스 제공자의 무책임으로 촉발된 ‘정당한 갑질(?)’은 논외로 치더라도 정당한 권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서비스 제공자를 인신공격해 쾌감을 얻는다면 그 역시 언제든 갑질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더구나 대학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와 적은 급여에도 대학인의 일원이라는 자긍심으로 고강도의 감정노동을 감내하는 구성원이 많다는 점에서 상호 존중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 웨슬리언대 총장을 지낸 마이클 로스 교수는 인문학 진흥을 강조한 저서 <대학의 배신>에서 “고등교육의 가장 고등한 목적은 모든 시민이 자기 삶과 일에서 인간적이고 위대한 의미를 발견할 기회를 주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서 가치를 찾으며 힘든 일상을 견딘다. 때문에 그 가치가 짓밟히면 모멸감과 상처를 입는다. 또, 그렇게 당한 사람은 보상심리가 작용해 또 다른 ‘갑질 괴물’로 돌변하기 쉽다. 이렇게 되면 고등교육의 고유 목적 달성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좋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서비스 제공자를 존중하는 자세다. 미국 버지니아 주의 한 카페에서는 “one small coffee”라고 주문하면 5불, 여기에 “one small coffee, please”에는 더 싼 3불을 받는다는 메뉴판을 붙여 무례한 고객을 재치 있게 조롱하는 장면도 나왔다. ‘님도 우리도 모두 귀한 자식, 귀한 사람들끼리 귀히 해줍시다.’ 최근 서울의 한 카페에 나붙어 화제가 됐던 글귀를 우리 대학인 모두 깊이 새겨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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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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