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노력을 비웃는 편법과, 그에 익숙해짐에 따라 자연스레 얻어진 무능. 그게 어떻게 좋고 부러운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한 이화여대 재학생이 학내에 붙인 대자보 중 한 글귀다. 이 대자보는 이화여대 특혜 입학과 학사운영 의혹을 산 정유라씨에 대한 편지 형식을 띠고 있다.

본지는 수년간 ‘대학의 위기’를 진단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대안 제시에 힘써왔다. 대학과 정권 결탁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이번 사태를 접하면서 위기감을 넘어 아프기까지 하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인 대학 입시과정에서 의혹이 불거진 것, 평교수가 부당하게 학부모의 압박을 받는데도 교육의 가치보다 정권 눈치보기를 선택한 학장, 이같은 부정을 방조하고 또 특혜 정황이 속속 드러남에도 끝까지 ‘특혜는 없었다’고 부정한 총장, 이 모든 것은 총장의 책임이라며 꼬리를 자르는 재단 이사회. 일련의 사태는 단순히 개인의 부정이 아니며 대학의 조직적 부정이자 은폐다. 대학의 붕괴를 알리는 신호다.

이화여대에 대한 신뢰도는 곤두박질쳤다. 이화여대의 올해 국고사업 수주 실적, 학사 특혜를 준 교수의 연구지원비가 급증한 것까지 모두 정권에서 뒤를 봐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는 형국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학생들이 80여 일 동안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대학본부에 할 말을 했다는 것이다. 미래라이프대학 반대 농성 당시 소극적이던 교수들은 비대위를 조직하고 ‘130년 만에 총장 퇴진 시위를 예고하면서 ‘대학의 본질에 소홀했던 우리들의 무감각을 일깨운 것은 바로 학생들이었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불통과 폭력에 대항하던 학생들의 목소리가 학내 고름을 찾아 터뜨린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는 대학인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는 안도했을지 모르겠다. 우리 대학 일은 안 터져서, 또는 그에 비하면 작은 편법과 부정이라고 말이다.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면 이제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

대학들은 사회에 보여줘야 할 공공성과 권위에 비해 신뢰감이 여전히 낮다. 사립교원 및 관계자들이 부정청탁 방지법 대상으로 분류된 것도 그런 이유다. 이번 사태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공정하고 투명한 운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신호를 사회에 분명히 전달하지 못한다면 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밥그릇 챙기기로 치부될 공산이 크다.

‘상아탑’이 이제는 대학가에서 ‘구태의연한 외고집’으로 표현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부정과 비리가 개입될 수 없는, 의혹 한 톨 제기될 수 없는 공간으로 남아야 한다. 국가를 떠받칠 동량을 기르는 고등교육기관이 편법과 비리로 점철된다면, 학생들은 과연 무엇을 배우겠는가.

이제는 사립대 거버넌스를 근본적으로 수술대에 올려야 할 때다. 견제 기능이 바로 서도록 구성원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소통과 설득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부정과 비리가 있다면 샅샅이 찾아내 발본색원(拔本塞源)해 자정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 역시 사립대 운영구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비정상을 정상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학이 편법 모래 위의 누각이 아닌, 진정한 상아탑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역시 그 과정을 함께 하겠다. 제3자적 비판이 아니라 대학의 신뢰성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정당한 권위를 얻을 수 있도록 환부를 도려내고 새살이 돋도록 대학언론으로서 역할을 다하겠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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